노엘 갤러거, 한국에서 가장 친근한 48세

2015.05.21 페이스북 트위터



올해 오아시스의 팬들은 노엘 갤러거의 단독 공연과 페스티벌 헤드라이너 무대를 연이어 보는 호사를 누린다. 그가 한국에 특별한 호감을 표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팬들도 그를 좋아한다. 예를 들어, 리암 갤러거가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해외의 상황과 비교하면, 한국에서 그의 인기는 예외적이라고 할 만하다. 어떤 이들에게는 오아시스의 가장 중요한 노래들을 직접 만든 노엘의 존재가 중요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해할 법하다. 한편 대중적으로는, 이른바 ‘로큰롤 라이프’를 즐기며 말썽을 부리는 갤러거 형제라 할지라도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리암보다는 독로 무장한 노엘이 좀 더 즐길 거리를 준다. 리암이 싸우는 이야기는 기사로 남지만, 노엘의 인터뷰는 동영상으로 남았다. 바다 건너 한국의 대중들에게는 당연히 자막 달린 동영상이 이해하기 쉽다. 그리고 약간의 맥락만 이해한다면 아주 웃기다. 최근 몇 년 사이 인터넷 서핑 중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그의 인터뷰 발언 모음 동영상이나 필수 요소에 가까운 ‘티셔츠나 사라고’가 오아시스의 음악을 듣지 않은 이들에게조차 노엘의 존재감을 알린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티셔츠를 사라는 방점은 리암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노엘에 대한 묘한 친근감은 한국 팬이 자신의 재킷에 매직으로 흠을 남긴 것에 대해 투덜대는 ‘재킷 매직 사건’ 이후로 오직 한국에서만 통하는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친근감은 전설이 되어가는 오아시스의 전성기 시절 기억과 합쳐져서 영국의 어느 걸걸한 팝스타가 한국에서 소비되는 특이한 방식으로 남았다. 그런데 그의 밴드, 하이 플라잉 버즈의 2015년 앨범 [Chasing Yesterday]를 보면, 이제 50에 가까운 노엘에게 ‘친근함’이라는 키워드가 단지 ‘짤방’ 차원을 넘어서는 무엇이 되어간다는 생각이 든다. 2009년 오아시스를 탈퇴하고 처음 내놓았던 하이 플라잉 버즈의 앨범은 사실상 오아시스 시즌 2처럼 보였다. 물론 막판에 살아났다는 평가를 받았던 그 오아시스다. 아마 오아시스라는 이름이 계속 남았더라도 좋은 결과물을 보여줄 수 있었을 거라는 예상이 가능할 정도다. 물론 오아시스가 인상적이지 못했던 시기에 해체했다 돌아온 블러와 좋은 시기는 별 차이 없다는 농담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노엘은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Chasing Yesterday”를 들려주고 싶을 것이다.


이 앨범은 영국 밴드 음악계의 반복되는 어떤 역사를 보는 것 같다. 요컨대 전설적인 밴드에서 창작의 중심에 섰던 구성원이 나이를 먹고 솔로를 하고, 그 음악은 모든 영국 대중음악가들의 근본이나 뿌리를 담고 있는 듯한 모습을 띠는 것. 그래서 [Chasing Yesterday]는 노엘과 깊은 친분을 유지하는 폴 웰러(더 잼)는 물론이고, 이안 맥컬로크(에코 앤 더 버니멘), 또는 에드윈 콜린스와 제임스 커크(오렌지 주스)의 솔로작들을 생각나게 한다. 이 작업들은 젊은 시절의 반짝이는 멜로디 감각에 기대지 않는다. 대신 노래 전체가 지향하는 스타일을 확실하게 지정하고, 그 안에서 기술적인 완성도를 높인다. 다채롭지만 어딘가 거친 것처럼 들리는 [Chasing Yesterday]도 앨범 전체를 틀어쥐고 움직이는 노엘의 의도라는 측면에서 일관적이다. ‘In The Heat Of The Moment’는 공간감을 강조하는 단단한 비트와 기타, 보컬을 여러 겹으로 배치하는 복고적인 로큰롤 스타일이지만, 이 스타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3분여 동안 긴장감을 절대로 놓치지 않는 곡 구성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두 번째 싱글 ‘Ballad Of The Mighty I’는 더욱 세심하다. 펑키한 베이스라인 위에 자니 마의 기타가 들어온다. 그의 기타는 말 그대로 들어온 것인데, 자니 마는 앨범의 데모조차 듣지 않고 바로 녹음했다고 알려져 있다. 여기에 현악과 노엘의 힘 있는 보컬 멜로디가 들어온다. ‘Do The Damage’의 터져 나오는 이 모든 요소는 한마디로 고전적이고, 단지 좋은 것 이상의 가치가 있다.

노엘은 데뷔 초기부터 비틀즈 이래의 좋은 음악을 차용하는 것에 대하여 꺼리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그것은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뻔뻔함이 아니라, 자신이 유산의 상속자라는 것에 가까운 당당함이었다. 한편으로는 젊은 시절의 치기에 가깝기도 했지만, 그는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 자신을 증명하는 듯하고, 오아시스 바깥에서 자신의 경력을 이어가는 것이 다행으로 여겨지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노엘은 ‘Chasing Yesterday’라는 타이틀이 별 의미가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한 가장 악의적인 해석은 오아시스를 대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오랜 과거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과거는 노엘 갤러거가 50대에 이른 후에야 비로소 쫓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


글. 서성덕(대중음악평론가)
교정. 김영진

CREDIT 글 | 서성덕(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