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버거, 틈새 시장을 파고든 탄수화물 폭탄

2015.01.30 페이스북 트위터




밥버거, 너로 정했다! 그렇게 중년은 후줄근한 입성으로 동네 봉구스 매장에 발을 들였다. 해질녘이었다. 교복차림의 10대가 드문드문 찾아왔다. 그 사이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카운터 너머를 훔쳐보았다. 원리가 궁금했다. 보온밥통에서 밥을 한 줌씩 집어, 랩을 두른 틀에 눌러 모양을 잡아준다. 한 쌍 만들어 한 쪽 위에 부재료를 얹는다. 스팸, 돈가스, 김치, 단무지 등 다양하다. 뚜껑을 덮고 종이로 싸면 끝이다. 김밥과 햄버거의 교배종 같은 제작 과정이다. 딱 포켓볼만한 밥버거가 손에 들어온다. 묵직하고 따뜻하다. 가운데 부재료만 손쉽게 바꿀 수 있으므로, 선택은 약 30종에 이를 정도로 다양하다. 스팸부터 떡갈비, 오징어 등 편의점 삼각김밥과 분식집 메뉴를 총망라해 장점만 추린 메뉴다. 그 가운데 내 선택은 돈가스 밥버거. 2,000원이다.


밥버거는 이제 실세다. ‘원조’라는 봉구스만 해도 서울의 160여 군데를 포함 전국 900곳의 매장에 연 매출액이 2,000억 원이다. 주로 십대, 높게 잡아봐야 이십대 중반을 중심으로 자리를 잡았다. 검색해보면 가맹점도 대부분 학교나 학원가에 자리 잡고 있다. 약진의 출발점은 물론 밥이다. ‘한국인은 밥심’이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정서적인 포만감에 최고다. 하지만 밥 중심 음식이 없는 것도 아니다. 별식 아닌 끼니로 범위를 좁혀보면 바로 즉석 김밥과 비교할 수 있다. 가격대(2,000원 이하)와 양(250~300g)을 감안할 때, 적어도 겉보기로는 호환 가능한 메뉴다. 편의점도 있다. 하지만 밥버거는 그 틈새에서 자기 자리를 찾았다. 분명한 차별점이 있다. 그게 무엇일까?

일단 온도를 꼽을 수 있다. 사소해보이지만 큰 차이다. 다시 즉석 김밥과 비교해보자. 이름답게 주문 즉시 말아도 김밥은 대부분 차갑다. 김을 포함, 음식의 정체성인 형태가 따뜻한 밥을 뭉쳤을 때 모이는 증기로 인해 망가질 수 있기 때문에 밥을 식힌다. 편의점 김밥류는 아예 냉장 보관한다. 차갑고 뻑뻑하다. 김에서 자유로운 밥버거는 보온 보관된 밥으로 바로 만들어 준다. 쌀이 아주 저질만 아니라면, 그 밥맛으로라도 먹을 수 있다. 형식도 중요하다. 스스로도 주먹밥이라고 밝히고는 있지만, 어쨌거나 밥버거는 버거를 닮았다. 햄버거나 샌드위치의 형식 자체가 태생적으로 개인 식사에 특화된 것이다. 샌드위치는 18세기 같은 이름의 영국 백작으로부터 가져온 이름이다. 그가 포크와 나이프로부터 벗어나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식사를 요구한데서 비롯된 것. 샌드위치의 형식을 빌려 밥을 용기와 수저로부터 자유롭게 하니 비슷한 컵밥보다 간편하고도 개인적인 식사에 잘 맞는다. 모두가 바쁜 시대, 어른조차도 자가 조리의 요령을 갖추기 어렵다. 삶의 독립적인 주체로 자리 잡을 여건을 못 누리는 일, 이십대는 오죽하겠는가. 그래서 밥이면서도 빵처럼 간편한데다가 싼 밥버거는, 때우는 끼니나 간식으로서 특히 그들이라는 틈새로 파고들었다.

김밥보다 따뜻하고 컵밥보다 편하다면, 밥버거는 밥의 최종 진화형일까? 그렇지 않다. 따져보면 그저 궁여지책이다. 지극히 밥덩어리이기 때문이다. 266g짜리 돈가스 밥버거에서 밥의 무게는 무려 216g이었다. 그것도 냉동 돈가스와 다진 단무지 약간이 전부, 밥은 질척한 돈가스 소스로 넘기는 수준이었다. 같은 가격에 더 무거운 김밥(277g)은 속이 118g에 종류도 다양했다. 대량생산 음식 특유의 들척지근함은 도긴개긴이지만, 김밥의 맛이 훨씬 더 다양함은 부정할 수가 없다. 게다가 김밥은 갈수록 밥의 비율을 줄이는 쪽으로 고급화한다. 하지만 밥버거는 자꾸 밥으로 돌아간다.

결국 밥버거는 노동력 절감과 휴대성 향상을 위해 반찬을 줄이고 그 공간을 탄수화물로 채운 음식이다. 여태껏 세계는 열량 과다 섭취가 비만의 원인이라 여겨 왔지만, 그건 사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억지로 대세가 된 이론이며 현실과 맞지 않다. 진짜 원인은 탄수화물(과 당, 결국 같다) 섭취로 인한 췌장의 인슐린 분비와 그로 인한 지방 축적이다. 국내에도 [밥, 빵, 면] 등의 책을 통해 소개된 바 있다. 싸고 조리가 쉬우며 거부감 없는 맛과 쾌감 덕택에, 탄수화물은 부작용과 함께 식탁의 주도권을 거머쥐었다. 모두가 건강식으로 여기는 한식도 사실 밥 중심이니 예외가 아니다. 밥버거? 밥의 비율이 80%이다. 전 세계적 문제 식단의 대표래도 할 말이 없다. 진화라기보다 정확히 반대인 퇴화며, 개인주의 식탁에 맞게 변화해야 하는 오늘의 한식이 피해야 할 길이다.

이용재(음식평론가)
남의 나라 대학원까지 가서 건축을 공부했다. 직장생활도 몇 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음식에 대한 글을 쓰고 옮긴다. 맛없다고 비판을 많이 해서 ‘모두 까기’라고 원성이 자자하다. 주로 혼자 먹는다.

CREDIT 글 | 이용재(음식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