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리블라썸 라떼, 제가 한번 마셔보았습니다

2014.04.08 페이스북 트위터
세상엔 이런 것들이 있다. ‘체리블라썸(벚꽃) 풍미’가 들어간 카페 라떼, 딸기향이 첨가된 환타, 와사비 가루를 뿌린 라떼, 멜론 분말을 뜨거운 물에 타 마시는 음료, 커피 맛이 나는 탄산음료. 누가 왜 만들었는지, 그리고 누가 왜 마시는지보다 먼저 떠오르는 질문은 하나다. 도대체 무슨 맛일까? 그 맛이 알고 싶은, 그러나 굳이 마셔보고 싶지는 않은 독자들을 위해 <아이즈>에서 궁금한 음료 다섯 종을 골라 시음해봤다. <신의 물방울>에서 최고의 와인 ‘열두 사도’를 탐구하는 주인공의 경건한 자세로, <미스터 초밥왕>에서 진정 맛있는 초밥을 만났을 때만 눈썹을 치켜올리는 ‘미각 눈썹’ 심사위원의 마음가짐으로.





환타 딸기향
부르고뉴의 와인처럼 진한 루비색 투명한 액체 속에 호수의 요정이 헤엄치듯 섬세한 기포가 힘차게 올라오는구나. 이 선명한 붉은색, 바라보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혓바닥이 물들 것 같다. 오렌지와 포도가 그러하듯 이 환타 또한 ‘딸기맛’이 아닌 ‘딸기향’이다. 한 모금 천천히 혀 위에 올려놓으면 제일 먼저 아로마로서 입 안 가득 엄습해오는 것은 합성착향료(딸기향), 그리고 식용색소 적색 제40호와 백설탕의 멋들어진 마리아주가 잠재되어 있던 지방세포의 각성을 촉구한다. 마침내 탄산가스와 구연산의 희미한 뉘앙스가 식도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면 서러운 서른네 살 나의 미뢰에 불현듯 어머니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사 오신 부루펜 시럽이 아직도 내 기억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스타벅스 아이스 체리블라썸 라떼
향기 나는 티슈를 따뜻한 우유에 적신 듯한 체리블라썸 라떼는 단지 시행착오였을 뿐, 이미 여름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는 계절에는 역시 아이스다. 참고로 시즌 한정이라 판매가 종료된 매장도 있지만 일부 매장에서는 재료 소진 시까지 판매한다. 만년설이 쌓여 있는 산봉우리처럼 솟은 생크림 위로 점점이 흩어진 핑크빛 토핑은 비누를 얇게 깎아 올린 맛이지만 끈기를 가지고 입 안에서 분해시켜 보면 초콜릿이라는 정체를 깨닫게 될 때까지 입천장에 붙어 존재감을 주장한다. 그리하여 생크림 구름 아래 중간계에서 진하고 차가운 카페 라떼를 만난 영혼을 카페인의 홍수에 씻기고 나면 건조한 팔다리에 바르고 싶어지는 향기와 함께 연한 핑크빛으로 물든 우유의 바다가 기다리고 있다. 딸기우유인 것도 같고 카페 라떼 같기도 한 이것, 실키한 맛과 강렬한 아로마는 무수한 식음료계 도전자들의 뇌리에 각인되었을 것이다. 그중 몇이나 재도전을 했을지는 바다의 여신 사이렌만이 아시겠지만.



라떼킹 와사비 라떼
구름 같은 우유 거품 위에 점점이 이끼가 낀 듯, 아니 마치 초록 곰팡이의 포자처럼 퍼져 있는 와사비 분말이라니 아아, 이 라떼는 도대체 뭘까. 이자들은 진정, 소주 라떼와 소금 라떼를 내놓은 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단 말인가. 잔을 가볍게 돌려 공기와 만나게 하면 비강을 강타하는 축축한 와사비향, 거부할 수 없이 강렬한 이 느낌에 빠져 나를 놓고 의식의 밑바닥으로부터 입술을 연다. 입속이 오그라드는 듯한 이 단맛, 마치 비로도 같은 우유의 감촉과 견과류의 고소한 스파이스의 여운이 사라지기 전에 통각을 자극하는 와사비의 맵싸한 존재감이 서해의 파도처럼 잔잔하게 밀려온다. 마치 우유를 베이스로 한 율무차에 상어껍질 강판에 간 와사비를 미량의 분말로 만들어 첨가한 것 같은 느낌, 그러나 격렬한 사투 끝에 진한 단맛이 승리를 거두면서 코끝이 전기충격을 받은 것처럼 강렬한 매운맛은 오히려 아이스에만 해당된다.



진짜 사나이 메론 라떼
샘 해밍턴이라는 서양 사람은 이 음료를 처음 만났을 때 “신세계를 발견한 기분이다”라고 말했지. 과연 그것이 군대라는 특수한 상황에 의한 섣부른 선언은 아니었을까, 의심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물 붓는 선까지 조심스레 뜨거운 물을 따르고 종이 스푼으로 멜론 분말을 젓다 보면 들척지근하게 풍기는 멜론향에 누르스름한 연두색 액체를 입에 대기 위해서는 가진 용기를 총동원해야 한다. 그리하여 이 단맛의 오오라, 내 어머니가 저혈당으로 자리에 누워 계실 때 한입 드시자마자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시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완치되실 것 같은 맛! 메로나를 끓인 것만 같은 이 느낌, 바나나맛 우유의 형제인 메론맛 우유가 설익은 멜론으로 만든 것처럼 덜 달고 풋내마저 느껴지는 것과 달리 지중해의 햇살 아래 농익은 멜론을 따서 만든 것 같지만 실은 멜론(국산) 과즙고형분이 30% 함유된 맛, 그래 이건 그냥 라떼가 아니다. 그런 게 아니다. 이를테면 이것은 추위와 배고픔을 함께 나눈 자들을 위한 전우의 맛이다.



커피팝
커피와 탄산의 조우라니, 이것은 음료계의 혁명, 중국음식계의 짬짜면처럼 충격적인 발상의 전환이다. 어쩌면 이 나라의 커피업계와 식음료업계의 지형을 뒤바꿔버릴지도 모르는 하나의 캔, 조심스레 탭을 당겨 잠들어 있던 진갈색 액체를 깨우면 헤이즐넛 티백을 설탕물에 담근 듯 희미한 커피향이 후각상피세포를 간질인다. 뭐랄까, 입술에 닿는 순간 저도 모르게 몸서리치게 되는 괴이한 맛, 지난 추석 어머니가 만드신 수정과를 정제수에 희석하고 쌍화탕 세 큰 술을 더해 탄산가스를 첨가한 듯하다. 오오 이것이 캬라멜 색소와 커피향 0.13%의 밸런스인가. 8월의 한낮 강남역에서 신논현역까지 전신의 모공으로 수분을 뿜어내며 걸어갔을 때 편의점 냉장고에 마지막 하나 남은 음료가 이것이라면 이성을 잃고 뭉크의 그림처럼 절규하고 말 나 자신의 심상풍경이 떠오르지 않는가. 물론 이 또한 누군가에겐 누룽지맛 사탕을 녹여 만든 세피아빛 추억 같은 향수 어린 맛이 될 수 있겠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발한다. 도대체 왜 330ml나 되는가.

교정. 김영진

CREDIT 글 | 최지은
사진 | 최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