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키즈 아이돌│① 아이돌, 가장 대중적인 서브컬처

2015.09.22 페이스북 트위터





YG 엔터테인먼트(이하 YG)의 신인, iKON이 얼마 전 발표한 싱글의 제목은 ‘취향저격’이다. 여성의 외모에 자신이 취향저격 당했다는 이 노래의 가사는 최근 아이돌 산업의 트렌드와도 유사한 면이 있다. 카라와 레인보우 등이 소속된 DSP 엔터테인먼트의 신인 에이프릴은 메이드복과 알프스소녀룩의 중간쯤에 있을 법한 무대의상을 입고 청순 콘셉트로 데뷔했으며, ‘아낀다’에 이어 ‘만세’로 컴백한 세븐틴은 교복 같은 의상을 걸친 채 인터넷 소설에서나 등장할 법한 대사처럼 “잠깐 소녀야 지금부터 널 내꺼라고 부를 거야”라고 노래한다. 치밀한 전략은 겉모습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SM 엔터테인먼트(이하 SM)의 레드벨벳은 컴백 앨범 [The Red]의 티저 이미지를 아예 인스타그램에서 공개했으며, 그동안 무질서한 힙합 악동의 이미지를 아이덴티티로 삼아왔던 빅스타는 크러쉬나 자이언티의 음악처럼 듣기 편한 R&B곡 ‘달빛소나타’를 타이틀로 내세우기도 했다. 대형기획사든 중소기획사든, 아이돌 그룹의 콘셉트와 마케팅은 점점 더 세밀해지고 있다.

원래부터 아이돌 팬덤과 일반 대중 사이에는 엄연히 거리가 존재했다. 다만 동방신기나 소녀시대, 빅뱅, 원더걸스 같은 팀이 데뷔할 당시에는 팬이 아닌 사람들도 최소한 그들의 존재 정도는 알고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아이돌 그룹은 매해 수도 없이 쏟아지고, 아이돌은 같은 아이돌뿐만 아니라 음악을 중심에 둔 예능 프로그램이나 인디 혹은 힙합 뮤지션과도 경쟁해야 되는 상황이다. 대중이 음원차트에서 MBC [무한도전]이나 [일밤] ‘복면가왕’, Mnet [쇼 미 더 머니] 등에 등장해 귀에 익은 음원을 곡을 제쳐두고 이름도 얼굴도 낯선 생 신인 아이돌의 노래를 클릭해 들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아니, 그 전에 신인 그룹의 음악은 이미 차트에서 ‘광탈’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선순위는 대중에게 한 번에 이름을 각인시키는 것이 아니라, 작은 시장의 취향을 정확히 겨냥해서 단단한 팬덤을 구축하는 일이다. 물론 아이돌이라는 영역 자체는 대중음악 시장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최근 데뷔하는 각각의 팀들을 좋아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소수고, 그런 점에서 아이돌은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서브컬처 같은 독특한 위치에 서게 되었다.




시장은 좁다. 사람들의 취향과 욕망은 꼭 그만큼 까다로워졌다. 기존의 아이돌 소비자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고, 다른 팀의 성공요인은 지금 아이돌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어디에 꽂혀 있는지를 반영하는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EXO의 ‘으르렁’에서 교복이라는 콘셉트만 벤치마킹해 ‘상남자’와 청춘의 이미지를 구축해낸 방탄소년단의 성공, 청순한 콘셉트를 고수해온 에이핑크 이후 ‘소녀’를 내세운 러블리즈와 여자친구, 오마이걸 등이 미묘하게 다른 캐릭터로 시장에 무사히 자리 잡은 것은 여기에 대한 증거다. ‘데뷔 후 무사 안착’이라는 1차 목표를 위해서는 다른 팀의 성공에서 기호성이 높은 코드를 가져오되 조합과 방향을 약간씩 변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을 코드를 과감하게 시도해볼 수 있다면 더욱 좋다. 빅스는 ‘다칠 준비가 돼 있어’부터 ‘저주인형’까지 뱀파이어 콘셉트를 조금씩 바꾸어 가며 보여주었으며, 마마무는 남장여자 콘셉트를 통해 ‘백합’ 코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팬덤의 저변을 넓혔다.

아이돌이 서브컬처의 한 줄기가 됐고, 다시 또 다른 서브컬처의 요소들까지 차용하게 됐다. 최근의 아이돌들이 모니터 너머 2D 캐릭터들의 실사화 버전처럼 보이곤 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세븐틴의 ‘만세’ 뮤직비디오는 몇몇 멤버들의 캐릭터에 맞춰 미소년 시뮬레이션 게임처럼 연출되어 있고, 가끔 카메라를 향해 눈을 맞추며 보는 이들을 게임 플레이어처럼 느끼게 만든다. 여자친구 또한 ‘유리구슬’과 ‘오늘부터 우리는’의 뮤직비디오를 통해 일본 애니메이션 속 밝고 건강하고 예쁜 소녀 같은 이미지를 끊임없이 전달한다. 이것은 단순히 특정 코스튬을 걸치는 것보다 더 복잡하고 정교한 기획이며, 기존의 아이돌 팬들뿐만 아니라 2D로 존재하는 미소년 혹은 미소녀가 취향인 사람들까지 공략한다.

YG의 iKON처럼 데뷔 전부터 기획사 자체 제작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고, [쇼 미 더 머니] 같은 프로그램에 나가서 우승할 멤버가 없다면, 아이돌 그룹이 데뷔와 동시에 대중에게 알려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최근 데뷔한 신인들 중 iKON만이 처음부터 대중적인 멜로디의 ‘취향저격’을 발표하고, 음원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다. 그렇다고 모두가 SM의 레드벨벳처럼 극단적으로 세련되고 복잡하면서도 캐릭터가 명확한 비주얼 작업을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섬세한 기획과 프로모션으로 작은 취향의 시장을 선점하는 것은 대형기획사가 아닌 회사들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지금 데뷔하는 많은 아이돌 그룹은 바로 그 자리를 놓고 경쟁 중이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보다 더 많은 대중에게 나아가려 할 것이다. 물론 데뷔 후 무사 안착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다. 우연히 촬영된 영상이 페이스북을 통해 퍼지며 음원차트에서 역주행한 EXID와 여자친구의 예는 아이돌 그룹이 일반적인 방식으로 대중의 눈에 드는 것이 쉽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 궁금하다. 오늘날 탄생한 아이돌의 뉴 키즈들 중 이 희박한 확률을 뚫고 가장 먼저 정상의 깃발을 뽑는 것은 누구일까. 아이돌 시장이 따분해졌다고 생각한 순간, 조금은 다른 흐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뉴 키즈들은 과거의 선배들처럼 자신의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

글. 황효진
교정. 김영진


CREDIT 글 | 황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