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은 ‘예술’하면 안되나요?

‘Connect BTS’ , 전세계 5개 도시서 공개!

2020.02.10 페이스북 트위터



앤 베로니카 얀센스의 '그린, 옐로, 핑크', 사진=장준호



지금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는 빛과 색채, 안개 등을 이용하는 영국 출신의 아티스트 앤 베로니카 얀센스의 설치 작품 '그린, 옐로, 핑크'가 전시되어 있다.


동시에 뉴욕 브루클린 브릿지 포구에서는 터너상 수상자인 조각가 안토니 곰리가 '뉴욕 클리어링'을 공개했다. 곰리의 클리어링 시리즈 중 최대 규모이자 최초의 야외 공공미술품이다. 아르헨티나의 소금 사막 살리나스 그란데스 상공에는 화석연료 없이 하늘을 나는 열기구 모양의 '에어로센 파차'가 떠올랐다. 지난해 한국에서도 개인전을 가진 설치 미술가 토마스 사라세노의 작품이다.


세계적 큐레이터이자 베를린 마틴 그로피우스 바우 관장 스테파니 로젠탈은 마틴 그로피우스 바우에서 '치유를 위한 의식'이라는 그룹전을 선보이고 있다. 현대미술의 중심인 런던의 서펜타인 갤러리에는 야생 숲속 풍경을 3d로 스캔해 재구성한 작품 '카타르시스'가 펼쳐져 있다.


5개 도시에서 며칠 간격으로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공개된 이 작품들은 현대 미술로 세상을 연결하는 ‘Connect BTS’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이대형 아트 디렉터가 총괄 기획을 맡았고 방탄소년단이 참여했다. 그리고 작품 제작비의 일부는 방탄소년단 일곱 멤버와 빅히트엔터테인먼트가 부담한다.


대중음악가가 현대미술과 협업한 사례는 수두룩하다. 앤디 워홀과 벨벳 언더그라운드, 존 레논과 오노 요코까지 갈 것도 없다. 그로피우스 바우는 2014년 같은 장소에서 데이빗 보위의 멀티미디어 회고전을 열었다. 런던의 V&A가 기획한 이 전시는 토론토, 상파울루, 도쿄를 거치며 전 세계적으로 히트했다.


국내에선 지난해 한국의 힙합 듀오 XXX가 신보 'SECOND LANGUAGE'의 프로모션으로 디자이너 이광호와 동명의 협업 전시를 가졌다. 앨범에 수록된 10곡을 듣고, 이광호 작가가 떠올린 영감을 10개의 작품을 창작한 것이다. 지금 코엑스 SM타운 뮤지엄에서 만나볼 수 있는 'TVXQ!'도 설치 미술가 이반 나바로가 동방신기를 모티프로 만든 커미션 작품이다. 아니면 아예 존 레논, 뷔욕, 퍼렐 윌리엄스, 지드래곤, 자이언티처럼 제작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중요한 건, 커미션 기획이든 제작 참여든 대중음악가의 존재감이 작품에 짙게 묻어난다는 경우가 대부분이란 거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익숙한 협업의 형태였다.

앤 베로니카 얀센스,의 '그린, 옐로, 핑크', 사진=장준호



이는 ‘커넥트 BTS’가 어떤 이들에게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가 되기도 하다. 혹자는 ‘커넥트 BTS’ 전시에 BTS가 없다며 아쉬움을 드러낸다. 물론 이 전시에 방탄소년단을 직접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작품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프로젝트에서 방탄소년단은 그저 스폰서일 뿐이라는 ‘폄하’, 방탄소년단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위한 피상적 마케팅 수단일 뿐이라는 ‘의심’은 다소 가혹하다. 더욱이 안타까운 건 최근 방탄소년단의 행보-슬로베니아 현대무용팀이 참여한 ‘블랙스완’ 아트 필름, 'Love Your Self' 캠페인 이후 강화된 사회적이고 철학적인 메시지-에 반감을 드러내는 ‘아이돌 권위주의자’들에게 이번 프로젝트가 ‘본분(?)’을 지키라는 잔소리 혹은 ‘고나리’의 땔감으로 쓰인다는 점이다.


일단, 이 전시에 방탄소년단이 없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이대형 디렉터와 방탄소년단은 산업과 산업, 장르와 장르를 뛰어넘는 새로운 형태의 협업을 은유적이고 세련된 방식으로 이뤄냈다. 비록 그것이 방탄소년단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담긴 플래그가 전시회장 곳곳에서 요란하게 펄럭이는 모양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특히 서울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는 얀센스의 '그린, 옐로, 핑크'는 방탄소년단의 음악적 메시지와 절묘하게 맞닿아있다. (이대형 디렉터가 밝혔듯, 방탄소년단은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할 작가를 선정하는 과정에 함께 참여했다.)


앤 베로니카 얀센스는 빛과 색을 투사해 시각을 통제하고 이를 통해 ‘통제의 상실’을 실험하는 작가다. '그린, 옐로, 핑크'는 드라이 아이스를 이용해 뿌연 대기 효과가 연출된 원형의 방이다.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안개는 그린에서 옐로로 그리고 핑크로 시시각각 변한다. 이 방에 들어선 관객은 아주 짙은 안개 속을 거니는 듯한 환상에 사로잡힌다. 미술 비평가 마이클 윌슨이 얀센스의 작품을 ‘연옥에 갇힌 것 같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사방엔 벽도 시계도 조명도 아무것도 없다. 코앞에 있는 사람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물론 상대방도 나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 작품 안에서 관객은 오로지 단독자로 존재할 뿐이다.


얀센스의 안개를 통해 사회적 가면인 ‘Persona’를 지우고 비로소 내면의 ‘Ego’를 강렬하게 인지하게 되는 순간. 이는 방탄소년단이 21일 발매하는 정규 4집 ‘Map of the soul’에서 인트로 Persona-인터루드 Shadow-아웃트로 Ego의 여정과 유사하다. 장르가 다를 뿐 두 아티스트는 모두 비로소 “내가 되고 싶은 나 / 사람들이 원하는 나 / 니가 사랑하는 나 / 또 내가 빚어내는 나”(Intro: Persona')에서 “변하지 않는 어떤 나”('Intro : Ego)로 나아가는 체험에 관해 이야기한다.




RM은 'Intro : Persona'를 시작하며 존재론적 질문을 던졌다. “나는 누구인가 평생 물어본 질문 / 아마 평생 정답을 찾지 못할 그 질문 / 나란 놈을 고작 말 몇 개로 답할 수 있었다면 / 신께서 그 수많은 아름다움을 만들지 않았을 테니까”. 그리고 우리는 알고 있다. 생이라는 거대한 물음표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종종 예술을 통해 힌트를 얻는다는 걸. 우리가 우리를 고작 말 몇 개로 답할 수 있었다면 세상에 그 수많은 예술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거라는 걸.


‘아이돌이 무슨 예술?’이란 날 선 공격은 ‘아이돌이 무슨 힙합?’이란 비판을 듣던 이들의 데뷔 초를 떠올리면 금세 무딘 칼날이 된다. 장르, 언어, 국가, 인종까지. 방탄소년단은 이미 몇 겹의 벽을 깨부수며 여기까지 왔다. 방탄소년단과 얀센스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RM이 얀센스에게 창작자대 창작자로 던진 질문은 그래서 더 의미심장하다. “What are borders? What do boundaries mean to you?”(경계란 무엇인가? 당신에게 경계선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이 질문은 수용자인 우리에게도 꽤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케이팝과 현대미술의 경계, 음악과 미술의 경계, 장르와 장르의 경계, 산업과 산업의 경계, 대중문화와 순수예술의 경계, 아이돌과 아티스트의 경계, 아티스트와 아티스트의 경계… 이토록 많고 많은 구분 선이 당신에겐 어떤 의미인가? 당신은 경계 안에 머무는 사람인가? 경계 너머를 보는 사람인가? 아니, 당신에게 경계란 무엇인가?


글=손안나(하퍼스 바자 에디터)

사진=Ann Veronica Janssen, 'Green, Yellow and Pink'
Artificial fog, green, yellow, and pink filter
Dimensions variable, 2017
Courtesy the artist and Esther Schipper, Berlin
Photo © Jang Jun-Ho


CREDIT 글 | 손안나(하퍼스 바자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