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의 바람’, 10대 여성의 뒷모습에 담긴 성장

2019.11.15 페이스북 트위터


*영화 ‘영하의 바람’의 내용이 포함돼있습니다.

한국영화에서 2019년은 특별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기생충’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 더 주목해야할 영화적 사건은 바로 신진 여성감독들의 뛰어난 영화들이 대거 개봉했다는 것이다. ‘영주’(차성덕)부터 ‘선희와 슬기’(박영주), ‘보희와 녹양’(안주영), ‘우리집’(윤가은), ‘벌새’(김보라), ‘밤의 문이 열린다’(유은정), ‘아워 바디’(한가람), ‘영하의 바람’(김유리)까지. 그리고 많은 이들이 지적했듯이 이 여성감독 뉴웨이브에서 십대 여성의 성장서사는 흥미로운 특징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11월 개봉하는 김유리 감독의 장편데뷔작 ‘영하의 바람’ 역시 십대 여성에게 성장이란 무엇인가를 버려짐의 감각을 통해 깊게 파고든다. ‘영하의 바람’은 12세, 15세, 19세의 영하를 연대기적으로 속도감 있게 그려낸다. 이혼한 엄마와 단둘이 살던 12세 영하는 엄마에게 남자친구가 생기자 아빠와 살기 위해 이삿짐을 싣고 떠난다. 그러나 막상 도착한 집에는 아무도 없고 아빠는 연락마저 끊어버린다. 영하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엄마 집으로 돌아오지만 부모 모두에게 버려진 경험은 지울 수 없다. 김유리 감독은 종종 ‘패닝’(panning)을 사용해 버려지는 순간을 시각화한다. 패닝은 수평으로 이동하는 카메라 움직임으로서 보통 서로 다른 두 가지 이상의 요소를 묶어주고자 할 때 사용하기 때문에 그 아이러니함은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집 앞에 내려진 이삿짐 앞에서 홀로 울고 있는 12세 영하 앞에 멈춰져 있던 카메라가 쇼트를 자르지 않고 패닝해 저 멀리 언덕에서 어린 영하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15세의 영하를 잡는다. 철저하게 홀로 남겨진 12세 영하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이는 오직 15세 영하뿐이다.

두 번째 패닝은 영하가 자신의 사촌이자 가장 친한 친구인 미진을 버리는 장면에서 사용된다. 영하의 엄마이자 미진의 이모인 은숙은 죽은 미진 부모의 보험금 일부를 자신의 신학대학 등록금으로 전용하고도, 미진의 할머니가 죽자 조카 미진을 멀리 사는 삼촌에게 보낸다. 영하는 미진과 함께 살게 해달라고 엄마에게 애원하지만, 영하는 이미 반복적으로 미진을 버려온 바 있다. 내성적이고 통통한 몸매의 미진은 학교에서 늘 혼자다. 영하는 그런 미진을 멀리서 바라보며 그만 먹으라는 채팅 메시지는 보낼지언정 점심시간에 함께 밥을 먹거나 놀아주진 않는다. 창문 밖을 바라보는 15세의 영하에게서 카메라가 패닝해 운동장을 비추면 제일 친한 친구와 자신의 롤 모델로 믿고 의지하던 이모 모두에게 버려진 미진이 떠나가는 뒷모습이 화면에 들어온다. 시간이 지나 상고를 다니며 취업을 목표로 하는 미진과 달리 대학입시 준비를 하던 19세의 영하는 다시 한 번 엄마에게 버려진다. 아빠라 불렀던 엄마의 남자친구에게 성추행을 당한 영하는 엄마에게 사실을 밝히지만 ‘잊고 다시 시작하자’라는 말이 돌아온다. 엄마와 마주 앉은 영하의 절망적인 얼굴을 비추던 카메라는 원을 그리며 움직여 엄마의 뒤통수에서 멈춘다. 영하는 엄마의 뒤통수에 완전히 가려 보이지 않는다. 이 세 번의 패닝에서 그녀들은 버리고 버려지면서 서로의 뒷모습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나 혼자 버티기 힘들다’라는 생존을 향한 몸부림이 있다.

마지막 패닝은 은숙이 자신과 가족을 구원할 거라고 굳게 믿었던 교회 앞의 언덕에서 일어난다. 모두에게 버려진 영하는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언덕에 선다. 그때 갑자기 차가운 바람에 하얀 입김이 실려 화면 밖에서 안으로 불어 들어온다. 그 입김을 따라 카메라가 수평으로 이동하면 갈 곳도 취직할 곳도 없어 교회 언덕으로 돌아온 미진이 서있다. 둘은 삶의 벼랑의 끝에서 드디어 마주한다. 영하와 미진은 자기 자신을 안쓰러워하며 바라보거나 타인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것을 넘어서 처음으로 서로를 대면한다. 영화는 네모난 프레임을 통해 경계를 만들면서도 현실에서는 넘을 수 없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너와 나의 경계를 넘나들고 시공간을 확장한다. 미진을 떠나보내며 ‘삶은 결국 혼자 견뎌내는 것’이라고 역설했던 은숙의 말과는 달리, 차가운 바람을 헤치고 경계를 넘나드는 하얀 입김은 타인의 존재를 각인한다. 버려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버리지 않기 위해 애쓰는 것, 힘든 삶일수록 같이 견뎌내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 타인의 고통을 마주하고 서로 봐주는 것, 어쩌면 그것이 성장이자 이 영화의 역량일 것이다.

김유리 감독은 첫 장편영화임에도 10년의 시간을 속도감 있게 밀어붙이고 버려짐과 마주함의 감각을 예리하게 시청각화하며 자신의 연출력을 오롯이 증명해낸다. 마지막으로 위태로우면서도 천연덕스러운, 순수하면서도 이기적인 양면성을 연기해 낸 엄마 은숙 역의 신동미와 나른함과 따뜻함 속에 저릿한 불쾌감을 전달하는 새아빠 역의 박종환, 그리고 12세, 15세, 19세를 실제 한 인물처럼 어떤 위화감도 없이 그려낸 아역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는 이 영화를 반드시 봐야할 또 다른 이유다.


CREDIT 글 | 조혜영(영화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