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필 무렵’, 사람이라는 기적

2019.11.14 페이스북 트위터


KBS ‘동백꽃 필 무렵’에서 동백(공효진)은 쉽지 않은 인생을 사는 여자다. 7살 때 엄마 정숙(이정은)에게 버려지고, 유일한 가족이자 연인이었던 종렬(김지석)을 떠난 후 그는 홀로 아들 필구(김강훈)를 키우며 술집 까멜리아를 운영한다. 여기까지도 ‘팔자가 세다’라는 소리를 듣는 판에 하나가 더 있다. 조용한 시골마을 옹산을 떠들썩하게 만든 연쇄살인범 까불이를 목격하고도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인 그는 돌아온 까불이의 표적이 됐다. 이 답이 없는 상황 속에서 동백은 사랑을 한다. 첫눈에 반했다며 동네 똥개처럼 그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용식(강하늘)은 가랑비에 옷 젖듯 어느새 동백의 마음에 스며들었다. ‘동백 씨가 제일 장하다’라는 용식의 말에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린 동백은 묻는다. ‘사람이 사람에게 기적이 될 수 있을까?’.


상황과 사람. ‘동백꽃 필 무렵’은 이 두 가지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1화는 동백의 첫 등장 장면에서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편견에 빠질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동백은 옹산에는 어울리지 않는 낯선 모습으로 묘사되고, 이런 그가 술집을 운영하는 싱글맘이라는 사실이 드러나자 동네 사람들은 호기심과 적개심을 드러낸다. 극중에서 가장 이성적인 인물로 묘사되는 자영(염혜란)조차도 그에게 “생글생글 웃어줘요. 그게 동백 씨 일이잖아요”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던질 정도다. 하지만 동백은 말끝을 흐릴지언정 “그런데 웃는 게 제 일은 아닌데”라고 말하거나 ‘서비스’를 요구하는 규태(오정세)에게 “이 안에 제 손목 값이랑 웃음 값은 없는 거예요. 여기서 살 수 있는 건 딱 술뿐이에요”라고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그는 쉽게 편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도 그렇게 되지 않으려 노력한다.


다음은 사람이다. 덕순(고두심)과 용식만은 편견 없이 동백을 바라본다. 이들에게는 과거 동백 모자와 비슷한 상황을 겪었던 경험이 있다. 남편 없이 아이를 키운 덕순이 엄마로서 동백의 어려움을 이해하듯, 아빠 없이 자란 용식은 아들로서 필구의 어려움을 이해한다. 다만 용식은 ‘엄마로서의 제 입장을 존중해 달라’라는 동백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는 대신, “남녀가 뒤에서 뭘 하면 구설이고 카더라지만 앞에서 대놓고 좋아한다, 이 엄청난 여자 좋아하는 게 내 자랑이다 하면 차라리 찍소리도 못하는 거잖아요. 저는 그게 더 상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하며 자신의 사랑을 숨기지 않는다. 처음에는 당황하던 동백은 덕분에 자신이 더는 숨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용식은 동백이 예뻐서 반했지만 멋져서 사랑하게 됐고, 그의 처지에 공감하되 동정하지 않는다. 무너지는 동백에게 위로 대신 ‘약한 척 하지 마요’라는 말을 던질 수 있는 것은, 그가 상황이 아니라 동백이라는 사람을 똑바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까불이로부터 살아남은 직후 동백의 상황은 그 반대였다. 경찰들은 그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삶의 터전을 짓밟았고, 기자들은 ‘직업여성’, ‘술집여자’라는 낙인을 찍었다. ‘연쇄살인은 더러운 년들이 당한다. 살았으니까 행실 똑바로 하라’라는 말에 동백은 ‘까불이는 나를 죽이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나를 죽였다’라고 고백한다. 상황에 짓눌려가는 동백에게, 몇 번이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깨닫게 만드는 것은 용식이다. 그 덕분에 동백은 스스로를 ‘뭐라도 된 것처럼’ 느끼고,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에게 ‘까불지 마세요’라고 말한다. 까불이에게 목숨을 위협받는 동백이 오히려 ‘까불지 마’라는 선언을 하면서, ‘동백꽃 필 무렵’의 중심은 자연스럽게 상황에서 사람으로 옮겨간다. 동백이 행복에 가까워질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이 그늘을 드리우는 까불이의 존재는 감당하기 힘든 상황 그 자체지만, 그의 협박에 옹산을 떠날 결심까지 했던 동백이 다시 까멜리아의 문을 활짝 열었을 때 화면은 활짝 웃는 한 여자의 얼굴을 비춘다. 어느새 용식은 물론 모두에게 동백은 고아나 싱글맘, 연쇄살인범의 희생양 따위가 아니라 사랑스럽고 용감한 사람일 뿐이다.


동백과 비슷한 상황에서 정숙은 딸을 버렸고, 향미(손담비)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동백과 달리 모두의 부러움을 받는 제시카(지이수)는 정작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에 홀로 몸부림친다. 어떤 삶이 더 낫다고, 혹은 옳다고 쉽게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이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동백은 끝까지 상황에게 주도권을 뺏기지 않았다. 또한 그의 곁에는 손바닥만한 등짝을 쓸어주며 함께 눈물 흘리는 사람이 있다. 동백이 처한 상황 중에 가장 최악이라고 할 수 있는 까불이는 끊임없이 그를 고립시키려 한다. 까불이는 동백과 용식이 사랑을 시작하자 ‘내가 너를 매일 보고 있어’라는 메시지를 남겼고, 향미를 죽인 후 ‘니 옆에 있으면 다 죽어’라고까지 말한다. 그러나 까불이에게 잡혀 목숨을 잃을 상황에 처했을 때 동백은 엘리베이터의 전원을 내려 스스로를 가뒀다가 결국 제 발로 걸어 나온다. 사랑하는 사람을 끌어안고 싸우겠다고 말한다. 동백은 상황에 지지 않았다. ‘동백꽃 필 무렵’은 결국 사람이 만드는 기적에 대한 이야기다.

이 드라마에서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작품 바깥에서 벌어진 부조리다. 지난 10월 중순경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는 ‘동백꽃 필 무렵’의 제작사 팬엔터테인먼트가 스태프들과 근로계약서를 체결하지 않은 상태로 하루 16시간이 넘는 촬영을 강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후 제작사는 ‘제작사와 노조 간 긴밀하게 협의하고 있는 단계’라는 입장을 밝히기는 했지만(‘스타뉴스’) 개선 여부는 아직까지 확실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종영까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이러한 문제가 확실히 개선되었고 다시는 재발되지 않으리라는 약속을 기대한다.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진정성을 잃고 퇴색하지 않기를 바라므로.



CREDIT 글 | 서지연(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