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조, 있는 그대로의 존재

2019.11.13 페이스북 트위터


세상에 노래 잘하고, 랩 잘하는 아티스트는 많다. 히트곡을 내고 좋은 앨범을 만드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음악을 통해 의미있는 담론까지 생성해내는 아티스트는 흔치 않다. 디트로이트 출신의 싱어송라이터이자 래퍼, 리조(Lizzo)는 그래서 더욱 돋보인다. ‘난 이렇게 태어났어, 노력 따위 하지 않아도 돼’, ‘느린 노래는 마른 여자애들을 위한 것, 그런 템포로는 이 몸을 다 움직일 수 없지.’라고 노래하는 그는 현재 세 번째 정규 앨범 ‘Cuz I Love You’로 빅스타가 되었다.

한국에까지 알려진 건 최근이지만, 이미 인디로 활동할 때부터 평단과 마니아들에게 호평받는 존재였다. 두 장의 전작, ‘Lizzobangers’(2013)와 ‘Big Grrrl Small World’(2015)는 이번 작품만큼의 범대중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진 못했으나 ‘언젠가 더욱 크게 터질만한’ 그의 거대한 잠재력을 확인케 했다. 리조는 탁월한 실력의 래퍼이자 싱어이며, 주제의식을 갖춘 작사가이자 좋은 멜로디를 쓰는 작곡가다. 또한, 프로듀서로서의 능력까지 갖춘 앨범 주도형 아티스트다. 이른바 로린 힐(Lauryn Hill)과 미씨 엘리엇(Missy Elliott)의 계보를 잇는다고 할 만하다. 블랙뮤직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품는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보컬 스타일을 비롯하여 악기운용과 프로덕션 면에서 고전 소울의 특징을 고스란히 살린 가운데, 2000년대 블랙뮤직의 상징과도 같은 트랩 리듬을 융화시킨 ‘Cuz I Love You’는 대표적인 예다.

빌보드 차트 1위 등극(‘Truth Hurts’)과 ‘틴 초이스 어워드’,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 ‘BET 힙합 어워드 등등, 많은 시상식에 후보로 오른 사실이 오늘날 리조의 위상을 대변한다. 특히, 리조가 가사와 퍼포먼스를 통해 지속적으로 드러내는 ‘자기 몸 긍정주의(Body-Positive)’와 ‘블랙 페미니즘(Black Feminism)’ 요소가 더욱 열렬한 지지를 이끌어냈다. 모두를 매료시킬만한 음악성을 지닌 아티스트가 사회적으로 매우 민감하고 중요한 이슈를 제대로 건드렸을 때의 파급력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리조가 지금 그러한 흐름을 만들어내는 중이다.

많은 사람들이 리조의 ‘용감함’을 찬양한다. 매체들은 리조가 여성의 섹슈얼리티 개념을 바꾸어놓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제껏 사회에서 치부처럼 취급했던 뚱뚱한 몸을 자신있게 드러내고 과시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은 것이다. 다만, 너무 과도한 의미부여는 곧 편견이자 무례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 8월, 리조는 패션지 ‘글래머(Glamour)’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내 몸을 보고 ‘와, 정말 용감해.’라고 말하면, 난 그래. ‘아니, 그렇지 않아. 난 그냥 나일 뿐이야. 난 그냥 섹시한 거라고.’”

그보다 앞선 7월, 미국 공영 라디오(NPR)에 출연하여 진행자 테리 그로스(Terry Gross)와 나눈 대화도 주목할만하다. 그로스는 리조가 나체로 포즈를 취한 ‘Cuz I Love You’ 앨범의 커버를 두고 남다른 의미를 짚어냈다. 다른 많은 여성 아티스트가 남성에게 섹스어필하기 위해 나체를 드러내려 한 것과 달리 리조의 경우는 “매우 대담한, 여성들을 위한 성명”이나 다름없었으며, “아름다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의 틀을 깨려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리조가 그로스의 말을 가로막으며,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날린다. “그래, 그런데 내가 뚱뚱해서 그런 소리만 하는 거야?"

리조는 여성들이 남성들의 시선을 위해 자신의 몸을 사용하고 있다고 믿도록 조건화되었기 때문에 몸집이 작은 여성들에겐 ‘자기 몸 긍정주의’나 ‘롤 모델’로서의 역할이 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 같다고 부연했다. 만약 리조가 더 날씬했다면, 정말 그녀의 말대로 사람들은 ‘용감성’이나 ‘대표성’ 따위를 부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리조는 뚱뚱한데 용감한 것도, 뚱뚱하지만 섹시한 것도 아니다. 그가 현재 이뤄낸 것들은 한 여성으로서, 그리고 아티스트로서 자아내는 모든 요소가 한데 어우러진 결과다. 무엇보다 리조가 정말 멋있는 건 음악을 끝내주게 잘하기 때문이다.

CREDIT 글 | 강일권(‘리드머’,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