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 폭력의 늪을 기록하는 일

2019.11.11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

데이트 폭력을 당했다. 사랑했던 이로부터 뺨을 맞고, 골목길로 끌려 들어가고, 목을 졸리고, 폭언을 듣고, 비틀린 손목에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 끝에는 어김없이 가해자의 눈물어린 참회의 시간이 찾아왔다. 그는 평소 한없이 다정한 남자친구였지만, 어느 순간 내가 자신을 ‘무시’했다며 괴물처럼 돌변하곤 했다. 극명하게 대비되는 한 남자의 모습 속에서 나는 갈피를 못 잡고 혼란스러워했다.


‘내가 뭔가 잘못한 걸까?’
‘그 사람 말처럼, 내 성격이 드센 걸까?’
‘내가 바뀌면 그 사람도 변하지 않을까?’

가해자를 만나는 수 년 동안 이 생각을 끊임없이 해왔다. 두 번의 경찰 신고와 조서 작성, 그리고 주변의 도움, 이사, 번호 변경을 거듭한 끝에 겨우 데이트 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매일 밤마다 찾아오는 불청객 같은 그 어두운 기억을 나는 머릿속으로 되감고 다시 보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결국 아침이 밝아오게 되면 ‘아, 이제 그만 생각할래.’ 하고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내 삶은 피폐해져갔고, 세상에 홀로 남겨진 느낌이 들었다. 왜 가만히 당하고만 있었냐고 물을 것 같아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했고, ‘죽고 싶다.’라는 생각을 이즈음에 계속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동시에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 나서기도 했다. 일기를 쓰고, 익명 게시판에 글을 올려보고, 그래도 해소가 안 되자 인스타그램 아이디(@i_iary)를 만들어 생각나는 대로 만화를 그려 올렸다. 그러고 나면 몇 개 안되는 반응에도 위로를 받았다. ‘그냥 어딘가에라도 털어놓고 싶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팔로우하고 댓글을 다는 독자들이 점점 늘어가는 게 신기하고 얼떨떨했는데, 처음에는 자극적인 이야기라 호기심을 가져서 그러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나에게 주는 따뜻한 위로의 말들은 단순한 호기심으로만 건넬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말에 울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나의 메일함은 항상 꽉 차 있다. 하나하나 읽고 답하기가 버거울 정도로 수많은 사연들이 가슴 아픈 호소를 하고 있다. 사연을 보내는 분들의 대부분은 여성이고, 아주 가끔이지만 남성 피해자와 성 소수자분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기도 한다. 그중 어떤 분은 ‘제가 데이트 폭력을 당할 줄은 몰랐어요. 저는 항상 당당하고, 할 말 다 하는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휘두르는 폭력에는 무참히 무너졌어요.’ 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정말 말 그대로 ‘누구나’ 데이트 폭력에 노출될 수 있다. 그래서 작품명도 ‘다 이아리: 누구나 다 ‘이아리’가 될 수 있다’로 정했다. 보는 눈이 없어서도 아니고, 여지를 줘서도 아니고, 강하지 않아서도 아니며, 그럴 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당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그 점을 너무 몰라준다. 그런 사회의 시선 때문에 데이트 폭력 피해자들은 쉽게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더 깊은 어둠속으로 몸을 숨기려고 한다. ‘데이트 폭력을 겪고 있어요. 도와주세요.’라고 말하는 것도 피해자들에게는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 되었다.

‘다 이아리’라는 작품을 통해 데이트 폭력의 심각성과 2차 가해의 피해, 그리고 피해자들이 왜 늪에 빠져 허우적댈 수밖에 없었는지를 하나하나 알려주고 싶었다. 작품을 보고 자신의 피해 상황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어 이별을 결심했다는 연락도 종종 온다. 데이트 폭력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을 돌보며 회복해나가고 있다는 분,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다는 분, 시간이 흘러 지금은 좋은 사람을 만났다는 분. 그런 메시지를 받을 때마다 정말 큰 뿌듯함과 안도감을 느낀다. 하지만 여전히 씁쓸한 현실은 존재한다. 데이트 폭력에는 확실한 해결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언제까지 피해자가 도망쳐야 하는지, 보복에 대한 두려움에 떨지 않을 수 있는지. 그 물음에는 더 이상 피해자가 답할 것이 아니라, 사회가 나서서 해답을 주어야 할 때라고 본다. ‘연인 간의 사랑싸움’으로 치부되는 데이트 폭력은 사랑이 아닌 무거운 범죄니까.


CREDIT 글 | 이아리(‘다 이아리’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