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모으고 있다

2019.10.14 페이스북 트위터


‘나가라 일터로 나에겐 빚이 있다!!’

꽤 오랫동안 집 현관문에 붙어 있던 포스터다. 나는 약 5년간 빚을 갚아왔고, 일이고 회사고 때려치고 싶을 때는 저 문구를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빚을 다 갚은 달에 퇴사했다. 빚을 다 갚았을 때서야 돈을 갖고 있을 때 사람이 얼마나 여유로워 질 수 있는지 알았다. 만약 빚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면 퇴사라는 선택지를 고를 수 없었을 테다. 돈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사회적으로는 틀린 말일 수 있다. 그러나 개인에게 적용한다면 어떤 부분에서는, 적어도 나에게는 그 말은 참이었다.

돌이켜보면 힘들고 고통스럽게 돈을 모았다. 지금은 1년도 안돼서 모을 수 있는 금액을 20대 시절 모으려면 2년 반이 걸렸다. 월급이 적었던 탓도 있지만, 당시에는 사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많았다. 거울을 보며 여기를 고치면 좀 나아질까 고민한 날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조금 더 예뻐지기 위해서 화장을 하고, 유행한다는 쉐도우도 많이 사 모았다. 사놓고 1~2번 입을까 말까 한 독특한 옷을 기분전환을 위해 아끼지 않고 샀다. 이런 즐거움이 삶의 생기를 불어 넣는다고 생각했고, 그럴 돈이 없거나 시간이 없으면 젊음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박봉에 꾸밈비도 들면서 인스타 맛집도 가야했으니 정말로 모을 수 있는 돈이 별로 없었다. 빚 갚아야 한다는 현실과 예뻐 보이고 싶은 욕망이 양립하는 순간 생활은 비참해질 수 밖에 없었다. 먹는 것, 생필품의 가격을 줄이며 저축을 했다. 당시 40kg후반~50kg초반으로 바짝 말랐었고, 친구의 말을 빌자면 ‘손이 차갑고 축축한 좀비’ 같았다. 하지만 이렇게 돈을 쓴다 해도 대단히 ‘패셔너블’ 해지는 것도 아니었고, 사실 바빠서 유튜브를 보고 산 화장품을 그대로 따라할 만큼 시간도 없었다. 덕분에 화장품을 다 쓴 적도 없었다. 나 역시 그러했지만, 이런 20대의 삶은 상당히 보편적인 모습이지 않을까. 친구들 역시 나와 다르지 않았으니까.

여성이 남성보다 임금을 37%나 더 못 받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거기다가 여성들이 쓰는 다양한 비용들은 여성을 더 가난하게 한다. 가난한 상태에서 여성의 선택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단기간 내로 문제가 있는 회사를 그만두지 못할 수 있다. 그 문제는 노동권 침해, 성희롱 등 심각한 문제일 수 있지만 당장에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참고 버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어떠한가? 매년 겨울마다 보일러가 고장나는데 갖고 있는 돈이 없다면? 지금보다 지하철과 멀어지고 안전하지 못한 집으로 이사가는 방법을 택하거나 조금 더 참고 버텨야 한다. 조금 더 멀리보면 결혼은 어떠한가? 이제 더이상 보일러에 문제가 있는 집에서 살고 싶지 않고, 사람다운 집에서 살고 싶을 것이다. 보통 20~30대 사람들이 살 만한 집으로 이사가는 경우는 결혼이라는 이벤트가 일어났을 때다. 유튜버 ‘혼삶비결’에서 나왔듯 어떤 여성은 결혼이 필요한 게 아니라 집이 필요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가난하다면 '결혼이 아니라 집이 필요하다'라는 선택지를 만들 수 있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는 복지가 있는 국가이기에 공공임대주택이라는 선택지도 있다. 그러나 결혼‘도’하지 않은 여성이 들어갈 만한 집이 과연 존재하는가 의문이다. 취업도 입시도 아닌데 공고가 날 때마다 가슴 설레며 신청하고, 경쟁률을 보며 분노한다. 최근 신청했던 공고는 ‘2019년 서울리츠 행복주택 입주자 모집 공고’와 ‘제37차 장기전세주택 입주자 모집공고’. 제37차 장기전세주택 입주자 모집공고에서 1,000세대 중 1인 가구가 신청할 수 있는 가구는 80여개였으며 일반경쟁이 6:1, 우선경쟁이 28:1이었다. 그나마 장기전세주택은 전세금이 1억 8천만 원인 아파트라 경쟁률이 양호한 편이다. 2019년 서울리츠 행복주택 입주자 모집 공고에서 내가 신청한 주택의 경쟁률은 28:1이었으며 100:1을 넘긴 곳도 수두룩했고 226:1인 곳도 있었다. 이쯤 되면 주거복지는 로또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되기만 하면 인생이 핀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만큼 운이 좋아야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청년 대상으로 나온 주택은 파이가 정말 작고, 다른 주택들은 홀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불리한 조건이다. 한가지 예로 무주택기간이 가점으로 들어가는데, 결혼을 하지 않으면 30살 이후로 년수가 계산되고 결혼을 했다면 결혼을 한 그 시점부터 기간이 계산된다.

삶을 운에 맡길 수 없기에 혼자서도 잘 모아서 조금 더 나은 환경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 뱅크샐러드, 편한 가계부 어플리케이션을 활용하면 자동으로 지출 통계를 내준다. 내 지출을 확인하고 지출의 흐름을 보며 내 욕망을 파악하고, 고정비를 줄이는 것부터 시작이다. 최근 ‘탈코르셋’ 운동을 접하고 조금씩 꾸밈에 대한 고정 지출을 줄여봤다. 과거 꾸밈비로 썼던 돈은 적게는 한 달에 10~20만 원이고 많으면 50~60만 원 정도이다. '뭐 그렇게 많아?'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펌이나 염색 혹은 두피 관리나 피부관리를 받으면 충분히 가능한 금액이다. 작은 단위의 고정지출을 줄일 수 있다면, 큰 단위(예를 들면 월세에서 전세로 전환) 고정지출도 줄일 방법을 찾는다. 혹은 시드머니를 만들어 투자를 할 수도 있다. 재테크를 공부하며 시작해도 좋고, 요즘은 컴퓨터 알고리즘이 사람의 성향을 파악해 투자 포트폴리오를 추천해주는 서비스인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도 있다. 큰돈이 아니어도 된다. 요즘은 10만원부터 투자를 시작할 수도 있으니까. 10만 원으로 큰 돈을 벌긴 어렵겠지만, 작은 돈이라도 투자를 하면서 재테크의 경험을 쌓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고정지출을 줄이며 하는 저축이 돈을 모을 수 있는 지름길인 것을 알게 된다는 점에서.

물론 이렇게 줄여나간다고 해도 당장 집을 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꾸준히 돈을 모아 원룸이지만 대출없이 전세에 살고 있다. 그리고 당연히 연봉도 20대 때와는 달라졌다. 받을 수 있는 대출 금액 역시도. 빚도 자산이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혼자 살지만 투룸 전세로 이사가 침실, 거실, 주방이 분리된 곳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한다. 그리고 이제서야 노래방에서 ‘결혼은 선택’이란 구절을 진정으로 즐겁게 부를 수 있게 됐다. 아모르파티!


CREDIT 글 | 이지혜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