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믿게 되는 것

2019.09.30 페이스북 트위터


‘믿을 수 없는(Unbelievable)’이라는 단어는 상반되는 두 뜻으로 통용된다. ‘신뢰할 수 없는’ 그리고 ‘비현실적일 정도로 놀라운’. 전자는 불신이고, 후자는 상식을 뛰어넘게 하는 신뢰다. 강간을 영상물에서 다루는 방식은 그 둘 사이를 분열적으로 오간다. ‘프로퍼블리카’의 수석기자 T. 크리스천 밀러와 켄 암스트롱이 보도했던 실제 사건을 책으로 묶은 논픽션 <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드라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의 첫 화는 전자의 전형이다. 워싱턴주에 사는 18살인 마리(케이틀린 디버)는 강간을 당했다고 신고한다. 두 남성 형사가 사건을 담당하는데, 물적 증거를 찾지 못한 형사들은 오히려 마리의 과거를 뒤지기 시작한다. 마리의 불안정했던 성장과정을 확인한 경찰은 마리를 믿지 못하고 강간사건이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닌지 추궁하기 시작한다. 결국 마리는 이전 진술을 번복해 강간이 거짓신고라고 다시 말해야 했는데,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이후 마리가 겪는 일을 한 축에 두고 콜로라도주의 연쇄 강간사건을 진행시킨다. 콜로라도의 형사 캐런 듀발(메릿 웨버)은 강간사건을 조사하다가 역시 형사인 남편의 관할에서 유사한 ‘물적 증거 없는’ 강간사건이 벌어졌음을 알게 된다. 캐런은 유사한 사건을 추적중인 베테랑 형사 그레이스 라스무센(토니 콜레트)을 만나 공조수사를 시작한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강간이라는 범죄의 특수성을 실화에 기반해 보여준다. 피해자의 말을 신뢰하고 신뢰하지 않고에 따라 강간사건은 ‘없는 범죄’가 되었다가 ‘연쇄 강력범죄’가 되었다가 한다. 피해자의 진술이 아니라 피해자의 ‘피해자다움’을 먼저 확인하고자 하는 형사들에게 ‘물리적 증거 없음’이라는 마리 사건은 ‘자작극’의 증거로 해석되고, 피해자의 진술을 우선시하는 캐런과 그레이스에게는 ‘물리적 증거 없음’이 그만큼 치밀한 연쇄 범죄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남성들’이 무시한 사건을 ‘여성들’이 해결해가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범인을 잡기까지의 장르적 쾌감을 담보하는 동시에 강력범죄를 다루는 드라마가 지녀야 할 신중함을 놓치지 않았는데, 이 방식은 지금까지 성범죄를 다룬 무수한 영상물들과 차별화된다. 이 드라마에서 강간사건은 숱하게 언급되지만, 그 방식이 자세히 재현되지 않는다. 가해자가 사용한 칼, 공포로 일그러진 피해자의 얼굴 등을 빠르게 편집해 보여주지만,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강간범이 방에 들어서서 무슨 짓을 했는지를 마치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자세히 알려주는 데는 관심이 없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범인을 잡는 이야기에서 중요한 건 ‘수사과정’이지 ‘범행 재현’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책의 공동저자 중 한 사람인 켄 암스트롱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방영된 이후 제작자인 수재너 그랜트(각본, 연출, 제작에 모두 참여)의 공을 밝혔는데, “어떻게 경찰조사 그 자체가 또 하나의 트라우마가 될 수 있는지” 포착하고 싶었고 그 점을 드라마가 잘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강간 피해자들은 경찰들과 의료진에게 몇 번이고 강간을 반복해 진술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어긋난 진술이 발생하면 수사진에게 의심을 사게 된다. 피해 과정을 말하는 과정에서 머릿속에 피해가 고스란히 재현된다는 점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서 영상으로 표현되는데, 이 영상은 오로지 피해자 머릿속에서만 되풀이되기 때문에 수사진은 인지조차 못하고 있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리사 촐로덴코와 수재너 그랜트라는 여성 연출자들, 수재너 그랜트, 아옐렛 월드먼, 베키 모드, 제니퍼 슈어라는 여성 각본가들, 큐엔 트란이라는 여성 촬영감독 등이 남성 동료들과 협업한 결과물이다. 여성 캐릭터만큼이나 비백인 배우 기용에 있어서도 또한 언급할 만하다. 여성의 목소리를 들으라는 요구만큼이나 여성이 행동하게 하라는 요구가 창작물에 반영될 때, 오랫동안 당연히 남성의 영역이라고 여겨지던 수사물에서도 어떤 새로움과 성취가 있는지 잘 알려주는 결과물이 바로 ‘믿을 수 없는 이야기’다.


CREDIT 글 | 이다혜(‘씨네 21’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