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가요’와 ‘TV 동물농장’, 지상파가 유튜브에서 희망을 찾다

2019.09.26 페이스북 트위터


‘인기가요’와 ‘TV 동물농장’은 SBS의 대표적인 장수 프로그램이다. ‘인기가요’는 1991년, ‘TV 동물농장’은 2001년 방영을 시작했다. 두 프로그램이 2019년까지 이어지는 사이 TV의 영향력은 점점 줄었다. 대신 유튜브에서 ‘인기가요’와 ‘TV 동물농장’의 새로운 전성기가 시작되고 있다. 2017년 시작된 유튜브 채널 ‘SBS TV동물농장x애니멀봐 공식 유튜브 채널입니다!’(이하 ‘애니멀봐’)의 구독자 수는 현재 221만 명으로, 전세계 유튜브 동물 콘텐츠 부문에서 4위다(‘소셜블레이드닷컴’). ‘SBS K-POP CLASSIC’(이하 ‘케이팝 클래식’) 채널은 지난 8월 6일부터 ‘인기가요’의 1999년 방송분을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재생하면서 최대 2만2천여 명의 동시 접속자를 모았고, 6만 명이었던 구독자는 9월 25일 기준 17.2만 명으로 증가했다. ‘케이팝 클래식’ 채널이 ‘온라인 탑골공원’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화제가 되자, KBS와 MBC는 이를 따라 자사 음악 프로그램의 방송분을 유튜브에 공개하기도 했다.

같은 지상파 프로그램에서 출발했지만, 두 채널이 유튜브에서 선택한 전략은 다르다. ‘애니멀봐’는 ‘TV 동물농장’의 콘텐츠를 유튜브의 환경에 맞춰 재편집한다. SBS 시사교양본부의 이덕건 PD는 ‘애니멀봐’ 채널에 대해 “‘TV 동물농장’의 기존 방송분을 단순히 요약하는 것이 아니라, 주제를 설정해 여러 회차의 내용을 발췌하고 편집한다”면서 “매주 올라가는 14개 영상 중 4개 정도는 유튜브 전용으로 새롭게 촬영한 것”이라 밝혔다. 반면 ‘케이팝 클래식’ 채널은 의도적으로 편집 대신 실시간 스트리밍의 방식을 선택했다. SBS의 ‘케이팝 클래식’ 채널 담당자는 “케이팝 콘텐츠를 재가공한 2차 영상은 이미 유튜브에 많고, 편집에 들이는 노력에 비해 차별성을 보여주기 어려웠다”면서 “라이브 방송인 ‘인기가요’의 특징을 살리는 게 더 참신하다고 판단했다”라고 밝혔다. 이는 방송 프로그램을 보면서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누는 커뮤니티 댓글 문화의 연장선으로 이어졌다. ‘애니멀봐’가 지상파의 콘텐츠를 SNS의 호흡에 맞게 재편했다면, ‘케이팝 클래식’은 지상파 고유의 콘텐츠와 커뮤니티의 댓글 문화를 유튜브에서 결합시켰다.

지상파 콘텐츠만의 장점도 유튜브에서 새롭게 발견된다. ‘크림히어로즈’(구독자 290만 명)나 ‘소녀의행성’(구독자 83.3만명)처럼 대다수의 반려동물 유튜브 채널은 고양이나 강아지 같은 한 종류의 동물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18년 동안 다양한 종류의 동물을 주제로 방송을 해온 ‘TV 동물농장’의 방대한 자료는 ‘애니멀봐’가 확장성을 가질 수 있는 요인이다. 이덕건 PD는 “지상파는 한 영상이 15~20분 정도인 만큼 아이템의 구성요건이 까다롭다. 반면 유튜브는 상대적으로 분량이 짧아 아이템 선정이 쉽고, 주제에 따라 어떤 식으로든 변주가 가능하다”라고 밝혔다. 그만큼 다양한 동물과 스토리텔링을 소재로 폭넓은 콘텐츠를 선보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케이팝 클래식’의 ‘인기가요’ 24시간 스트리밍 역시 1990년대부터 시작된 방대한 양의 방송자료를 보유한 지상파가 아니었다면 실현 불가능한 아이디어다. ‘케이팝 클래식’ 채널의 담당자는 “채널의 특성상 실시간 편집이 들어가면 흥미도가 떨어진다”라면서 “실시간 스트리밍을 하면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이나 고인이 등장하는 것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 그래서 실시간 모니터링과 접속자들의 자발적인 신고를 통해 건전한 댓글 문화를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지상파가 보유한 자료의 다양성과 희소성은 ‘TV 동물농장’이나 ‘케이팝 클래식’이 유튜브에서 차별화되는 콘텐츠를 시도할 수 있었던 이유다.

SBS에 따르면 현재 ‘애니멀봐’의 구독자 220만명 중 50%에 달하는 110만여 명은 해외 구독자이며, ‘애니멀봐’는 이에 맞추어 15개 국어 자막 번역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특히 SBS는 2018년 ‘애니멀봐’의 해외 전용 채널인 ‘Kritter Klub’을 개설했고, 이 역시 구독자 170만 명으로 전세계 유튜브 동물 콘텐츠 부문 9위다(‘소셜블레이드닷컴’). 이에 대해 이덕건 PD는 “동물 콘텐츠는 국가에 관계없이 누구나 부담없이 볼 수 있고, 특히 동물농장이 해외에 소개된 사례가 없기 때문에 국내 시장보다는 해외에서 관심이 높을 것이라 생각했다”라며 “‘Kritter Klub’에는 ‘TV 동물농장’의 풀버전도 업로드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케이팝 클래식’ 채널 담당자 역시 “1990~2000년대 초반 가요를 스트리밍하는 만큼 35~45세 정도의 연령층을 목표로 삼았는데, 현재 유튜브 채널의 분석을 보면 25세~35세가 60% 가량으로 가장 많다”라고 밝혔다. 당시의 가요를 소비하는 세대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유튜브의 환경에 상대적으로 익숙한 세대가 오히려 유입되었다고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실제로 가수 양준일(V2)은 활동 당시를 제외하면 거의 알려지지 않은 가수였지만, 2018년 말 유튜브를 통해 ‘90년대 지드래곤’으로 화제가 됐고 '케이팝 클래식' 채널에서 접속자들이 찾는 대상이 됐다. ‘TV 동물농장’이 해외에서 인기를 얻고, 20여년 전 가요계를 기억하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알고 있던 가수가 ‘지드래곤’을 아는 세대에게 재조명을 받는 것. 지상파가 유튜브 시대에 합류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지난 15일, ‘TV 동물농장’은 추석 특집으로 ‘애니멀봐 명작극장’을 방송했다. 이날 방송된 ‘시골 똥개의 기원’이나 ‘웰시코기 8군단’ 등의 에피소드들은 ‘애니멀봐’ 전용으로 제작된 콘텐츠들로, 지상파의 특징에 맞추어 약간의 편집과 더빙이 더해진 상태로 방송됐다. 지상파의 기존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제작된 유튜브 콘텐츠가 호응을 얻으면서 새로운 트렌드가 되고, 지상파로 역수입된다. 미디어 환경을 선도하는 주체가 TV에서 유튜브 등 인터넷 기반 미디어로 넘어갔다는 방증이다. 여러 TV 프로그램들이 유튜브 및 1인 방송의 트렌드를 쫓아가기 시작한 것도 오래 된 일이다. 그러나 1인 크리에이터 열풍을 따라 만들어진 SBS ‘가로채널’이나 JTBC ‘랜선라이프’, 그리고 KBS ‘덕화TV’ 등의 프로그램들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보기 어렵다. 2015년 지상파 방송과 1인 방송을 접목하며 화제가 됐던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최고 시청률은 10% 였지만, 현재 방송 중인 ‘마이 리틀 텔레비전 V2’의 시청률은 3~4% 가량이다. 미디어 환경이 빠르게 바뀌는 시점에서 TV 프로그램들은 변화에 대한 압력에 직면했지만, 아직 명확한 답은 나오지 않고 있다. ‘애니멀봐’와 ‘케이팝 클래식’은 지상파가 유튜브 속에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나름의 방법을 찾기 시작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상파 방송사가 풀어야할 문제는 여전히 많다. 기존 프로그램의 유튜브 진출 뿐만 아니라 지상파의 오리지널 프로그램은 유튜브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또한 오랜 세월동안 영상에 관해서 거의 독점적인 플랫폼의 지위를 누려온 지상파 방송사가 오히려 유튜브에 콘텐츠를 공급하는 상황이 됐을 때 지상파는 무엇을 통해 현재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을까. 새로운 시대가 몰고 온 변화 속에서 기존의 공룡이 다양한 방식으로 적응하려 하고 있다. 과연 두 세계, 또는 두 시대의 미디어는 공존 또는 공생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CREDIT 글 | 김리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