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하다던 그 카페들

2019.08.26 페이스북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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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스타일’을 기억하는가? 정확히 10년 전, 그것도 딱 요맘때 방영한 작품으로 패션 매거진 편집장 역의 김혜수 배우가 입에 달고 다닌 표현이 있다. ‘엣지’. 당시 혜수님께선 화보 촬영도, 칼럼 마감도, 야근도 철야도 싹 다 엣지있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30대 중반의 나는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제일은 엣지라며 받들어 모셨더랬다. 시간이 흘러 바야흐로 2019년, 엣지는 어느새 쏙 들어가고 대신 ‘힙’이 등장했다. 트렌디도 핫도 아닌 힙. 여기저기 물어도 보고 검색도 해봤지만 엣지의 정체를 끝끝내 파악하지 못한 것처럼 힙이란 게 정확히 뭔지……. 아이고 모르겠다! 문제는, 어쩌다 보니 내가 얼결에 힙 터지는 동네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것인데…….

수년간 용인의 거대한 아파트 단지에 콕 박혀 혼자 일하다, 열 달쯤 전 성수동으로 진출했다. 사람 구경이 하고 싶어 요즘 가장 잘나간다는 동네를 콕 찍었다. 얼마 전엔 일터 근처에 무려 블루보틀님이 개업하시어 더욱 힙 터지는 곳이 되었는데, 날도 덥고 줄도 길어 아직까지도 도전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로고를 그려놓은 입간판 앞에서 사진을 찍긴 했다. 오며 가며 지나치는 요 앞엔 언제나 힙스터가 와글와글하다. 힙스터는 알아보기 쉽다. 계절별로 특유의 패션을 유니폼처럼 입고 있어서인데, 요즘은 날염 티셔츠와 연청바지의 조합을 특히 많이 본다.

근처의 빵집도 블루보틀만큼이나 무척 북적이는데, 알고 보니 인스타그램 핫플레이스로 유명한 곳이었다. 1970년대에 지어진 공장 건물을 통째로 빵집 겸 카페로 바꾼 것이다. 인스타발을 잘 받게 생긴 어여쁜 빵을 몇 개 골라 쟁반에 담고, 산미를 강조했다는 커피(그렇다, 힙스터라면 산미다)를 주문한다. 로고를 새긴 머그잔과 가방, 배지 같은 굿즈도 근사하다. 한편 빵 위엔 하얀색 가루가 곱게 내려앉아 있는데, 설마, 슈거파우더겠죠. 천장에서 솔솔 떨어진 먼지는 아닐 거라고 믿고 싶다. 건물 외관은 물론이고 내부의 벽과 천정까지 헐다 만, 뜯다 만, 손대다 만 채라 조금 마음에 걸린다. 그러고 보니 간판도 아주 작아서, 누가 말해주지 않으면 빵집인 줄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겠다. 어쩌면, 덕분에, 남들은 모르는 곳을 나만 알고 애써 찾아오는 듯한 설렘과 기쁨이 생기기도 할 것이다…… 라고 하기엔 이미 너무 북적이지만.

여기서 길을 건너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목욕탕을 개조한 카페가 있(었)는데, 딱 봐도 온탕과 냉탕에서 물만 쏙 뺀 건가 싶을 정도로 날 것 그대로고, 타일까지 고스란히 붙어있다. 지난 겨울, 한참 날 추울 때 우연히 이곳을 발견하곤 ‘어우, 엉덩이 시리겠다’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몇 주 전에 다시 그 앞을 지나가는데, 어어? 그새 분위기가 달라졌다. 여기, 거기 맞아? 이제 보니 타일을 모조리 뜯어냈고, 좀 더 공사장스러워졌고, 테이블은 더 낮아졌다. 손님들 모두 등을 한껏 굽히고 음료를 마시며 대화한다.

성수동엔 이런 곳이 많다. 매일같이 사방에서 공장 건물을 두드려 부수는데, 계속 봤더니 이젠 대충 느낌이 온다. ‘저 공장은 저 정도 부쉈으면 슬슬 공사를 접겠군’, ‘요 상태에서 유리창만 딱 끼워서 카페든 뭐든 오픈하겠지’ 간판은 아주 작거나, 아예 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등받이 없는 딱딱하고 작은 의자와 하염없이 낮은 테이블을 놓을 것이고……. 예상은 꽤 높은 확률로 들어맞는다. 얼마 후엔 세상 불편한 자세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로 공장이 북적거린다. 아아 선생님들, 우리의 디스크는 소중한데요, 허리들을 좀 펴셔야 할 텐데 어쩌나…….

속초 칠성조선소와 전주 팔복예술공장을 떠올린다. 두 곳 모두 옛 공장 건물을 그대로 활용한 문화공간이며 카페를 겸한다. 어떤 곳이었고 누가 무슨 일을 했는지, 역사의 아카이빙과 스토리가 그 안에 담겨있다. 성수동의 공장 건물 카페들엔 없는 것이다. 스토리텔링이 없이는, 그저 잠시 독특해 보이는 장소였다가 곧 사라지고 만다. 근사한 껍데기로만 존재하다 마는 것이다. 하지만 칠성조선소는 3대에 걸쳐 가업을 이어가는 곳이며, 팔복예술공장은 전주시가 큰돈을 들여 운영하고 있으니 작은 개인 가게와는 애초에 스케일이 다르다.

그래서 연대가 필요하다. 성수동의 힙하고 외로운 가게들이 연대해 그들의 스토리를 자아내어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나는 성수동이 좋다. ‘최신 인테리어란 당최 이해하기 힘드네’, ‘테이블이 불편하네’ 하고 투덜거리긴 했지만 실은 이 동네를 깊이 사랑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싫은 것은 따로 있다. ‘청년, 감성, 싸롱, 열정’ 어쩌고를 붙인 가게들. 자매품으론 ‘모던, 달빛, 청춘, 낭만, 소년, 아재’ 등도 있다. 이런 요식업체는 대부분 괴이한 문구를 굳이 네온사인으로 제작해 실내장식으로 활용하는데, 발견하는 즉시 살금살금 뒷걸음질 쳐 가게를 빠져나온다. 이런 곳을 왜 피하는가에 관해서 이야기하려면 또 1박 2일이 걸릴 텐데, 언젠가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때 다시 만나요.


CREDIT 글 | 신예희(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