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라 크루거의 메시지: FOREVER

2019.07.31 페이스북 트위터


“당신의 몸은 전쟁터다(Your body is a battleground)”. 프로파간다적 문구가 담긴 이 강렬한 이미지는 1989년 워싱턴의 거리마다 나붙는다. 그곳에선 낙태 합법화 행진이 벌어지고 있었고, 바바라 크루거는 이들을 지지하기 위해 이 포스터를 배포한다. 단순한 문장과 클로즈업 된 여성의 얼굴은 30년이 지난 지금 젠더갈등으로 고통 받는 대한민국에까지 찾아와 우리 몸을 돌아보라며 말을 걸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은 12월 29일까지 바바라 크루거의 아시아 최초 개인전을 개최한다. 그는 미국 현대미술의 주요한 작가지만 국내에는 스트릿 브랜드 슈프림의 로고보다도 덜 알려져 있는 것 같다. 산세리프 푸투라(futura) 서체의 흰 글씨가 빨간 글상자에 담겨 있는 슈프림의 로고는 바바라 크루거의 스타일을 차용한 것인데, 그만큼 바바라 크루거가 시각문화 전반에 끼친 영향은 실상 지대하다.

1980년대 미국의 페미니즘이 포스트모더니즘, 구체적으로 후기구조주의와 조우하는 상황은 바바라 크루거의 예술 활동이 성장하는 배경이 된다. 기존의 담론은 인간을 서구의 남성으로 한정하는데, 후기구조주의는 이러한 배제적 특성을 드러내며 각종 중심주의를 해체하길 시도한다. 이전까지 예술에서 여성은 작품의 모델이나 뮤즈로서의 역할을 할 뿐 주체적으로 존재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새로운 사상은 여성을 포함해 억압받던 주변부의 존재를 인정하며 이들에게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는데, 여기서 페미니즘은 이 방법론을 적극 수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바탕에서 바바라 크루거는 실재를 그대로 모방하기보단 실재에 대한 사회문화적 시각을 반영할 수밖에 없는 미술에서의 재현(representation)을 불신하고 이 속에 담긴 권력 행위를 드러내는 것을 작업의 기조로 삼는다. 그녀는 한껏 꾸며 단점이 없을 것 같이 연출된 완벽한 신체들의 스테레오타입들을 오려내 취합한다. 그리고 그 이미지들 위에 그것들을 압도하는 직설적인 문장들을 올려놓는다. “당신의 시선이 내 뺨을 때린다(Your gaze hits the side of my face)”, “당신은 당신 자신이 아니다(You are not yourself)”, “누구에게 선택의 자유가있는가(Who is free to choose?)”, “우리는 또 다른 영웅이 필요하지 않다(We don’t need another hero)”.

이번 전시에서 가장 중요한 섹션이 위에서 열거한 문구가 담긴 바바라 크루거의 초기 ‘페이스트업(paste-up)’ 시리즈 16점일 것이다. 잡지 디자이너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작가는 상업 이미지들을 재조직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당신의 몸은 전쟁터다’의 원본 이미지가 이 연작에 포함되어 있으며, 소비주의, 자본주의 언어를 그대로 적용하여 직접적으로 비판하고자 하는 작가의 태도를 곳곳에서 느끼게 한다.

미술관에서 가장 큰 공간을 차지하는 작품은 전시의 타이틀과 동일한 이름의 ‘Untitled(Forever)’다. 흑백의 텍스트로 뒤덮인 이 방은 돋보기로 “YOU”라는 단어와 함께 “지난 수 세기 동안 여성은 남성의 모습을 원래보다 두 배로 확대해 비춰주는 마력을 가진 거울 같은 역할을 해 왔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다”라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자기만의 방’의 문장을 보여준다.바닥에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인용한 문장 “미래를 그려보고 싶다면, 영원히 인간을 짓밟는 군화를 상상하라”가 있어 관람자는 그 위를 밟고 서게 된다. 관람객을 무대 한 가운데로 불러놓고 외치는 그녀의 메시지는 너무나 직설적이라 해석의 여지없이 관객을 압도한다.

이번 전시는 바바라 크루거의 사상적 부분을 강조하기보다는 디자인적인 요소들, 다양한 접근들을 더 보여주려는 의도에서 기획된 것 같다. 원문 그대로의 텍스트들이 번역 없이 전시되어 있고 전시장에 부가적인 설명문도 존재하지 않는 까닭에 직접적인 메시지를 주는 그의 작품을 외국어로 한 발 떨어져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페미니즘 아티스트의 면모를 제외하고 바바라 크루거를 설명하긴 불가능할 것이다. 30년 전 주변부에 존재하던 여성으로서 바바라 크루거는 기성작가들과 다른 매체, 대중예술, 반예술과 교류하며 현명하게 상황을 해쳐나갔다. 공격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하지만 분명한 메시지로 살아남은 작가의 작업들은 우리가 주체적으로 살아가도록 끊임없이 돕고 있다.



CREDIT 글 | 황윤지(아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