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인어공주’의 시대

2019.07.18 페이스북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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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디즈니의 ‘인어공주’ 애니메이션을 봤던 사람들은 아리엘을 빨간 머리 백인 여성 캐릭터로 기억하겠지만, ‘인어공주’ 실사 영화를 보게 될 요즘의 아이들은 아리엘을 흑인 여성 캐릭터로 기억하게 될 듯싶다. 버라이어티는 디즈니가 ‘인어공주’ 실사 영화에서 아리엘 역으로 클로이 x 할리 R&B 듀오의 할리 베일리를 선택했다고 보도했다. ‘인어공주’의 감독 롭 마셜은 “폭넓은 탐색 끝에, 할리가 정신력, 마음, 젊음, 순수함, 본질적인 모습을 드물게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게다가 할리는 아름다운 목소리까지 가지고 있다. 할리는 이 아이코닉한 역할을 맡기 위해 필요한 모든 내재적인 면모를 갖고 있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인터넷은 난리가 났다. 아리엘은 분명 빨간 머리의 백인 여성 배우가 맡아야 하는데,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에 사로잡힌 디즈니가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는 분노가 소셜 미디어를 뒤덮었다. ‘#NotMyAriel’이 트위터 트렌딩이 되었고, 흑인 인어공주에 화가 난 이들은 실망감을 표하고, 아직 개봉도 하지 않은 영화를 보이콧하겠다고 얘기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아리엘 역할을 흑인 배우가 맡았다고 해서 그게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일 리 없다. 디즈니는 시대적 변화에 발맞춰 흑인 배우를 채용한 것일 뿐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NotMyAriel’ 백래시가 “도널드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어필했던 백인 노스탤지어의 일환”이라고 말한다. 미국이 좀 더 다양성을 중요시하는 사회가 되면서 백인 노동자 계층이 소외당하는 느낌을 받았고, 그래서 이런 부분에서도 반대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얘기가 그들의 얼토당토 않은 불만을 들어줘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디즈니가 소유하고 있고, 베일리가 출연하는 ‘그로운-이쉬’를 방영하는 케이블 채널 프리폼은 불쌍하고, 불행한 영혼들에 보내는 편지라며, 백래시를 하는 이들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프리폼은 “‘인어공주’ 원작의 작가는 덴마크인이고, 따라서 아리엘이 덴마크인이라고 본다면, 덴마크 국민은 흑인일 수 있으니, 아리엘도 흑인일 수 있다.”고 썼다. 할리 베일리의 캐스팅이 “만화의 아리엘과 비슷하게 생기지 않아서 불만이라면, 그건 캐스팅의 문제가 아니라 불쌍하고, 불행한 영혼인 당신의 문제”라고 직접적으로 비판했다.


트위터의 한 이용자는 다양성을 존중해서 이들에게 배역을 줄 거라면, 이들에게 새로운 캐릭터를 주고, 대신 기존에 만들어진 캐릭터는 존중해달라고 말한다. 일견 이해가 될 것도 같은 말이지만, 동화 작가들이 사회적 변화에 발맞춰서 스토리와 캐릭터를 재창조해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쉽게 동의하기는 어렵다. ‘인어공주’ 이야기가 변해 온 궤적을 살펴보자. 1836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 쓴 ‘인어공주’의 원작에서 인어공주는 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엔딩을 맞는다. 하지만 디즈니는 1989년 이를 좀 더 가볍고 로맨틱한 해피엔딩으로 만들었고, 누구도 디즈니가 스토리에 변화를 준 것을 가지고 원작을 존중하지 않았다고 얘기하지 않는다. 워싱턴 포스트가 지적하듯, 동화의 힘은 시대의 변화에 적응해가는 데에 있다. 1836년의 ‘인어공주’와 1989년의 ‘인어공주’가 달랐던 것처럼, 1989년의 ‘인어공주’와 21세기의 ‘인어공주’는 당연히 달라야 한다.

인어가 어느 한 문화권에 속해 있을 리는 없다. 영국 리버풀 대학교의 사라 페벌리 문화 역사학자는 최초의 여성 인어에 관한 얘기가 서남아시아의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발견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거의 모든 문화권에는 각자만의 인어가 있습니다. 그들은 다양한 형태와 크기, 피부색을 가지고 있습니다.”라는 말도 덧붙인다. 미국 미디어의 거인이라고 할 수 있는 디즈니의 임원들은 바보가 아니다. 디즈니는 지난 70년 동안 백인 공주가 백인 왕자를 만나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이야기를 만들어왔다. 하지만 이제는 그들도 안다. 더는 백인 공주가 백인 왕자를 만나 구원받는 이야기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들은 사회문화적인 변화에 함께 그런 이야기를 더는 재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바꿔 말하자면, 다행스럽게도, 이제 백인 공주의 시대는 끝났다.

CREDIT 글 | 윤지만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