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라 PD라는 콘텐츠 크리에이터

2019.07.04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채널 ‘박막례 할머니(Korea Grandma)’의 주요 콘텐츠는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박막례 할머니의 모습’이다. 주로 박막례 할머니가 먹어보지 못한 음식을 먹거나 가보지 않은 곳에 가거나 만나보지 못했던 사람을 만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이 영상들에서는 처음 해보는 일에 거부감이나 두려움이 비교적 적고, 온몸으로 즐거움을 표현할 줄 아는 그의 성격이 잘 드러난다. ‘박막례 할머니’ 채널의 기획과 촬영, 편집을 도맡아 하고 있는 것은 손녀인 김유라 PD다. 그는 유튜브 CEO 수잔 보이치키와 박막례 할머니의 대화를 ‘엘렌 쇼’를 패러디한 ‘박막례 쇼’로 만들고, 구글 CEO인 선다 피차이를 보자마자 반가움에 껴안아 버리는 박막례 할머니의 모습을 담아내는 동시에 당시 어떤 기분이었는지 할머니가 직접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든다. 덕분에 한 명의 유튜버이자 외국인을 낯설어하는 노년 여성으로서의 모습이 아니라, 스스럼없이 타인에게 다가가고 그 앞에서 쉽게 기죽지 않는 박막례라는 여성의 독보적인 캐릭터가 드러난다.

나이 많은 여성이 익숙지 않은 것을 경험했을 때 당황하거나 실수하는 모습을 웃음의 포인트로 삼기는 쉽다. 자신의 스타일대로 메이크업하고, 추임새처럼 욕을 툭툭 내뱉는 노년 여성이란 기존 미디어에 흔하지 않았기에 신기한 캐릭터로 비칠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김유라 PD는 할머니를 웃음거리로 만들지 않고 자신만의 이야기와 살아가는 방식을 가진 여성으로 바라본다. 할머니가 내뱉는 욕을 거르지 않거나 화장품 제품명, 외국 지명 등 익숙하지 않아서 정확히 발음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자막으로 굳이 고치지 않으며, 뉴스 인터뷰에서 했던 말실수를 해명할 수 있는 영상을 만들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간장 국수 레시피나 계모임 이야기 등 박막례 할머니가 원래 가진 삶의 노하우와 고유한 관점을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콘텐츠를 기획하며 채널의 전체적인 균형을 맞춘다.

그래서 ‘박막례 할머니’ 채널의 콘텐츠는 젊은 시절 내내 고생만 하다 71세에 유튜버가 되고 새로운 세상을 만난 여성의 도전기인 동시에, 김유라라는 30대 여성 콘텐츠 크리에이터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자신이 기획한 콘텐츠가 할머니와 잘 맞지 않을 경우 미련 없이 폐기하거나, 할머니가 원하지 않으면 절대 촬영을 진행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일부에서 주장하듯 (당연하게도) 그가 할머니를 ‘아무것도 모르고 수동적으로 손녀가 시키는 대로 하는 노인’쯤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특히 ‘반찬 걱정 이제 끝이다! 43년 식당 은퇴식’편은 좋은 예다. 이 영상은 “할머니, 오늘 마지막 날인데 기분이 어때?”라고 묻는 김유라 PD를 향해 박막례 할머니가 “기분이 너무…… 서운해”라 답하며 울고,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하는 김유라 PD의 목소리로 시작된다. 나이 든 여성의 노동에 관해 여성이자 손녀인 자신마저 어떤 편견을 갖고 있었는지 돌아보는 한편, 영상을 보는 이들에게도 생각해볼 여지를 남긴다. 패스트푸드점의 키오스크 사용법이 박막례 할머니에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담은 ‘막례는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식당’편 또한 마찬가지로, 어떤 세대에게는 당연한 일들이 다른 세대에게는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든다.

‘박막례 할머니’ 채널 소개에는 ‘이 채널의 방향은 할머니의 행복입니다’라는 말이 쓰여있다. 김유라 PD가 “선한 영향력”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듯 이제 이 채널은 박막례 할머니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물론, 각기 다른 경험을 한 세대가 각각 다른 세계에 머물지 않고 어떻게 현재를 같이 살아가야 할지 이야기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앞선 세대의 삶을 존중하며 바뀌는 세상에도 그들이 적응할 수 있도록 하기. 그 세대 역시 자신보다 젊은 이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자주 듣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수잔 보이치키의 말처럼 ‘박막례 할머니’ 채널이 “폭넓은 세대의 시청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이유는 이 때문일 것이다. 지금 김유라 PD는 명확한 메시지와 목적, 책임감과 윤리의식, 콘텐츠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기획력,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관점을 가진 콘텐츠 크리에이터로서 누군가를 불쾌하게 만들지 않는 방식으로, 출연자를 충분히 보호하며 꼭 필요한 이야기를 해나가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기존 미디어가 이미 해야 했던 일이기도 하다.


CREDIT 글 | 황효진 (빌라선샤인 콘텐츠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