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이 스토리 4│① 더 넓은 세계를 위한 애도

2019.07.02 페이스북 트위터


*‘토이 스토리’ 시리즈의 주요 내용 및 ‘토이 스토리 4’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토이 스토리 4’는 주인공의 쓸모를 찾는 영화다. ‘토이 스토리 3’까지 카우보이 인형 우디는 주인공으로서 폭넓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주인 앤디와 놀아주고, 장난감 친구들을 구출하고, 위기의 순간마다 해결책을 찾는 것은 모두 그의 몫이었다. 그러나 새 주인 보니를 만난 뒤 우디의 몸에는 24년 만에 처음으로 먼지가 내려앉는다. 그는 이전 습관대로 나서서 장난감들의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사실 그보다 보니의 성향을 잘 파악하고 적절한 지시를 내리는 것은 이전부터 이 집에 살았던 몰리다. 우디의 파트너에 불과했던 제시가 그를 대신해 보안관 배지를 단 채 놀이의 중심이 되기도 한다. 1995년 ‘토이 스토리’ 시리즈가 시작된 이후, ‘토이스토리 4’는 처음으로 우디가 주인공으로서 해왔던 모든 역할을 빼앗는다. 그러면서도 그를 여전히 영화의 주인공으로 남겨두고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너의 쓸모는?

‘토이 스토리 3’까지 우디는 항상 장난감으로서의 사명을 반복적으로 이야기해왔다. 언젠가 버림받을지라도 주인에게 충실하고, 그에게 기쁨을 주며, 이 가치에 모든 동료 장난감들이 함께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토이 스토리 4’는 우디의 가치관을 답이 아닌 의문부호로 활용한다. 보니를 떠나 쓰레기로서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려는 포키를 붙잡는 우디의 모습은 영화에서 웃음을 주는 요소로 활용되지만, 포키의 의사에 대한 존중이 없다는 점에서 폭력적이다. 보니를 위해 골동품 가게에 갇힌 포키를 구하려는 우디의 절박함은 그를 돕는 장난감 동료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결과로 이어진다. 친구들과 한 줄에 매달린 상황에서도 우디는 오로지 바닥에 떨어진 포키를 구하기 위해 바닥으로 돌진한다. 그 결과 모든 장난감들은 바닥에 떨어져 위험한 상황에 놓인다. 과거의 방식으로 스스로를 증명하려 할수록, 오히려 우디는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기 어려워진다.

우디에게 찾아온 변화가 속편들에 비하면 가혹해 보일수도 있다. 그러나 앞서 다른 장난감들이 겪은 상황들은 우디의 처지보다 훨씬 더 가혹했다. ‘토이스토리 3’에서 우디는 앤디가 대학을 갈 때조차 기숙사에 가져가려 고려했던 유일한 장난감이었다. 반면 버즈를 포함한 다른 장난감들은 그때 다락으로 향해야 했다. 그럼에도 당시 우디는 버림받느니 탁아소로 가겠다는 장난감들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했다. 우디보다 9년 먼저 앤디의 집에서 쫓겨난 보 핍은 ‘토이 스토리 3’에 등장하지조차 못했다. 9년 후에야 그는 ‘토이 스토리 4’에서 부러진 팔을 스스로 고치고 골동품 가게를 용감하게 누비는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사실 그는 우디보다 약자이기에 생존을 위해 강해져야 했다. 심지어 우디는 당시의 보 핍과 달리 당장 보니의 집에서 나와야 하는 불가피한 상황에 놓이지도 않았다. ‘토이 스토리 4’는 처음으로 우디를 현실적인 장난감의 위치에 놓는다. 그 결과 이전까지 구체적으로 알기 어려웠던 다른 장난감들의 처지가 드러난다.


‘Our friendship will never die’. ‘토이 스토리’의 유명한 주제곡, ‘You’ve got a friend in me’의 가사 한 줄은 정작 영화 속 세계의 진실과 거리가 멀다. 아이들은 장난감에 쉽게 싫증을 내고, 잃어버리며, 결국 성인이 된다. 반면 장난감은 아이들을 선택하지 못하고 언젠가는 버림받는다. ‘토이 스토리 3’까지 우디는 이처럼 불평등한 세계를 우정이라는 명목으로 봉합하는 가장 성실한 부역자였다. ‘토이 스토리’에서 우디는 장난감들을 괴롭히는 씨드의 집을 경험하면서 얼마나 앤디가 좋은 주인인지를 깨닫는다. ‘토이 스토리 2’에서는 박물관에서 영생의 삶을 살 수 있었음에도 앤디를 위해 집으로 돌아간다. 마침내 ‘토이 스토리 3’에서 우디를 비롯한 장난감들은 성인이 된 앤디와 이별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하지만, 우디가 남긴 쪽지는 앤디가 보니에게 자신의 장난감들을 물려주는 이상적인 결말로 이어진다. 앤디는 우디를 보니에게 넘겨주는 순간까지 가장 사랑하는 장난감으로서 대우하고, 그만큼 사랑받은 우디는 “장난감으로서의 사명”을 강조할 수 있다. 우디가 그리워하는 과거는 그 사이 버림받거나, 우디만큼 사랑받지 못했던 다른 장난감들이 경험했을 불평등을 지우면서 유지된 결과물이었다.

‘토이 스토리 4’는 이전 속편들이 벗어나지 못했던 한계를 오히려 새로운 서사의 장치로 활용한다. 그 과정에서 변화한 시대의 감각이 영화 속으로 소환된다. 우디를 대신해 놀이의 중심에 놓인 제시, 보니의 집에서 실질적 리더인 몰리, 우디보다 주도적으로 장난감들을 이끌 수 있게 된 보 핍, 그리고 버즈의 역할을 연상시키는 보 핍의 보조자 기글까지. 영화는 의도적으로 그간 ’ 토이 스토리’ 시리즈에서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던 여성 장난감들에게 상징적이거나 핵심적인 역할을 부여한다. 그러나 ‘토이 스토리 4’는 단순히 여성들이 남성들의 역할을 대신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소외당한 이들이 주인공으로 올라서게 된 시대적 변화를 자신의 쓸모를 고민하는 우디의 상황과 결합시킨다. 우디는 종종 몰리의 말을 가로막거나 보 핍의 지시를 따르지 않아 갈등을 유발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몰리와 보 핍이 우디보다 그들의 역할에 명백한 적임자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 과정에서 페미니즘을 의도한 설정들은 오랫동안 한 역할이나 가치에 헌신했던 이가 세대교체를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된다. 그 결과 ‘토이 스토리 4’는 새 출발을 앞둔 모든 이들이 이입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가 된다. 이처럼 과거의 한계와 작별하면서도 이를 영화의 새로운 서사로 활용하고, 시대적 흐름을 보편적인 메시지와 연결하는 것은 분명 상업성과 정치적 올바름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기 위한 전략이다.

‘Secondhand’를 변주해 ‘Second Chance’로 이름지어진 골동품 가게는 ‘토이 스토리 4’의 주제를 압축하는 메타포이자, 이 영화의 섬세한 설정을 드러내는 장치다. 우디가 이 가게에 들어가는 동기는 모두 과거의 가치와 연관되어 있다. 9년 전 헤어졌던 보 핍을 찾겠다는 미련 때문에, 혹은 앤디에게 그랬듯 보니에게 도움이 되려는 목적으로 포키를 구하기 위해 그는 이 가게에 들어간다. 그러나 가게 안에는 우디와 같이 1950년대에 제작됐지만, 결함이 있는 상품이라는 이유로 주인을 만나보지도 못했던 개비개비가 있다. 우디는 개비개비의 사연을 들으면서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자신을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여백을 발견한다. 처음에는 포키를 붙잡아둔 악역처럼 보였던 개비개비에게 그는 목소리 상자를 양보하고 그를 진정으로 걱정한다. 주인에게 사랑받고 싶어하는 우디가 주인과 소통하기 위한 전제조건을 포기한다는 점은 역설적이다. 그러나 바로 이 선택을 통해 우디는 주인 없이도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용기를 얻는다. 이전까지 우디는 스스로를 버림받은 ‘중고품’처럼 연민하며 자신의 쓸모를 고민해야 했다. 그러나 이 가게를 거친 후 우디는 비로소 주인에게 스스로의 쓸모를 증명하는 대신, 보 핍과 함께 자유롭게 세상을 누비면서 도움이 필요한 다른 장난감들을 돕는 새로운 삶을 발견한다. 그에게 주어진 ‘두 번째 기회’다.

이전까지 ‘토이 스토리’의 영화들은 위기에 처한 세계를 재건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 항상 어린이와 장난감들의 세계는 다양한 이유로 위기에 처했고, 우디를 비롯한 장난감들은 우정과 신뢰로 이를 봉합했다. 그러나 ‘토이 스토리 4’는 이미 흘러간 과거의 가치를 다시 복원시키는 대신 무너뜨리며 애도할 것을 요구한다. 목소리 상자를 넘겨준 뒤 우디의 등에 남은 실밥 자국처럼, 과거와 작별하는 과정은 항상 흉터를 남긴다. 그러나 시간은 과거에 머무르는 이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언젠가 내가 서 있는 이 자리는 타인의 몫이 되고, 절대적이라 믿었던 가치는 변한다.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끝나버린 무대에서 각본을 읽으며 과거에 머물 것인가, 보안관 배지를 제시에게 넘겨주고 떠난 우디처럼 자신을 필요로 하는 새로운 무대로 나아갈 것인가. 선택은 개인의 몫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애도하는 순간, 더 넓은 우주에서 자신의 진정한 쓸모를 발견하는 ‘두 번째 기회’가 시작된다.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


CREDIT 글 | 김리은
디자인 | 전유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