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여자친구’를 읽다

2019.07.01 페이스북 트위터


‘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여자친구’는 페미니즘 연애소설이다. 이 두 단어는 양립 가능한가? 모순형용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에서 연애를 지울 순 없다고 이 책은 말한다. ‘페미니즘’과 ‘남성과의 연애’가 양립 가능한가? 많은 여성들이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면서 부딪혔을 문제다. 페미니즘이 시대의 담론이 되고 여성들이 스스로를 돌아보며 ‘개념녀’를, ‘코르셋’을 벗어 나가며 전진하고 또 전진할 때, 대부분의 남성들은 그 자리에 있었다. 아니, 오히려 퇴보했고, 뒷걸음질 치다 쥐를 잡기도 했지만 자신의 발에 채인 게 무엇인지도 몰랐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투쟁하는 여성은 이제 반문하게 된다. 남성과의 연애라는 것이 여성에게 가능한 일인지를.

지금 페미니즘의 화두 중 하나는 ‘비혼’과 ‘비연애’다. 대부분이 건너갈 수 없는 그 차이와 불가능성에 대한 회의거나, 제도와 형식으로서 성립되어 온 착취적 관계에 대한 반대이거나, 나아가 여성에겐 남성이 필요 없다는 선언이다. 그러나 페미니스트인 동시에 이성애에 대한 욕망과 성욕을 가진 여성도 존재한다. 여성에게는 그들 각자의 페미니즘이 있다. 페미니즘은 여성에게 억압이 될 수 없고, 여성이 기혼이라는 이유로, 혹은 이성애를 한다는 이유로 페미니스트가 아닌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페미니즘은 페미니스트의 ‘이성애’ 역시 지워 버릴 순 없다는 것이고, 가시화될 필요성 또한 있다.

이 책은 그 실낱같은 가능성에 대한-그 역시 회의적이지만-투구이다. 물론, 소수는 결코 다수를 배제하거나 소외시킬 수 없다. 기실 페미니즘 담론이 가장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트위터 등지의 작은 세계를 벗어나면, 이성애를 하는 여성이 더 다수일 것이다. 그런데 그 다수를 배제하지 말자고 말하는 것은 페미니즘은 그 다수와 함께 가야 하기 때문이다. 여성이 일상에서 피부로 느끼는 불평등과 부조리에 항거하고 수정해나가야 하는 것이 페미니즘이기 때문이고, 연애라는 것이 수많은 여성이 가장 최전선에서 맞닥뜨리는 불평등과 부조리의 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여자친구’는 페미니즘 소설이자 연애소설이다. 이 소설은 ‘연애소설’로서도 기능하기 위해, 그러니까 공존이 불가능한 두 존재를 한 자리에 놓기 위해 작가는 여자가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기 전 그들의 관계가 있었다는 과거 설정을 넣었다. 그럼으로써 도무지 한 자리에 있을 수 없는 존재들에게 감정의 끈이 생겨난다. 그리고 문화계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부터 강남역 살인사건, 서지현 검사의 고발, 2016년부터 이어져 온 일련의 사건들이 여성들의 세계를 뒤바꿔 놓은 시간들을 그들 관계의 공백으로 만들어, 완전히 변한 여성과 그대로인 남성을 있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당연히 말이 통하지 않는다. “세상을 바꾸기 전에 한 남자인 나를 먼저 바꿔 보라는 말”에 연애는 시작된다. 여자는 회의적이지만 일말의 희망으로 남자의 생각을 바꿔 보려 하지만, 남자가 보이는 행동은 결국 연애를 위한 제스쳐일 뿐, 머릿속으론 여자를 한 사람의 인간이 아닌 구시대적 연애 상대로서 통제하려는 약은 수만 쓴다.

혹자는 남자가 여자의 말을 들어 주는 시늉이라도 해서, 데이트 폭력을 하지는 않아서, 성매매를 하지는 않아서, 불법촬영물을 찍지는 않아서, 상위 5퍼센트의 남자라고들 말한다. 사실은 사실이다. 다만 페미니스트 여성 독자에겐 그것은 푸념에 가까운 ‘웃픈’ 토로지만, 일부 독자는 진심으로 “이만하면 정말 괜찮은 남자”라고 말한다. 웃자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심지어 어떤 남성 독자는 이 소설이 블랙코미디라는 사실마저 읽지 못하고, “미친 페미 여친을 만나 개고생하는 불쌍한 남자 이야기”라고 오독하는 감상마저 올라온다.

독해력의 문제인가? 그보다 위치의 문제이다. 이 시대의 여자들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나아간다. 남자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그 둘이 나란하게 만날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아주 약간의 희망을 가지자면, 알라딘의 통계자료를 참고할 때 이 책은 일반적인 페미니즘 도서보다, 심지어 대중적인 문학도서보다 남성 독자의 구매율이 높다. 물론 그 대부분이 이 책이 블랙코미디라는 것조차 읽지 못하는 완전한 오독으로 독서를 끝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아닐 수도 있다.

어쨌거나 이렇게 번번이 다시 회의로 돌아오면서도, 그럼에도 페미니즘 연애소설이 필요한 것은 페미니즘은 여성의 욕망을 소거하지 않고, 일상에서의 불평등에 맞서 투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성애자 페미니스트 여성이 연애를 하고 싶다면, 그에겐 좀 더 좋은 연애를 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여자친구’의 등장은 미덥고 든든하다. 그 존재만으로도 일단은 안심이 된다.


CREDIT 글 | 이예지 (‘GQ’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