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시태그로 미리보는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회

2019.04.18 페이스북 트위터
서울시립미술관이 영국 테이트미술관과 공동 기획한 ‘데이비드 호크니’전을 개최했다. 아시아 최초로 열리는 데이비드 호크니 개인전에 대한 소문으로 국내 미술계는 오래 전부터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고, ‘우리 시대가 가장 사랑하는 아티스트’라는 타이틀답게 전시는 개막과 동시에 수많은 관람객들의 행렬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현존하는 최고가 작품기록을 가졌다는 게 이 80대 노인을 설명하는 첫 번째 수식어겠지만, 이번 전시는 사진 촬영이 불가능하고 도록도 아직 발간되지 않은 터라, 자세히 보면 더욱 흥미로울 데이비드 호크니의 세계를 대면하기 전에 몇 가지 추가적인 키워드들을 짚어보고 미술관을 찾는 것이 감상을 더욱 유익하게 할 것이다.


ⓒDavid Hockney, Collection Tate, U.K. ⓒTate, London 2019

#로스앤젤레스
1937년 영국에서 태어난 데이비드 호크니는 캘리포니아의 내리쬐는 햇볕과 여유로움에 매료되어 1964년 로스앤젤레스로 기반을 옮긴다. 여기서 그 유명한 수영장 시리즈들이 탄생하는데, 그에게 독보적인 타이틀을 선물한 1019억 낙찰작 ‘예술가의 초상’과 이번 전시의 대표작 ‘더 큰 첨벙’이 그것들이다. 영국의 우중충한 날씨와는 달리 매일이 화창한 로스앤젤레스엔 집집마다 수영장이 있었고, 그 낯선 공간이 주는 매력에 빠진 호크니는 수영장이 반사하는 빛의 모양과 물의 투명함을 표현하는 데 열중한다. ‘더 큰 첨벙’은 다이빙의 순간 ‘첨벙’하는 물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정적인 화면에서 역동하는 하얀 물살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간결한 디자인과 채도 높은 화면 속에서 시간이 멈춘 듯한 연출은 오히려 외로운 느낌을 주는데, 환상적인 장면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쓸쓸함이 그의 작업이 선사하는 궁극적인 매력인 것 같다. 할리우드의 연극적 태도와 선명한 색감을 사랑한 작가는 무대미술과 영상예술 등의 분야에도 열정을 보이며 30여 년의 시간을 LA에서 보낸다.


ⓒDavid Hockney, Collection Tate, U.K. ⓒTate, London 2019

#자주의
데이비드 호크니의 행보를 시기적으로 조망한 이번 전시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그의 초기작으로 전시의 문을 연다. 1925년 라이카 카메라가 등장하고 사진이 휴대성이라는 날개를 달고 대중적으로 퍼져나가자, 미국 미술은 사실적 묘사의 필요성에서 벗어나 잭슨 폴록 , 마크 로스코 등으로 대표되는 추상표현주의로 방향을 돌린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시류를 따르지 않고 독자적인 시도를 시작하는데, ‘환영적 양식으로 그린 차 그림’에서처럼 추상과 재현을 오가며 작품에 입체주의의 영향을 받은 듯한 글자들을 삽입하고 캔버스의 모양을 변형시키는 등의 실험을 계속한다. 결국 형식에 대한 그의 고민은 자연주의로 나아가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걸작 ‘클라크 부부와 퍼시’, ‘나의 부모님’을 포함한 2인 초상화 시리즈로 이어진다. 작가는 주변 인물들을 오래도록 관찰하여 실물과 비슷한 크기의 인물화를 제작하였는데, 모델의 표정과 몸짓 등으로 각자의 캐릭터를 표현한 것뿐 아니라, 빛과 그림자, 크기와 구도로 인한 공간감 등을 통해 특징적인 인상과 정서를 보여주며 두 모델 간의 미묘한 관계를 은근히 드러낸다. 시리즈는 큰 인기를 얻었지만, 하나의 유파에 가담하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모색하던 데이비드 호크니는 결국 자연주의에서도 벗어나려 몸부림친다.

ⓒDavid Hockney, National Gallery of Australia, Canberra 2010

#움직이는 초점
3차원의 세상을 2차원의 평면에 재현하면 균열이 생긴다. 우리는 세계를 사진처럼 인식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사진엔 부피감이 없으며 단편적인 시선에서 비롯된 균열은 결국 세계와의 큰 차이로 이어진다. 실제로 우리가 세상을 인식할 때는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관점이 반영되는데, 사진처럼 모든 대상을 객관적으로 평등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관심을 두는 특정한 대상만을 주목할 뿐 그밖의 사물들의 색상과 모양 따위의 구체적인 정보들은 세세하게 분별하지 않는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화학적인 사진은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카메라를 작품 제작에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피카소의 다중 초점을 실험해오던 작가는 사진을 활용해 공간과 평면을 연결하는 재해석을 시도하는 포토콜라주를 창안하게 된다.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한 사진을 자유롭게 이어 붙이던 호크니는 회화에도 같은 관점을 적용시켰고,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60개 캔버스 작품 ‘더 큰 그랜드캐니언’으로 대표되는 멀티 캔버스 회화 시리즈에도 움직이는 초점의 연구를 이어간다. 대상의 부분 부분이 다양한 각도에서 관찰되어 중첩되기도 하고 연결되기도 하는 등 각각을 그럴듯한 공간에 배치시켜 익숙하면서도 낯선 공간을 연출해낸 이 대형 작업은 관람객을 감싸 안아 현실에 없는 새로운 장면 안에 존재시킨다.

©david hockney In The Studio, December 2017, 2017

#얼리어답터
데이비드 호크니는 언제나 새로운 매체의 탐구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1980년대 복사기와 팩스로 전송된 이미지들을 조합한 작품을 제작하는 등 오래 전부터 디지털 기술을 자신의 작업에 접목하려 시도해왔다. 가장 성공적인 시도는 아이패드를 활용한 최근의 작업들인데, 아이패드를 손에 넣은 뒤로는 항상 태블릿을 들고 다니며 자신이 목격하는 다양한 장면들의 드로잉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이패드는 그에게 완전히 새로운 매체였으며, 창의력 넘치는 작가에게 즉흥적인 마법의 힘을 부여한 것 같았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새로운 그리기 방식 뿐 아니라 작업의 새로운 유통 과정 자체를 즐겼으며, 이 훌륭한 도구를 어떤 선입견도 없이 받아들였다. 이번 전시에는 호크니의 최근작이라 할 수 있는 아이패드 시리즈가 포함되진 않았지만 전시의 마지막에 ‘2017년 12월, 스튜디오에서’라는 작품을 만날 수 있는데, 이 늙지 않는 슈퍼스타는 ‘사진측량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라는 디지털 기술로 3천장의 사진을 연결해 마르지 않는 그의 상상력을 작품 속에서 구현한다. 따분함을 싫어하는 83세 얼리어답터 데이비드 호크니는 다양한 매체를 통한 실험을 아직도 멈추지 않고 있으며 그의 쾌활한 에너지로 젊은 예술가들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있다.


CREDIT 글 | 황윤지(아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