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연이 세상에 최선을 다하는 일

2019.04.17 페이스북 트위터


영화 ‘생일’은 ‘세월호 사건’이라는 표현을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관객들은 이 작품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 모두 알고 있다. 이 말은 영화를 보기 전부터 관객들이 슬퍼할 준비를 충분히 마쳤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 사고와 유가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타인들이 그 사건과 당사자들에 완전히 이입한다고 착각하거나, 영화가 연출하는 드라마에 빠져 당사자들보다 훨씬 더 슬퍼하는 것은 오히려 위험한 일일 수 있다. ‘생일’은 미디어에서도 여러 번 다뤄진 세월호 사건의 유가족들을 둘러싼 큰 사건들을 굳이 다시 스크린에서 재연하는 대신, 사고로 아들을 잃은 이후 그 전과는 완전히 다른 매일을 조용히 살아가고 있는 순남(전도연)을 비춘다. 해외에서 일하다 노동 현장에서 벌어진 사고 때문에 감옥에 수감되어 아들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한 남편 정일(설경구), 사고 트라우마로 물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어린 딸 예솔(김보민) 사이에서 순남은 누구와도 나눠질 수 없는 슬픔을 홀로 감당하려 한다.


"세월호 유가족의 이야기라고 들어서 부담스럽고 어려웠다. 시나리오를 읽고 엄청 울었다. 너무 험난한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서도 힘든 작품일 거라고 만류했다. 특히 ‘밀양’을 한 뒤부터는 아이를 잃은 엄마를 연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컸다." (‘한국스포츠경제’ 인터뷰) 이런 이유로 ‘생일’ 출연을 고사했던 전도연은 순남을 연기하는 과정에서도 실제 유가족들의 슬픔을 섣불리 이해하려 들거나, 그들의 슬픔을 앞서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어느 순간 아들 수호(윤찬영)의 부재를 실감하고 아파트가 떠나가도록 큰 소리로 울어대는 장면 이전까지, 순남은 그저 표정이 사라진 지친 얼굴로 마트에서 일을 하고, 딸을 돌보고, 밥을 먹는 등 매일매일 해야 하는 일을 하며 살아갈 뿐이다. 차를 타고 지나가다 ‘세월호를 인양해라’라는 외침을 듣지 않기 위해 라디오의 볼륨을 높여버리거나, 세월호 유가족들은 보상금을 많이 받아서 좋겠다는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멀리서 들을 때, 모든 게 지긋지긋하다는 듯한 전도연의 표정은 분노하거나 슬퍼하기에도 지쳐버린 데다 아들의 사망을 외면하고 싶은 순남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설경구의 연기가 종종 영화의 감정을 앞지르는 데 비해, 전도연의 연기는 관객들 역시 섣불리 울거나 슬퍼하지 못하게 만든다.

영화 뒷부분에 꽤 길게 이어지는 수호의 생일 파티 장면에서 수호를 사랑했던 친구들과 알았던 사람들, 다른 유가족들은 수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야기 나누며 자연스럽게 울고 웃는다. 생일 파티가 수호의 사망을 인정하고 그를 잊어버리기 위한 의식이라고 생각했던 순남은 그게 아님을 깨닫고, 실컷 눈물을 흘린 뒤 아주 말개진 얼굴로 웃으며 다른 이들과 대화를 나눈다. 타인의 모든 슬픔을 이해한다는 말은 기만이지만 어떤 식으로든 그 슬픔을 나눌 방법은 있다는 것, 이 자리에 없는 누군가의 개별성을 오랫동안 잊어버리지만 말자고, 대신 남아있는 사람들은 힘껏 건강하게 살아가 보자는 ‘생일’의 태도를 전도연 덕분에 함께 믿게 된다. 이것은 실화를 그리는 영화에서 한 배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일 것이다.

CREDIT 글 | 황효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