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쇼핑에 계속 돈을 쓰는 이유

2019.04.08 페이스북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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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에서 절대 사기 힘들다고 생각한 품목으로 옷과 신발이 있다. 원래 성격상, 또 직업 때문에 자주 외출을 못하는 대신 한번 나가게 되면 겸사겸사 쇼핑도 하는 게 그동안의 생활 패턴이었고 옷은 반드시 입어보고 원단이나 재단, 바느질 같은 걸 살펴야 했다. 신발도 발이 편한 제품을 찾으려면 신중하게 골라야 하니까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안된다. 예전부터 온라인 쇼핑을 자주하던 사람의 말로는 샘플로 올라온 사진만 봐도 그 옷이 내 사이즈인지, 입어서 잘 맞을지 대충 감이 오니까 거의 실패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나한테는 그런 눈썰미 따위가 없으니 남의 얘기라고 믿었다.

시작은 웹툰 연재를 시작하고 6개월을 넘겨갈 즈음, 주간 마감의 사이클에 지쳐서 스트레스가 한계치에 이르러 무심코 열어본 해외사이트였다. 아울렛 쇼핑몰이었고 거기서 대충 감으로 구두와 가방 같은 걸 고르기 시작했는데 뭘 꼭 사고 싶어서라기보다 그저 사진을 이리저리 넘겨보며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자체가 재미있었다. 그러다 가격이 적당하다 싶어 결제 버튼을 누르고, 한국으로 직배송이 안되는 곳이라서 배송대행 사이트를 찾고, 그렇게 시작된 온라인 쇼핑몰 구매는 범위를 조금씩 넓혀가다가 드디어 TV 채널조차 홈쇼핑에 고정시키게 되었다.

홈쇼핑 방송은 24시간 돌아가고 시간 단위로 계속 상품이 바뀌니까 굳이 살 생각이 없어도 구경만으로도 재미있다. 틀어놓고 일하다 보면 심심하지도 않다. 여기까지면 다행이지만 역시나 눈에 보이면 사고 싶은 게 사람이라 저절로 손이 핸드폰으로 간다. 처음엔 회원가입도, 주소나 결제수단 등록도 절대 안 하려던 것이 한번 시작하고 보니 회원가입하고, 적립금 챙기고, 쿠폰 챙기고, 구매 후기 열심히 쓰는 우수고객이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처음엔 화장품이나 생필품들을 소심하게 사다가 결국 옷이나 구두, 가방까지 옮겨가게 된 것은 무엇보다 가격 때문이었다. ‘잭필드 바지 3종 세트’ 시절부터 유구하게 이어져 온 '이 가격에 이런 옷을 몇벌이나!'의 유혹에 넘어갔다. 기모바지 세 벌에 3만 9천 원, 여름에 입는 면 티셔츠가 무려 다섯 벌에 4만 9천 원, 봄에 입는 고급 니트 네 벌에 5만 9천원, 그리고 2주도 안 돼서 최저가 방송이 나오면 4만원대로 떨어진다. 성급하게 결제를 눌렀다가 받아서 입어보고 마음에 안 들면 무료 반품도 해주고 원하는 대로 교환도 해준다는 게 홈쇼핑이지만 반품, 교환, 환불은 일부러 그게 재미있어서 취미 붙인 사람이 아니고서는 결코 하고 싶지 않은 과정이다. 그래서 일단 사게 되면 좀 마음에 안 들고 이상해도 귀찮아서 수령하게 되는데, 그렇게 집안에 불필요한 물건들이 쌓여간다. 어느새 집에는 너무 많은 옷과, 구두와, 화장품과 온갖 생필품들이 쌓여서 빨리 버리지 않으면 잘 자리도 없어지게 생겼다. 지난 겨울 영원히 안 입을 것 같은 옷들을 종량제 봉투 30킬로짜리에 담아 세 번 버렸다. 일부는 친지에게 양보했고 어떤 옷은 SNS에 광고해서 팔기도 했지만 홈쇼핑에서 구입했다가 처치 곤란이 된 저가 의류들은 나만큼이나 남들에게도 처치 곤란일 테니 달리 처분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그럼 나는 홈쇼핑 중독인가? 고민을 해 본다. 왜 홈쇼핑일까. 홈쇼핑에서 내가 사는 건 물건보다 어쩌면 모바일 앱에서 주는 할인 쿠폰과 물건을 사고 받은 적립금으로 안그래도 저렴하다는 상품을 더 많이 깎아서 산다는 만족감 자체일 것이다. 꼭 필요한 물건을 사기보다는 그저 물건을 사면서 십 원이라도 싸게 사는 만족감을 산다. 입버릇처럼 물건을 살 때 원하는 것을 사야지 가격을 보고 사선 안된다고 다짐하지만 막상 결제를 누를 때는 가격이 좌우한다. 나름 합리적인 명분도 있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수도권 외곽 변두리에서는 어차피 동네 상가에 나가 봐야 서울만큼 물건이 다양하지도 않고 가격도 오히려 비싸다. 서울까지 다녀오기엔 너무 멀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홈쇼핑이나 인터넷 쇼핑몰에서 혼자 이것저것 고르며 물건을 찾는 쪽이 더 재미있다. 가만히 기다리면 이틀 안에 집에서 받을 수 있다.

그러나 1인 가구로 살면서 체득한 것은 물건은 필요할 때 사자는 것이다. 생필품이라도 휴지는 가능한 (한) 12개짜리 한팩, 샴푸나 비누도 당장 쓸 만큼만, 식료품도 가능한 보관이 쉽고 오래 둘 수 있는 인스턴트 간편식 위주로, 신선식품도 최대한 소포장으로. 작은 단위로 구입하면 단가는 비싸지만 대량 구매해서 처치곤란이 되거나 부패해서 버리는 비용을 생각하면 오히려 싸다.
무엇보다 사서 쌓아둘 공간이 없다는 부동산의 문제가 제일 크다. 그러니 마음 속으로 정리를 해본다. 세상 절대불변의 진리는 ‘세상에 싸고 좋은 물건은 없다’이다. 7만 9천 원에 세 벌 산 옷은 나누면 한 벌에 3만 원도 안하지만 지나고 나면 그중에 한 벌이나 잘 입으면 다행이니 결국 3만 원도 안 될 옷을 8만 원이나 주고 산 것과 같다. 한 번에 세 벌이든 다섯 벌이든 그냥 단품이든 가격이 8만원이나 하면 아주 형편없는 물건은 아니다. 가격만큼의 제품이 오긴 온다. 나눠 보면 3만 원이라는 건 그저 달콤한 주술에 불과하다. 5만 8천 원에 1000밀리 대용량 네 병, 5백 밀리 중용량 여섯 병을 묶어준 영국제 수입 샴푸는 머릿결에 확실히 좋은 제품이었고 사용감도 괜찮지만 혼자서 저 많은 샴푸를 다 쓰려면 대략 5년 이상 걸리지 않을까. 여기저기 샴푸를 나눠줬지만 아직도 많다. '가족이 많은 친지의 집에선 소모품이라 필요하겠지'라는 건 나의 생각이고 그 집에도 취향이라는 게 있는데 남한테 얻은 샴푸를 주구장창 쓰는 건 과연 좋을까?

이렇게 머릿속에서 온갖 합리적인 이유를 제시하며 홈쇼핑을 끊으려 한다. 하지만 싸게 사는 것에 끌려다니지 말자면서도 홈쇼핑을 떠나지 못한다. 이쯤되면 자본주의 세상을 살아가는 욕구 중에 제일 큰 것은 그저 ‘뭔가를 사고 싶다, 끝없이 사고 싶다’가 아닐까. 돈은 정해져 있지만 끝없이 사고 싶고 싸게 자주 많이 사고 싶은 것이 지금의 삶이다. 하지만 뭐 어때. 그것도 살아가는 이유다. 쓰기 위해서 돈을 번다. 그리고 계속 쓴다.


CREDIT 글 | 오경아(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