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민, 언제나 맑음 뒤 서늘함

2019.04.03 페이스북 트위터


KBS2 ‘닥터 프리즈너’에서 남궁민이 연기하는 나이제는 밝은 표정과 능청스러운 말투를 가진 인물로 묘사된다. 그러나 그의 말과 행동에는 항상 서늘함이 서려있다. 나이제는 오정희(김정난)에게 병을 가장해 형 집행정지를 받아낼 방안을 설명하며 “(심장이) 멈추면 어떻습니까. 제때 살려내면 되죠.”라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자신을 서서울교도소의 후임 의료과장으로 인정하지 않는 선민식(김병철)에게는 그를 협박할 단서를 제시하고도 “아유, 우연 한두 개 겹친 거 가지고 협박이라뇨. 당치도 않으십니다 과장님.”라는 대사를 마치 일상적인 대화톤으로 내뱉기도 한다. 단정하고 맑은 인상을 가진 인물이 가볍게 악행을 입에 올릴 때, 그의 의외성과 무게감은 배가 된다. 절대선을 추구하던 인물이 정의 실현을 위해 처절하게 변절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 드라마에서, 맑고 단정한 얼굴 위로 서늘함을 가볍게 얹어내는 남궁민의 존재감이 돋보이는 이유다.

크고 맑은 눈과 투명하고 해사한 얼굴, 날렵한 얼굴선. 남궁민이 SBS 일일시트콤 ‘대박가족’에 출연하며 처음 얻은 수식어는 ‘리틀 배용준’이었고, ‘남궁뎅이’라는 별명 역시 마냥 귀엽고 부드러운 남성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2015년 인터뷰에서는 “10년간 짝사랑 전문 배우였다”(‘스포츠조선’)라고 스스로의 연기 생활을 회고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가 주목받은 순간들은 오히려 마냥 선하거나 아련한 남성의 모습에 머물지 않을 때였다. MBC ‘내 마음이 들리니?’의 봉마루는 결핍과 열등감으로 가득하면서도 마냥 악하다고는 할 수 없는 인물이었고, SBS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연기한 스타 쉐프 권재희는 도저히 연쇄살인마라고 상상할 수 없는 호감형의 남성이었다. 늘 부드러운 미소를 짓던 권재희가 대사 없이 싸늘한 표정만으로 자신이 연쇄살인마임을 드러내던 순간은 오랫동안 명장면으로 회자될 정도였다. SBS ‘리멤버’와 KBS ‘김과장’에서는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악인이나, 의도치 않게 의인으로 거듭나는 엉뚱한 인물처럼 다소 극단적이거나 과장된 인물도 소화해낼수 있는 연기자임을 증명해내기도 했다. 단정해서 흐트러지기 어려울 것 같던 그의 얼굴과 절제된 말투는 점차 의외의 캐릭터에 입체성을 부여하는 장점이 됐고, ‘닥터 프리즈너’는 그런 장점이 극대화된 결과물이다. 과거 나이제는 사비를 털어 노숙자를 진료하고 병원 이사장의 아들 이재환(박은석)의 부당한 행동에 맞설 만큼 맑고 올곧은 인물이었지만, 힘 없이는 정의를 추구할 수 없음을 깨닫고 어떤 악한 수단도 가리지 않는 모습으로 변모한다. 그러나 그를 연기하는 남궁민은 굳이 악에 받친 표정을 과장하며 표현하거나 목소리에 불필요한 힘을 주지 않는다. 세상에 물들지 않을 것만 같던 맑은 인물이 악을 가볍게 입에 올리는 순간이 더욱 서늘하다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 효율적으로 보여준다.

처음부터 남궁민이 효율적인 연기를 하는 사람은 아니었을 수도 있다. 대본을 많이 볼수록 뽑아낼 수 있는 감정이 많다며 스스로를 “로딩이 늦은 배우”(‘씨네21’)라 묘사했고, “지방 촬영 땐 회식에도 안 나오고 펜션 구석에서 대본을 외운다”(‘동아일보’)라고 밝혔을 정도로 그는 양적인 성실함을 바탕으로 성장해온 연기자였다. 그렇게 연기하기를 어느덧 20년차. 이제 그는 자신의 얼굴이 가진 이미지를 애써 지우지 않아도, 작은 움직임과 변화만으로 의외의 모습을 설득해내는 어떤 수준에 다다랐다. 이것만큼은 명백하게 효율의 영역이자 노련함의 영역이다. 이전까지 그가 자신의 얼굴을 지우는 과정을 응원해왔다면, 이제는 오히려 그의 맑은 얼굴을 응원해야 할 때다. 그의 맑음에 어떤 서늘함이 변덕스러운 기상처럼 찾아올지를 기대하면서.

CREDIT 글 | 김리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