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희열│① 대화를 바라보다

2019.04.02 페이스북 트위터


KBS ‘대화의 희열’ 시즌 2의 첫 번째 게스트는 백종원이었다. 그동안 백종원은 다양한 방송에 출연해 자신의 이야기를 했고, ‘대화의 희열’에서 다룬 내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날의 이야기가 와 닿을 수 있었던 것은, 이것이 새로운 사람들과 나눈 새로운 대화였기 때문이다. 다니엘 린데만은 백종원에게 ‘부자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각’에 대해 물었고, 이는 진지한 토론으로 이어졌다. 유희열은 ‘학창시절 인기가 많았는지’를 장난스럽게 물어보며 자신만만한 백종원이 드물게 시무룩해지는 순간을 이끌어냈고, 신지혜는 기자답게 국정감사에서 백종원을 참고인으로 세울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설명함으로써 그를 대변했다. 대화의 마지막 ‘식당을 하시는 분들이 음식을 사랑하셨으면 좋겠다’라는 김중혁의 말에, 백종원은 공감하면서도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가질 필요는 없어요. 하다보면 방향성이 생길 거예요’라며 또 다른 관점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이것은 백종원에 대한 같지만 다른 이야기였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누군가를 또 다시 발견하는, 새로운 종류의 희열이었다.

시즌 2 기자간담회에서 신지혜는 백종원 편에 대해 “녹화를 8시간 했는데 그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데일리안’)”라고 밝혔다. 시즌 1의 첫 방송이었던 김숙 편에서 잠깐 나왔듯 녹화가 시작되면 제작진은 출연진만 남겨놓은 채 현장을 떠난다. 신수정 PD는 “카메라도 최대한 보이지 않게 설치한다”고 설명했다. 긴 시간 동안 그들이 나누는 것은 진짜 대화다. 여기에는 백종원에게 ‘요즘도 홍탁집과 연락하고 지내냐’고 묻는 것처럼 최근 이슈와 근황에 대한 가벼운 질문부터 송해에게 ‘세상을 떠난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묻는 것처럼 쉽게 꺼내기 어려운 질문도 있다. 긴 대화를 나누면서 패널들과 게스트 사이에 어떤 관계가 형성되기에 가능한 일이다. 단순히 일방적으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이야기를 하며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천종호 판사와의 대화에서 참혹한 소년 범죄에 분노하던 패널들은 이러한 범죄가 전체 소년 범죄 중 5% 미만이며, 나머지 95%는 생계형 범죄라는 사실을 듣고 ‘소년법의 존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이수정 교수와 대화를 나누던 중 신지혜는 여성으로서 자신이 겪었던 공포를 털어놓았고, 이를 통해 남성 패널들은 ‘한 번도 그런 공포를 느껴본 적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화의 희열’ 제작진은 게스트를 ‘주제’라고 표현하고, 이들의 대화는 게스트의 개인사를 넘어 사회적 담론으로까지 확장된다. 결국 한 개인을 온전히 이해하는 일이, 세상을 이해하는 일이 된다.

하나의 점처럼 보였던 개인의 삶은 ‘대화의 희열’에서 하나의 선으로 연결된다. 다니엘 린데만이 표창원에게 던진 ‘왜 한국에는 경찰을 불신하는 분위기가 있을까’라는 질문은, 백종원에게 던진 ‘한국에는 왜 존경받는 부자가 없을까’라는 질문과 일맥상통한다. 표창원에게 민주화 운동의 반대편에 서있던 경찰으로서의 입장을 듣고, 백종원에게 일제 강점기부터 역사를 등지고 사욕을 채웠던 부자들에 대한 생각을 듣는 것은 무심히 지나쳐온 과거를 되짚어 현재를 바라보는 일이기도 하다. 배철수와 음악 이야기를 나누던 중 신지혜는 ‘비틀즈를 책에서 배웠다’라고 말했고, 그와 비슷한 또래인 다니엘 린데만은 ‘비틀즈와 비지스, 롤링스톤스가 헷갈린다’라고 이야기했다. 반면 좀 더 높은 나이대의 유희열과 김중혁, 배철수는 이들을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면서 ‘지금의 10대에게 레드벨벳과 블랙핑크가 헷갈린다고 하는 것과 똑같다’라고 설명했다. 단절되어 있던 세대가 하나의 주제를 통해 서로를 이해한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특별한 장치가 아니라, 그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다.

그래서 ‘대화의 희열’은 단순한 토크쇼라기보다, 또 다른 갈래의 관찰 예능으로도 볼 수 있다. 가끔씩 카메라가 창 밖에서 패널들과 게스트가 앉아있는 안쪽 공간을 비추는 것은, 이 자리에 직접 참여할 수는 없지만 진지하게 몰입하고 있는 시청자의 시점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때로는 대화뿐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모든 것들이 한 사람을 이해하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코드블루가 떠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이국종 교수의 담담하고도 착잡한 표정이나, 라면 하나를 끓이면서도 신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백종원의 모습처럼. 대화와 그것이 이루어지는 상황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어떤 사람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을 한 뼘 더 이해하게 된다. JTBC ‘효리네 민박’에서 시청자들은 아름다운 제주도의 민박집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관계를 맺고 서로를 이해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대화의 희열’은 보다 한정된 공간에서 사람들 간의 대화와 소통을 담아낸다. 점점 예능 프로그램이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고, 그를 통해 자신을 좀 더 이해하게 만들면서 모두의 세계를 넓히고 있다.


CREDIT 글 | 서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