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하’, 진짜든 가짜든 믿거나 말거나

2019.03.04 페이스북 트위터


* 영화 ‘사바하’의 내용이 있습니다.


여기 가짜를 찾는 남자가 있다. 박 목사(이정재). 그는 사이비 종교들을 귀신같이 추적해 내부의 비리를 폭로하는 것을 생업으로 산는 사냥꾼이다. 거짓 선지자들의 감별사인 그는 목사이면서도 신앙에는 회의적이다. 그가 거짓 선지자와 사이비 종교 재단의 진상을 파헤치는 이유에는 스스로의 신앙을 긍정하지 못하기에 다른 이들의 신앙 또한 무가치한 것이라고 증명함으로써 위안을 얻으려는 목적도 있는 듯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목사는 가슴 한구석에 이 세상 어딘가에는 자신이 목격한 것들과는 다른, 가짜가 아닌 진짜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버리지 못한다. 어찌 보면 논리적인 흐름이다. 애초에 그가 신에 대한 기대조차 갖지 않았다면 신앙에 회의하지도 않았을 일이었다.

그런 박 목사의 눈앞에 회가 동하는 사냥감이 나타난다. 사슴동산. 이 단체는 불교 교리를 기반으로하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부처님이나 보살님이 아닌 장군님을 모신다는 수수께끼의 집단이다. 비록처음에는 박 목사가 겨울 휴가 비용을 위해 뭐라도 건져 보려고 지목한 타겟이었지만 조사가 진행되면서 이 사슴동산이라는 단체의 이면에 커다란 음모가 도사리고 있음이 밝혀진다. 그들은 지도자의 영생을 위해서라며 연쇄살인을 저질러왔던 것이다. 박 목사는 이들이 저지른 범죄행위에 경악하는 한편 어쩌면 이들이야말로 자신이 그토록 찾고 싶었던 진짜가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진지한 이야기 같아 보이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이들이 가진 목표라는 것이 참 안개처럼 희뿌옇기 그지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박 목사부터 정리해보자. 그는 신의 존재에 회의를 하고 있고 이 회의를 깨줄 무언가를 찾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초상 현상을 발견한 것만으로 신의 존재가 증명되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심령치료, 예언, 염동력 그리고 염사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하면 새로운 연구 분야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지 기독교의 신이 실존한다는 증거는 되지 않는다. 반대로 그가 목격한 불행한 사건들이 신의 부재를 증명하지도 않고 말이다. 이렇게 불투명한 사고방식은 사슴동산의 신도들이라고 다를 바 없다. 이들이 만들고 싶어 하는 좋은 세상이란 명확하지 않고 자본주의 사회의 한계를 극복할만한 비전도 없는 듯 보인다. 그들이 가진 신앙의 근거는 그저 교주 김제석의 손가락이 다른 사람보다 몇 개 더 많으며 그의 얼굴이 무척이나 동안이라는 사실뿐이다. 만약 김제석을 실험하거나 해부해서 불로장생과 동안의 비밀을 파헤칠 수 있다면 이는 인류의 미래를 위해 무척이나 고무적인 일이 되겠지만 딱히 그런 야심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바하’는 미스테리 스릴러로 충실히 기능한다. 아니, 오히려 이렇게 추상적이고 불투명하기에 미스테리 스릴러에 가깝다. 앞서 짚은 요소들은 ‘사바하’의 단점이 아닌 장점들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으로 가득하지만 이 모순을 끌고 나가는 힘이 강렬할 때 컬트가 시작된다. 설명되지 않는 모순은 강한 호기심을부르고 이 빈 공간을 메우기 위해 상상을 시작하게 되기 때문이다. 마치 사슴동산의 구성원들이 이해할 수 없는 논리로 극단적인 행동을 반복하는 모습을 본 박 목사가 저들은 혹시 가짜가 아니라 진짜이지 않을까 의심하게 되는 것처럼 미스테리 스릴러 역시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불투명하고 추상적인 빈 공간 없이는 출발하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빈 공간에서 이야기가 출발할 수는 있어도 끝을 맺지는 못한다. ‘사바하’의 결론 역시 이 모순 바깥에 있다. 가짜가 아닌 진짜를 찾던 박 목사나 괴물 같은 쌍둥이의 존재로 평생을 방황하던 금화(이재인) 모두 각자의 의문을 해소하지 못한 채로 결말을 맞이한다. 하지만 주변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에 대한 이해 여부와 별개로, 그들은 집착하고 또 고통 받았던 대상에서 벗어나 다른 누군가를 연민할 줄 아는 주체가 되었다. 이는 작품에서 그렇게나 대단하다고 강조되는 ‘진짜’들조차 하지 못한 위업이다. 이러한 엔딩까지가 장재현 감독이 얼마나 빈 공간의 필요성에 대해 깊게 이해하고 그것을 숙련되게/노련하게 활용하는지를 증명한다. 이제 작품에서 이러한 빈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여성 인물에게 마녀/성녀의 이미지를 부여하는 편의적인 선택지에서 벗어나기만 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CREDIT 글 | dcdc(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