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의 ‘길모어걸스’, 최민영의 ‘몬티 돈의 이탈리안 가든’, 이정희의 ‘크리스틴 매코널과 이상한 과자의 집’

2018.12.14 페이스북 트위터


‘길모어걸스’ (넷플릭스)


‘길모어 걸스’는 마을 광장 한가운데에 높은 정자를 놓아 완벽한 판옵티콘 형태를 갖춘 작은 마을 ‘스타즈 할로우’에서 엄마 로렐라이(로렌 그레이엄)와 딸 로리(알렉시스 블레델)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이 마을에서는 궂은 일이 좀처럼 일어나지 않을 뿐더러 설령 누가 죽더라도 사인이 노환임은 명백하기 때문에 모녀가 해결해야 되는 것은 살인 사건이 아니다. 감독 에이미 셔먼펠러디노는 평화로운 마을에서 살아가는 이들 모녀에게 남자들을 사랑하는 모습을 열심히 보여줄 것을 주문했다. 로렐라이가 굉장한 부잣집 딸이라는 것이 강조될 때에도 계급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시청자로서는 당연히 빈정이 상한다. 따라서 2018년 연말 기준으로 볼 때 이 작품이 특별히 미래적이거나 진보적인 테마의 여성 서사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연말에 기왕 이불 속에서 모니터 너머로 미국 구경을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길모어 걸스’를 이길 작품은 많지 않다. 만약 한글 자막 너머로 흘러가는 로렐라이와 로리의 대사를 당신의 귀로 붙잡을 수 있다면 ‘길모어 걸스’는 훌륭한 미국 대중문화 지침서가 된다. 거침없는 X세대인 로렐라이와 가엾은 밀레니얼인 로리가 서로의 ‘덕질’을 유쾌한 방식으로 교환하는 모습은 씬 하나하나가 별도의 코미디 스케치다. 로렐라이의 사업 파트너 수키(멜리사 메카시)가 만들어내는 황홀한 요리를 구경하는 것도 군침이 넘어가게 재미있고, 로리의 단짝 친구인 김현경(케이코 아지나)의 가정은 ‘김 씨네 편의점’의 반 세대 전 버전 같다. 혼자 잠드는 겨울밤이 길고 외로우면 볼륨을 낮춘 채 잠들어도 걱정 없다.
글. 진영(칼럼니스트)


‘몬티 돈의 이탈리안 가든’ (넷플릭스)

21세기 슈퍼리치들이 차고넘치는 ‘잉여력’을 과시하기 위해 프로 축구단이나 페라리를 사들이는 것처럼 16~17세기 이탈리아 부호들은 ‘정원 만들기’로 자웅을 겨뤘다. 누가 더 크고 멋진 분수와 아름다운 조각상과 진귀한 풀들로 가득 채운 정원으로 우리 집을 찾은 방문객들에게 부와 권력을 효과적으로 과시할 것인가. 넷플릭스에서 어쩌다 얻어 걸린 이 아름답고 우스꽝스러우며 유쾌한 다큐멘터리에 푹 빠졌다. 이탈리아인들의 철학인 ‘라 벨라 피구라’(La Bella Figura, 멋진 형태)가 반영된 대표적 정원들을 영국의 유명 정원사 몬티 돈이 4부에 걸쳐 발품 팔며 둘러보는데, 혹한기 온수매트 위에서 극세사담요 두르고 귤 까먹으며 보기에 안성맞춤인 ‘초록초록’한 지중해기후스런 풍경에 기분이 좋아진다. 


몬티 돈은 메디치가의 아름다운 보볼리 정원을 지나 북부 베네치아 피사니 빌라의 관능적인 푸른 나무 미로를 거쳐 교황이 되는 데 실패한 스트레스를 정원 꾸미기로 해소한 어느 추기경의 저택 사이를 느긋하게 거닌다. 대표적인 비단의 도시 루카에서는 레몬 나무와 인공연못으로 정원을 꾸미면서 레몬은 내다팔고 연못에서 물고기를 잡는 알뜰한 실용주의를 추구했던 반면, 베네치아의 돈이 미치도록 많은 부호들은 미치광이같은 ‘정원 전쟁’을 벌였다고 한다. 호수 건너 앞집이 진귀한 이국의 식물을 가져다 심으면 ‘초록 탄환’이라도 맞은 듯 배를 아파하면서 역시 진귀한 식물을 가져다 심는 식이다. 참으로 이탈리아스러운 허세다. 19세기 억압적인 빅토리아 문화에 짓눌린 영국의 동성애자들이 피렌체의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찾아 몰려들었다는 역사의 곁다리 에피소드 등도 쏠쏠하게 재밌다.
글. 최민영 (‘아무튼, 발레’ 저자) 


‘크리스틴 매코널과 이상한 과자의 집’ (넷플릭스)

크리스틴 매코널과 이상한 과자의 집(The Curious Creation of Cristime McConnell)이 처음 넷플릭스에 등록된 첫날, 신작이구나 하고 아무 생각없이 재생 버튼을 눌렀다. 이게 웬걸, 바로 앉은 자리에서 모든 에피소드를 전부 끝내버렸다. 음식과 요리를 주제로 하는 많은 영상 제작물을 봤지만, 이런 구성은 또 처음이다.


할로윈을 겨냥해 공개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비밀스런 저택에 사는 크리스틴 매코널과 그의 하우스 메이트들이 벌이는 기괴한 일상을 담은 시트콤이다. 포크 손을 가진 냄새나는 라쿤 로즈와, 온몸에 붕대를 감은 까칠한 이집트 고양이 랭클, 크리스틴을 사랑하는 자상한 늑대인간 애드가, 그리고 지하 창고에 큰 몸집을 숨기고 사는 눈이 반짝이는 버나드 등.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기괴하면서도 동시에 사랑스럽고 웃기다. 그리고 에피소드마다 범상치 않은 모양의 디저트와 만드는 과정을 보여 준다. 용이 숨어 있는 집 모양의 케이크와 시리얼을 뭉쳐 만든 털이 부숭부숭한 못생긴 괴물, 장기 모양을 형상화 한 케이크 등…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 하지 않으면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디테일이 훌륭한 작품을 만든다. 실제로 그녀의 방법은 많은 페이스트리 셰프들이 작품을 만들 때 참고하면 좋을 기발한 팁이면서, 섬세한 감각과 미학을 느낄 수 있어 디저트나 먹는 것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푹 빠지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처음에는 정신 없이 후루룩 봤다면, 이 영상을 두번째로 정주행을 할 때 내가 미리 준비한 것이 있다. 진하고 무거운 질감의 초콜릿 머핀과 아주 뜨거운 차. 불을 완전히 끄고 커다란 티비와 연결하고, 불을 모두 끄고 어둠 속에서 영상을 재생했다. 머핀 한입을 먹고, 뜨거운 차 한모금을 마시니 극 안으로 들어가 있는 느낌이 물씬 들었다. 이 모든게 어렵다면 한조각의 아무 쿠키라도 준비하길! 이것을 보는 내내 달콤한것이 생각날테니.

크리스틴 매코널은 역할 뿐 아니라 실제로도 감각적인 예술가이며 베이커, 모델, 디자이너, 배우다. 이미 유명한 인스타그래머이기도 한데, @ChristimeMcconnell 이 계정에서 그녀의 작품을 더 볼 수 있다.
글. 이정희 (푸드 콘텐츠 디렉터)



CREDIT 글 | 진영, 최민영, 이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