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올해의 인물들│나, 서지현

2018.12.03 페이스북 트위터
‘ize’는 이번 한 주 동안 2018년에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그리고 앞으로도 기억해야할 ‘2018 올해의 인물들’을 선정했다. 하루에 두 명씩, 총 10명이다. 첫번째로 꼽은 인물은 서지현 검사다.



“모든 것은 다 내 잘못이다.” 지난 1월 29일, 서지현 검사는 검찰 내부 통신망인 ‘이프로스’에 8년 전에 당했던 성추행 피해 및 인사 불이익을 폭로하고 당시 자신의 심정을 제3자 입장에서 묘사한 일기를 올렸다. 일기에서 한 ‘여성’으로 표현된 자신을 자책하던 그 문장은 같은 날 JTBC ‘뉴스룸’ 인터뷰에서 이렇게 바뀌었다. “범죄 피해자분들께 그리고 성폭력 피해자분들께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것을 얘기해 주고 싶어서 나왔습니다. 제가 그것을 깨닫는 데 8년이 걸렸습니다.” 명백한 피해자이면서도 ‘나’를 탓해야 했던 긴 시간을 깨고 나온 그가, 자신에게 절실했던 위안의 말을 타인에게 전하는 순간이었다. 이는 한 개인의 경험을 공개적으로 폭로하는 ‘미투’이면서, 수많은 피해자들에게 연대하는 ‘위드유’가 고스란히 드러난 2018년의 장면이었다.

이프로스의 일기에서 밝혔듯, 검사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서지현 검사는 ‘검사는 너처럼 공주 같아서는 안 된다’, ‘여자는 남성의 50%일 뿐이니 2배 이상 노력해야 한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실적으로 능력을 증명했고(여성 최초 특수부 검사 근무, 법무부 장관 표창 2회, 검찰 수사 우수사례 11회 선정), 8년 전 안태근 전 검찰국장에게 성추행 피해를 입은 후에도 “성실히 근무만 하면 당당하게 근무할 수 있을 것”(JTBC 인터뷰)이라 믿을 만큼 업무에 충실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검찰은 유능하고 조직에 충성도가 높은 여성의 믿음을 지켜주지 않았다.

2015년, 당시 인사권자였던 가해자 안태근 전 검찰국장은 15년차 검사인 그에게 4~7년차 검사가 가는 통영지청 경력검사로 발령을 내며 사실상의 사표 제출을 종용했다. 그럼에도 폭로보다는 조직 내부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서지현 검사의 노력은 모두 묵인당했다. 스스로는 2009년 성폭력 가해자를 기소해 ‘여성인권 디딤돌상’까지 받았지만, 정작 자신이 입은 성폭력 피해에는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검사라는 사회적 지위도, 업무상의 유능함도, 조직에 대한 충성도 ‘여성’이라는 정체성 앞에서는 무의미하다는 뼈아픈 진실. 그런 진실을 마주한 그에게는 폭로 이외에 “더 이상 다른 선택의 방법이 없었다”(‘김어준의 블랙하우스’ 인터뷰).

JTBC 인터뷰 이후 쏟아지는 언론 보도에 대해 그는 “왜 검사인 제가 목소리를 낼 수 없었는지에 주목해 달라. 이것은 저만의 문제가 아니”라며 피해자가 조직 내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시스템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6월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는 ‘업무 실적이 부족했다’, ‘법무부에 보상 인사를 요구했다’ 등 사실관계와 다른 법무부의 대응에 대해 “매뉴얼에 있나 싶을 정도로 전형적인 가해 유형”이라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특히 지난 11월 5일, 서지현 검사는 국가와 안태근 전 검찰국장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꽃뱀이다’ 이런 얘기 때문에 민사 소송을 꺼리지만, (손해배상은) 피해자의 당연한 권리다. (다른 피해자들도) 당연한 권리를 당당히 행사할 수 있으면 한다.”

자신이 겪은 피해를 폭로한 이후, 서지현 검사 역시 피해자에게 음모론을 덧붙이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는 ‘법무부에 보상 인사를 요구했다’, ‘법무부 장관에게 메일로 면담을 요청한 적이 없다’, ‘정치에 나서려 미투를 했다’는 등의 악의적인 왜곡에 시달렸다. 성폭력을 당한 여성 피해자에게 ‘다른 의도가 있다’는 프레임을 씌우고, 진위 확인마저 피해자에게 미룬다. 서지현 검사는 녹취록과 메일 같은 증빙 자료를 제시하고 불출마 선언을 하며 스스로의 정당성을, 더 나아가 자신을 비롯한 ‘미투’ 운동의 정당성을 증명해야 했다. 그가 손해배상청구를 통해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에 경종을 울리는 선례를 남기고자 하는 것이 유의미한 이유다. 서지현 검사는 자신에 대한 싸움으로 시작해, 사회가 성폭력 피해자를 바라보는 모든 문제들에 맞서 싸우는 중이다.

“결국 스스로 작은 촛불 하나 켜려고 했는데 그것이 온몸을 불살라야 하는 것임을 알게 됐다.”(‘2018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들’ 진실 분야 수상소감) 서지현이라는 이름은 이제 세상의 부조리를 밝히려 발화한 촛불이 됐다. 그 촛불이 타오르는 과정은 서지현 검사 스스로 “다음 생엔 절대로 태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다”(‘경향신문’)고 밝힐 만큼 고통스럽고 지난하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는 그 자신의 의도와 별개로 미투 운동의 상징이 됐고, 그가 목소리를 내는 만큼 사랑했던 조직의 신임도, 검사로서의 삶도, 한 사람의 일상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그럼에도 그는 “이왕 시작된 이 운명을 최대한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싶다”(‘경향신문’)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것이 인간의 존엄이다. “미투가 필요 없는 세상을 바란다”(‘여성동아’)는 그의 소망이 부디 2019년에는 이뤄질 수 있기를.
CREDIT 글 | 김리은
디자인 | 전유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