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길의 ‘38사 기동대’, 김성훈의 ‘페파피그’, 사월날씨의 ‘언내츄럴’

2018.11.30 페이스북 트위터


38사기동대 (OCN)

누가 드라마를 추천해달라고 하면 2년 전부터 계속 ‘38사기동대’만 얘기하는 중이다. 다만 “근데 킬링타임용.”이라고 묻지도 않은 뒷말을 꼭 붙인다. 모든 면에서 훌륭한 명작 드라마라고 말하기엔 찝찝함이 있다. 세금 징수와 사기라는 독특한 소재를 다루고 있고, 극 전반에서 내세우는 메시지도 분명하지만, 기존 장르물을 성공적으로 답습한 작품답게 범죄를 대하는 가볍고 무신경한 태도나 여성 캐릭터의 소모적 활용 등이 문제로 지적되기에 만듦새를 ‘38사기동대’의 추천 이유라 말하기엔 좀 부족한 점이 많다.

시청 세금 공무원인 백성일(마동석)과 이제 막 출소한 사기꾼 양정도(서인국)는 우연한 기회로 만나 서로의 이해관계를 확인하고 사기꾼들을 모은다. 그들은 온갖 불법적인 작전을 통해 고액 체납자들을 상대로 돈을 뜯어내고 그것으로 체납자의 세금을 대신 완납한다. 주인공 양정도는 전과자지만 머리 좋고 의로운 안티히어로로, 어리숙하지만 도덕적이며 올바른 신념을 가진 백성일은 그의 완벽한 사이드킥으로 등장한다. 함께 사기를 모의하는 범죄자 동료들 역시 화려한 전과의 사기범들이지만 동료에 대한 의리가 강하고 정의롭다. 거기에 케이퍼 무비의 전형성을 활용해 지능형 범죄를 꾸려나가면서도 대전 게임처럼 단계별로 무너뜨려야 하는 보스들까지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은 보스와의 싸움에서 절대 지지 않는다. ‘38사기동대’는 이 억지스러운 설정들이 어떻게든 말이 되어가는 과정을 신기해하며 보는 재미가 있다.

권선징악이라는 큰 주제 아래, 선한 인물의 통쾌한 복수를 필살기로 삼는 ‘사이다’ 서사는 흥행에는 효과가 있지만 작품이 평가받을 때는 독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이런 장르가 제일 잘 다뤄야 하는 것이 바로 속도감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드라마는 초중반까지 악인의 악행과 그를 징벌하기 위한 범죄를 모의하고 응징하는 과정의 속도를 높여 쾌감을 최대로 끌어올린다. 그러고는 보는 사람들이 스스로 감정을 마무리할 새도 없이 다음 스테이지에 데려다 놓는다. 상대의 정신을 못 차리게 하는 것만큼 단점을 효과적으로 가리는 방법도 없다.

‘38사기동대’의 종반부는 한없이 무겁고, 앞서 자신들이 자아낸 가벼운 쾌감을 자꾸만 누르려 한다. 정의로움에 대한 메시지를 줘야 한다는 압박감이 보는 사람에게 느껴질 정도다. 갑자기 지루해졌다고 느낄 정도로 박자가 달라진 이 구간을 견뎌 끝까지 완주하면, 쉴 새 없이 달리느라 보이지 않았지만 한결같이 얘기하고자 했던 ‘정의’에 대한 메시지가 보너스 게임의 포상처럼 산뜻하게 등장한다. 킬링타임 작품으로 이 정도 만족감을 얻기 쉽지 않다. 그걸로 됐다.
글. 복길(칼럼니스트)


‘페파피그’ (넷플릭스)

19개월짜리 딸아이를 둔 내게는 ‘육아(아이)템’이 몇 있다. EBS에서 방영되는 ‘딩동댕 유치원’과 ‘뽀롱뽀롱 뽀로로’가 한숨 쉬어갈 수 있는 비장의 무기다. ‘딩동댕 유치원’의 간판스타인 뚜앙 춤을 추며 ‘뚜뚜뚜앙 뚜뚜뚜뚜앙뚜앙’ 주제곡을 부르면서 TV를 켜면 아이는 뚜앙이 등장하기도 전에 어깨춤을 덩실덩실 춘다. 엄마와 아빠를 아직 분간할 줄 모르지만, ‘뽀통령’ 뽀로로만 보면 아이는 ‘우와!’를 연발한다. 웬만해선 아이에게 TV를 보여주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TV가 아니면 힘겨운 육아전선에서 버틸 재간이 없다.

아이에게 보여줬다가 관심을 얻는 데 실패한 아동용 애니메이션 중에서 육아에 도움이 되는 작품이 몇 있다. 그중에서 육아 선배 같은 영국산 ‘페파피그’는 주인공인 핑크색 돼지 ‘페파’의 네 식구 이야기이다. 부모로서 아무래도 주인공 페파보다는 페파의 부모님을 눈여겨보게 된다. ‘페파피그’에 등장하는 어른(페파의 부모님, 선생님 등)들은 페파(와 조지 남매)가 원하는 건 뭐든지 함께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휴가를 가면서 맡긴 앵무새도 ‘함께’ 돌보고, 친구 토끼 가족과 놀이터에서 ‘함께’ 놀며, 탐정 드라마를 보다가 ‘함께’ 탐정 놀이를 한다. 페파의 엄마와 아빠는 페파와 조지(페파 남동생) 남매에게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늘 낙천적인 태도로 페파(와 조지)가 직접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켜만 보고, (모든 에피소드에서) 문제를 해결하면 네 가족 모두 뒤로 꽈당 넘어져 ‘하하하하’ 하며 웃는다. 당연한 얘기지만 육아를 해본 사람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태도다. 마감, 취재 때문에 평일에 아이를 신경 쓰지 못하는 내게 이 애니메이션은 부모로서 반성하게 하는 작품이다. 정작 딸아이는 ‘페파피그’가 재미없다며 ‘뚜앙’으로 채널을 돌리라고 하지만 말이다.
글. 김성훈(‘씨네21’ 기자)


언내츄럴(왓챠플레이)

내가 생각하는 좋은 드라마의 기준 중 하나는 모든 등장인물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언내추럴’을 보고 나면, 어딘가 존재할 것만 같은 ‘UDI라보’에서 오늘도 일하고 있을 주인공과 동료들은 물론이고, 주변 인물인 형사라든가 일찌감치 퇴사한 직원까지도 모두를 알고 사랑하게 된다. 또한 추리물답게 필연적이고 군더더기 없는 스토리가 속도감 있게 전개되고, 미스테리가 적절히 섞여, 기분 좋은 집중과 긴장을 선사한다. 게다가 재난과 전염병, 성폭력과 노동문제 등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들을 진지하게, 그러나 유머를 곁들여 풀어내는 재주가 훌륭하다. 젠더감수성 측면에서도 합격이다.

‘UDI라보’는 의문의 죽음에 대해 부검을 통해 사인을 밝혀내는 곳이다. 주인공인 미스미 미코토는 여기 속한 용감하고 윤리적인 법의학자로, 죽음 뒤의 진실을 좇는다. 죽음의 의미와 살아남은 사람의 책임과 의지, 절망과 희망에 관해 이야기한다. 미스미는 음식과 함께 슬픔을 삼키고,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내일 뭐 먹을까?” 떠올리며 삶에 대한 끈질긴 희망을 놓지 않는다. 깊은 어둠을 통과해온 미스미가 “절망할 시간에 맛있는 거 먹고 잘래.”라며 환하게 웃을 때,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동료인 쇼지와의 파트너십 또한 멋지다. 천재는 아니지만 현실에 있을 법한 책임감 있고 명석한 전문가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들은 사무실에서 일하고, 농담도 하고, 때로 지치기도 한다. 두 여성의 파트너십은 현실에는 존재하지만, 대중매체에서 흔히 보지 못했던 모습이라 더 뭉클하게 다가온다. 특히 쇼지는 이 드라마 속 유머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시청자를 피식하게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으니 주목해봐도 좋을 것. 게다가 이 드라마는 한 회당 평균 46분의 쫀쫀한 러닝타임으로 약 8시간이면 총 열 편의 에피소드를 모두 섭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몰아보기에 제격이다. 이번 주말에는 따뜻한 이불 속에서 귤 까먹으며 잘 만든 드라마를 빈지워치하는 행복을 누려보면 어떨까.
글. 사월날씨 (‘결혼고발’ 작가)
CREDIT 글 | 복길, 김성훈, 사월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