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페미니즘으로 웹툰보기

2018.11.29 페이스북 트위터
최근 몇 년 사이 페미니즘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며 웹툰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얼마 전 발표된 ‘2018 오늘의 우리만화’ 수상작 중 하나인 ‘그녀의 심청’은 페미니즘을 통해 고전을 재해석한 작품이고, 그 외에도 여성 작가의 활약이 돋보였던 한 해였다. 최근의 웹툰 중에서 이러한 경향을 발견할 수 있는 작품들을 모아봤다.



여성의 시선에서 다시 보는 고전, 그녀의 심청(저스툰)

‘그녀의 심청’은 첫 회부터 독자들의 뒤통수를 때리면서 시작한다. 모두에게 익숙한 ‘꽃처럼 아름다운 도화동 심청’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사람들의 기대를 산산이 부수며 등장한 주인공 심청은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비렁뱅이의 모습이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할 공양미 삼백 석을 마련하지 못해 스스로 인당수에 뛰어든 효녀 심청의 이야기에서, 작가들은 왜 심청이 ‘공양미를 대신 내줄 테니 수양딸이 되라’는 장 승상 댁 부인의 제안을 거절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중심에는 두 여성, 심청과 장 승상 댁 부인이 놓인다. 무능한 아버지와 자신을 먹여 살리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했던 심청과,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사랑받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장 승상 댁 부인의 처지는 상반되어 보이나 사실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억압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두 사람 모두 마찬가지다. 이런 두 사람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우정 이상의 감정을 쌓아가고 때때로 억압의 주체에게 시원한 한 방을 날리는 모습은 카타르시스를 선사하지만, 결국 인당수에 투신하기로 결정한 심청의 모습은 ‘변하는 것이 없다’고 토로하는 요즘 여성들의 절망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아직 ‘그녀의 심청’은 완결되지 않았고, 여성 작가들에 의해 다시 태어난 이 유명한 고전이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부디 심청과 장 승상 댁 부인이 조금이라도 행복하기를.


어떤 여성의 평범한 불행, 남의 부인(KTOON)

‘남의 부인’을 보면 흔히 말하는 ‘고구마’ 백 개를 먹은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힐 것이다.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하던 주인공 인희는 집안 어른의 소개로 영화계에서 일하는 호연을 만나 결혼한다. 그리고 호연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친구 윤철과 함께 영화 제작에 들어간다. 불행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수입이 없는 남편 대신 가장 역할을 수행하게 된 인희는 여러 가지 걱정들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수면제에 중독되고 만다. 그러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 호연을 가망 없는 영화로 끌어들인 윤철을 원망하고 기억에 없는 이상 행동을 하게 된다. 유난하게 호연을 아끼는 윤철의 모습이 수상쩍기는 하지만, 이 작품에서 진정한 악당은 인희를 둘러싼 모든 문제를 방관하는 호연이다. 인희는 ‘인물도 훤하고 원만하고 예의 바르고 집안도 좋은’ 호연을 배우자로 선택했고, 얼핏 그는 꽤 괜찮은 남편처럼 보인다. 하지만 호연은 잠을 자지 못해 정신과에 갔다는 아내를 이해하지 못하며, 결혼 후 인희 회사의 미국 지사로 가겠다는 약속을 까맣게 잊어버린 듯 임신 소식에 마냥 기뻐한다. 참다 참다 폭발한 인희와 경제력 문제로 다투다가 뛰쳐나간 길로 윤철과 함께 영화를 보러가기까지 한다. 하지만 인희는 무엇이 자신을 이토록 괴롭히는지 심각하게 들여다보는 대신 약에 의존하는 것을 선택한다. 인희의 불면증은 결혼 후 바로 생긴 것이며, 임신으로 인해 열심히 일하던 회사에서는 승진을 장담할 수 없게 됐고 해외 지사로 나가려던 계획은 완벽히 틀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이 미치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 그리고 이것이 인희만의 불안과 공포일까.


개인의 의미 있는 변화, 어쿠스틱 라이프(다음)

‘어쿠스틱 라이프’는 페미니즘이 주제는 아니지만 오랜 시간 자신의 삶을 기록해온 여성이 결혼과 출산, 양육으로 인해 새로운 생각에 눈을 뜨고 변화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담고 있다. 특히 12시즌에서 유치원에 다닐 만큼 성장한 쌀이는 궁금한 것이 많아졌고, 엄마의 삶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난다에게도 말문이 막히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255화 ‘호랑이와 산타클로스’에서 난다는 ‘어린이의 질문들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세상의 문제점들과 부딪히게 된다’는 깨달음을 털어놓으며, 어떻게 하면 ‘세상을 제대로 알려주면서도 세상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도록 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한다. 이는 여자 택시 기사가 드문 세상에서 여자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고민이자, 어떤 태도로 인생을 살아갈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여성의 성장담이기도 하다. 언제나 난다의 좋은 친구이자 남편, 아빠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한군의 모습 또한 여전히 흐뭇한 미소를 자아낸다. ‘알콩달콩 생활만담’으로 시작해 어느새 깊이 있는 고민까지도 부담스럽지 않게 담아내게 된 이 만화가 오래도록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할머니가 된 난다의 고민도 듣고 싶으니까.


미에 대한 통찰, 화장 지워주는 남자(네이버 웹툰)

‘처음에는 외모 코르셋을 더 조이는 만화일 줄 알았는데, 그 반대네요.’ ‘화장 지워주는 남자’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다. 밋밋한 외모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대학생 김예슬은 우연히 천재 메이크업 아티스트 천유성의 눈에 띄어 서바이벌 메이크업 쇼 ‘페이스오프 신데렐라’에 나가게 된다. 흔히 천재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평범한 여주인공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바꿔놓는 스토리를 떠올리겠지만, 이 작품은 그런 편견마저 한 번 더 뒤집어버린다. 뜻밖에도 메이크업을 주도하는 사람은 천유성이 아니라 김예슬이기 때문이다. 천유성은 최고의 메이크업 아티스트지만, 김예슬이 ‘덥석덥석 잡지 말라’고 화를 낸 이후 그를 함부로 만지지 않을 정도로 매너 있는 남성이고 메이크업 초보지만 자신과 다른 시선을 가진 김예슬의 말에 언제든 귀를 기울인다. 김예슬은 천유성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 역할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연한 듯이 강요받아왔던 아름다움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고,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찾아나간다. 첫 번째 메이크업 작품 사진을 찍던 중 김예슬은 몰입을 위해 손수 머리카락을 잘랐고, 후에 머리를 자르고 좋은 점을 하나씩 꼽는다. ‘머리 감는 시간이 단축된다. 머리가 가볍고 머리카락이 잘 안 빠진다’는 것과 더불어 가장 좋은 점은 ‘내가 마음에 든다’는 이유였다. 빨강색이 주제였던 메이크업 과제에서는 스스로에게 ‘진짜 빨간색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정의되지 않은 아름다움을 찾아 나선 김예슬의 여정을 응원하게 되는 이유다.


약자에 대한 연대, 달리는 노루발처럼(2018 네이버 웹툰 최강자전)

정식 연재도 하기 전에 화제가 된 작품이 있다. ‘2018 네이버 웹툰 최강자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달리는 노루발처럼’이다. 공무원 시험에 실패한 장노루는 의상학과에 복학해 졸업쇼 준비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졸업작품실에서 남자 이야기를 하지 말 것. 동기 외모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말 것. 졸업작품 기간 동안 화장을 하지 말 것’을 규칙으로 내세우는 졸업준비위원회 리더 조준휘, 한국인이 아니라고 오해받는 남자 후배, 그리고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남들보다 늦게 대학을 들어온 할머니 오린아 씨다. 장노루는 이들과 함께 졸업쇼 팀을 이루게 되고, 이 팀은 ‘여자 모델 사이즈 평균’ 디자인뿐 아니라 ‘직업모델 없는 특별한 추가 스테이지’까지 계획하고 있다. 아직 본격적인 이야기는 시작되지 않았지만 여성, 다른 피부색, 노인이라는 팀원들의 면면만 봐도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가 다뤄지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고, 특히 주인공 장노루의 헬퍼인 오린아는 오야(재봉사)로 한국 근현대사를 통과한 여성을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미 공개된 여섯 편에서는 패션이 어떻게 권력이 되고 약자를 배제해왔는지 엿볼 수 있다. 화려하게만 보였던 패션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며, 가장 소수의 사람들에게 연대하는 것이다. ‘달리는 노루발처럼’이 결승에 진출하고 결국 최우수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작품을 알아보고 더 보고 싶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앞장서서 투표 독려를 했기 때문이다. 안에서도 밖에서도 ‘연대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CREDIT 글 | 서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