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 힙합│② 일주일 만에 한국에서 남자 래퍼 되기

2018.11.27 페이스북 트위터
한국에서 힙합은 더 이상 비주류 장르가 아니다. 음원 차트는 물론 Mnet ‘쇼미더머니’와 ‘고등래퍼’처럼 힙합을 소재로 한 리얼리티 쇼도 만들어졌다. 그만큼 많은 래퍼들이 나왔고, 수많은 곡이 쏟아진다. 그만큼 수가 많아지면서 매우 뻔하거나, 이미 전에 나왔거나, 저렇게 하지 않으면 힙합을 만들 수 없나 싶을 정도로 반복되는 전형적인 요소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남자 래퍼들이 ‘쇼미더머니’를 중심으로 보여주는 가사들이 그렇다. ‘쇼미더머니’를 비롯해, 남자 래퍼들이 해마다 답습하는 여러 양상들을 정리해보았다.



1. 스웨그는 ‘쇼미더머니’에서 보여주자

아무리 힙합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초심자라 하더라도, 힙합의 기본적인 스웨그가 ‘자기 과시’라는 점은 쉽게 알 수 있다. 가장 쉬운 첫걸음은 자신의 재정 능력을 과시하는 가사를 쓰는 것이다. 쿠기가 ‘쇼미더머니 777’의 래퍼평가전에서 보여준 ‘난 백 안 벌어 난 천만 벌어 아니 억까지 벌어 아니 조까지 벌어’라는 가사가 대표적이다. 같은 프로그램에서 노엘처럼 어린 래퍼가 ‘형들은 척 버네 철판 더러운 돈’이라고 다소 쓴소리를 하더라도 ‘리스펙’하는 여유를 보여주는 편이 좋다. 다만 자기 과시를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심사위원의 평가를 받는 처지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쇼미더머니 4’의 최대 문제아였던 블랙넛은 2차 예선에서 심사위원들을 차례로 디스하며 자신의 과감함을 보여줬지만, 그조차도 ‘이건 다 농담이고’라고 덧붙이며 빠져나갈 구석을 만들곤 했다. 내가 최고지만 나보다 강한 심사위원들에게 공손한 자세, 이것이 ‘쇼미더머니’ 전용 스웨그다.


2. 디스도 화해도 ‘쇼미더머니’에서 하자

요즘 한국의 래퍼들 중 다수는 ‘쇼미더머니’로 통한다. 과거 자신의 곡 ‘Gear 2’에서 ‘쇼미더머니’에 출연하는 래퍼들을 디스했던 루피는 ‘쇼미더머니 777’에 출연한 후 프로듀서 스윙스로부터 날선 질문을 받아야 했다. “(쇼미더머니에) 나오는 게 별로라고 생각했다는 얘긴데 어떻게 별로인 게 멋있어진 건지 궁금해서요.” 다행히 훌륭한 경연을 보여준 그는 스윙스로부터 ‘정말로 멋있는 사람 같다’는 칭찬을 받으며 화해할 수 있었다. 앞서 사이먼 도미닉도 프로그램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가 ‘회사를 위해서’라며 ‘쇼미더머니 5’의 프로듀서로 출연한 바 있으니, 생각이 바뀌는 것 자체는 순간의 부끄러움을 견디면 되는 일일 수도 있겠다. 다만 ‘쇼미더머니’의 이불 밖 디스는 위험하다. 루피는 과거 서로의 크루 전체를 디스했던 슈퍼비와 ‘쇼미더머니 777’에서 만나 두 차례나 맞붙어야 했고, 본선 2차 무대에 진출한 심바자와디는 심지어 프로듀서 팔로알토와 직접 디스를 벌인 사이였다. 다행히 대부분의 래퍼들이 그랬듯 이들 역시 ‘쇼미더머니’를 발판 삼아 아름다운 화해를 보여줬다. 굳이 디스를 하고 싶다면, 경연을 명목으로 서로를 비판하고 바로 화해할 수 있는 ‘쇼미더머니’ 시리즈 내에서 하는 편이 좋다. ‘동방예의지국’의 힙합인 것이다.


3. 하지만 여자는 무서울 게 없으니 혐오적 가사를 쓰자

다만 ‘동방예의지국’ 힙합은 어디까지나 남성끼리의 문화다. 블랙넛은 ‘Higeher Than E-sens’라는 곡에서 ‘JK 마누라 껀 딱히 내 미래에 비하면 아스팔트 위의 껌딱지’라며 윤미래를 비하하는 가사를 썼다. 힙합씬에서 독보적인 여성 래퍼로 인정받고 있는 이에 대해서도 누군가의 ‘부인’이거나 ‘여성’이라는 이유를 들어 모욕한다. 블랙넛은 ‘Indigo Child’와 ‘Too Real’의 가사에서도 래퍼 키디비를 성희롱하는 내용을 썼고, 모욕 혐의로 기소돼 오는 29일 선고 공판을 앞두고 있다. ‘쇼미더머니 777’의 우승자 나플라는 부드러운 리더십과 천진난만한 성격으로 화제가 된 참가자지만, 지난 3월 발매한 싱글앨범 ‘꽃’에서 ‘너의 꽃 같은 얼굴에 살짝 묻은 된장이 향긋하게 돌아와’라는 가사를 쓴 바 있다. ‘붐뱁의 트렌드세터’(나플라 ‘Wu’의 가사)인 그이지만, 정작 2000년대 중반에 등장한 ‘된장녀’ 프레임으로 가사를 쓴다는 점에서 사회의 ‘트렌드 세터’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쇼미더머니 4’의 준우승자이며 그룹 위너의 멤버인 송민호 역시 ‘딸내미들 저격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라는 가사로 경연을 펼쳤다가 물의를 빚고 사과했다. 그는 사과문에서 “‘쇼미더머니’라는 쟁쟁한 래퍼들과의 경쟁 프로그램 안에서 그들보다 더 자극적인 단어 선택과 가사를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잘못된 결과를 초래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고백에서 알 수 있듯, 한국 힙합씬에서 남성 래퍼가 존재감을 과시하는 쉬운 방법 중 하나는 여성을 공격하고 괄시하는 가사를 쓰는 것이다.


4. 그럼에도 여자는 자존감의 원천이다

여성을 쉽게 모욕하면서도, 힙합을 하는 다수의 남성들은 그들의 자존감을 여성으로부터 찾는다. 블랙넛은 그의 곡 ‘100’에서 ‘엄마에게 내가 다시 이 집에 돌아올 땐 버스 한가득 창녀들을 태운 후에’라는 가사를 썼는데, 얼마나 많은 여성을 거느린 모습을 어머니에게 보여줄 수 있는지가 그에게는 성공과 자존감의 기준이 된다. 씨잼은 그의 곡 ‘Beautiful’에서 ‘세상에 아름다운 여자들이 너무 많아서 I’m beautiful’이라고 말한다. 이는 여성들의 아름다움이 어떻게 그의 아름다움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에 대한 실존적 고민을 남긴다. ‘쇼미더머니 777’에서 나플라의 파이널 곡 ‘픽업맨’에 피처링을 한 스윙스는 ‘니 여잔 hot해 내 여자는 더 이뻐’라며 자신이 만나는 여성의 가치를 타 여성과 비교함으로써 스스로를 과시했다. Mnet ‘고등래퍼’로 힙합에 입문한 래퍼들도 이런 경향을 그대로 따라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잦다. ‘고등래퍼’에서 서정적인 가사로 주목받았던 오션검은 ‘쇼미더머니 777’의 래퍼평가전에서 ‘비밀리에 클럽 let me see 비키니 girls’라는 가사로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 노엘은 그의 곡 ‘Thirsty’에서 ‘이쁜 누나 on my 바지’라는 후렴구를 반복하고, 영비 역시 ‘Gin Tonic’에서 ‘예쁜 누나들은 덤 나 민증 떼면 풀어줘 shirts’라는 가사를 쓰기도 했다. 누구보다 자부심이 강한 남성 래퍼들이지만, 정작 여성 없이는 자존감을 증명하는 가사를 쓰기 어려운가 보다.


5. 실수해도 좋다, 가사는 번복하라고 있는 것이다

가사를 쓰다 보면 논란의 중심에 서는 경우가 있다. 스윙스는 2010년 동료 래퍼 비지니즈의 곡 ‘불편한 진실’에서 ‘너희는 환희와 준희 진실이 없어’라는 가사로 물의를 빚고 사과했다. 2017년 온라인 웹진 ‘힙합LE’에서 ‘(불편한 진실) 논란 이후 가사 작법이 완전히 달라졌다’며 ‘(가사에 대해) 직접 책임져야 한다’고 이야기했던 그이지만, 정작 2013년 발표한 곡 ‘불도저’에서는 ‘예술에 윤리라는 잣대 들이댈 거면 넌 진보하지 말고 내 음악도 듣지 말고 닥치고 집 정리나 해’라며 가사 비판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보여준 바 있다. 송민호 역시 앞서 언급된 ‘산부인과’ 가사에 대해 사과했지만, 이후 2017년 에픽하이의 ‘노땡큐’ 피처링에 참여하며 ‘motherfucker도 혐이라 하는 세상 shit’이라며 여성 혐오 논란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이런 모습으로 최근 가장 화제에 오른 래퍼는 역시 ‘FEMINIST’로 논란이 된 산이다. 그는 ‘FEMINIST’가 여성 혐오로 논란을 빚자, 이에 대해 소설 속에 소설이 들어 있는 ‘메타픽션(meta-fiction)’ 기법으로 작사한 노래라 밝히며 가사의 의미를 일일이 해설하기도 했다. 가사에 대해 무한한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고 싶어 하지만, 정작 스스로 쓴 가사에 대한 책임은 회피하거나 필요에 따라 의미를 번복한다. 과연 그들의 ‘스웨그’는 무엇일까.
CREDIT 글 | 김리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