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딩을 좀 더 멋지게 입는 것

2018.11.26 페이스북 트위터

©Moncler

또다시 겨울이 왔고 패딩의 계절이다. 사실 패딩은 처음부터 보온이라는 기능에 충실한 옷으로 등장했고 추운 아웃도어에서 생존을 위해 사용되었다. 침낭 혹은 이불 등 생긴 모습도 딱 그대로 생겨서 누가 봐도 따뜻할 거 같은 모습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못생긴” 옷은 단지 추위를 막는 데 있어 가장 효과적인 옷일 뿐이지 멋을 내기 위한 옷은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고급 브랜드의 쇼윈도에서도, 파리나 밀라노의 캣워크에서도, 셀럽의 SNS 사진에서도 패딩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를 찾을 수 있다. 과거의 패션 규칙들은 영향력이 약해졌고, 하이패션은 인종과 성별, 나라를 떠나 모두를 대상으로 한다. 편안함과 자기만족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패딩이 기능의 영역에서 하이패션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바라보면 크게 두 가지의 경향을 볼 수 있다. 하나는 패딩을 좀 멋지게 포장하는 방식이고 또 하나는 패딩 자체의 ‘못생김’을 패셔너블의 영역으로 가져오는 방식이다. 우선 기존의 패딩을 조금 더 멋지게 포장해내는 방식이다. 캐나다 구스의 유행으로 패딩의 심리적 가격 장벽이 흔들리기 시작했다면 그 이후 프리미엄 패딩 등의 이름으로 유럽의 패셔너블한 패딩들이 등장하게 된다. 몽클레르, 파라점퍼스, 듀베티카나 에르노 등은 기존의 뚱뚱하고 둔탁하게 생긴 패딩을 세련되게 포장해 냈다. 또한 버버리나 막스 마라 등 클래식한 겨울 아우터로 유명한 브랜드들도 패딩을 브랜드 이미지에 맞게 포장해 본격적으로 선보였다. 

이런 브랜드들은 은은한 광택, 슬림한 허리 라인, 고급스러운 후드 퍼, 잘 코팅된 고급스러운 부자재 등으로 결코 싸구려처럼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어떤 자리를 가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이런 옷은 기존의 포멀한 착장 위에 입어도 큰 무리가 없기 때문에 여전히 수요가 있고 코트의 대체품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또 하나는 패딩의 못생김을 패셔너블의 영역으로 가져오는 방식이다. 운동화, 후드, 티셔츠를 입었던 뉴욕의 힙합 뮤지션들은 쌀쌀한 겨울이 오자 1990년대 초에 출시된 노스페이스의 눕시를 입었다. 추운 산에서 입으라고 만들어졌다지만 커다란 로고, 반짝이는 컬러, 심플한 생긴 모습은 이들의 취향에 딱 맞았고 힙합 패션의 하나로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 자리를 잡은 패딩은 시간이 흘러 스트리트 패션이 패션의 메인스트림으로 떠오르자 운동화와 비슷한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즉 예전의 유명한 모델들이 복각이나 재출시되듯 1992, 1996 등의 모델들이 다시 나왔다. 슈프림 등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들과 꾸준하게 협업 제품을 내놓고 있는 것도 물론이다. 이런 옷들은 사람들이 못생겼다고 여기던 뚱뚱하고 둔탁한 패딩의 모습이 그대로 살아 있다. 원래 그렇게 생긴 옷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렇잖아도 부풀어 있는 패딩을 오버사이즈로 입는다. 기존 ‘멋짐’의 눈으로 보자면 시크와 엣지를 찾기 어렵겠지만 스트리트 패션과 함께 자라온 새로운 세대들은 눈에 익숙한 패딩의 로고 위치, 컬러, 무늬가 조금씩 바뀌는 데서 유니크함을 찾는다. 스트리트 패션 특유의 반짝이고 커다란 생김새를 이어받은 패딩은 구찌와 베트멍, 발렌시아가와 언더커버 등 하이패션 브랜드에서도 나오고 있다. 이런 옷들은 패딩을 이렇게 저렇게 꾸미면 점잖고 멋진 옷이라고 둘러대지 않는다. 그냥 패딩의 원래 생김새면 된 거고 그게 매력이다. 못생겼다고 여겨지던 부분을 오히려 증폭시킨다.

애초에 이 옷의 생김새는 남성성이나 여성성을 강조하고 있지 않다. 이는 새로운 멋짐의 기준이 등장한 게 아니라 남에게 굳이 멋지게 보일 이유도 필요도 없다는 거고, 바로 그 태도 자체가 패션 트렌드가 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고급 브랜드들은 뚱뚱한 운동화, 요란한 티셔츠와 함께 이 울퉁불퉁한 패딩을 내놓으며 그런 모습을 더 적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패딩을 두고 하는 패션 실험도 다양해지고 있다. 노스페이스가 사카이, 하이크 같은 디자이너 브랜드와 내놓고 있는 협업도 있고 몽클레르가 후지와라 히로시, 시몬 로샤 등과 계속 내놓고 있는 지니어스 연작 컬렉션도 재미있다. 이런 컬렉션에서는 더 길거나 더 짧게, 혹은 다른 아우터웨어와 결합하거나 뒤집어 보면서 패딩이 패션으로 어떤 모습까지 나올 수 있는가를 테스트하고 있다. 패딩은 이제 기능을 넘어 생긴 모습에 있어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다. 이런 디자인 실험들을 통해 앞으로 패딩의 영역은 더욱 확장될 수 있을 거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룩과 스타일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패션으로서의 패딩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CREDIT 글 | 박세진(패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