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여성의 말을 믿지 못할까?

2018.11.26 페이스북 트위터


세계 여성인권의 실태를 다룬 책 ‘절망 너머 희망으로’(원제: Half the Sky)에서 저자는 지난 50년간 여성이라는 이유로 낙태/방치되어 살해된 여성의 수가 20세기 모든 전쟁에서 사망한 남성의 수보다 많다는 통계를 언급하며,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다치거나 죽는 수가 어마어마한데 별로 주목도 받지 않는 게 놀랍다고 언급한 바 있다. 많은 여성들이 분노한 여성혐오 범죄들에서도 여성의 분노는 쉽게 무시되며 피해 사실 또한 지워지곤 한다. 왜일까?

예일대학의 심리학자 빅토리아 브리스콜(Victoria Brescoll)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여성의 분노를 잘 신뢰하지 않는다. 똑같이 화를 내도 사람들은 남성이 화를 내면 ‘화낼 만한 일이 있었구만’, ‘진정성이 있구만’ 하는 반면 여성이 화를 내면 지나치게 감정적이라거나 뭔가 켕기는 구석이 있는 거라는 둥 완전 반대의 해석을 내리는 경향을 보였다. 남성이 화를 내는 건 다 이유가 있어서이지만 여성이 화를 내는 건 그냥 저 여자가 예민하거나 거짓말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남성에 비해 유독 여성을 신뢰하지 않는 현상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예컨대 똑같은 범죄의 피해를 입었어도 남성에 비해 여성에게 더 ‘뭔가 잘못한 게 있었을 것’이라는 피해자 비난하기(victim blaming)가 더 심하게 나타나기도 한다(Howard, 1984). 여성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사회적 약자들이 혐오 범죄의 표적이 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 사람이 원래 ‘당해도 싼’ 인간일 것이라는 반응을 더 많이 보였다는 연구도 있었다(Mallett et al., 2011). 그 결과 사람들은 동일한 묻지마 범죄의 피해를 입어도 약자가 타깃일 때는 크게 분노하지 않는 반면 상대적으로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타깃이 되었을 때 더 많이들 분노하고 정책을 바꿔야 한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약자의 분노는 개인의 ‘예민함’이 되며, 약자가 겪은 불의한 일은 ‘당해도 싼 일’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의 고통을 아예 없는 일 취급하거나 또는 있어도 되는 일로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여성의 피해가 남성의 피해에 비해 더 쉽게 묻히는 데에는 뿌리 깊은 성차별 의식도 큰 역할을 한다.

일례로 ‘성격 및 사회심리학지(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에 실린 한 연구에 의하면 특히 성범죄에 있어 눈앞의 피해자보다 혹시라도 억울할지 모르는 가해자의 잠재적인 고통에 더 크게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다(Deitz et al., 1982). 이들은 피해자보다 가해자의 입장에 더 잘 이입하며 여성 피해자의 고발은 대부분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었으며 다음과 같은 사고방식을 보였다. 우선 여성의 의사에 반하는 성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보다 ‘어떤 상황에서는 강압적인 성관계가 용납된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즉 상황에 따라 여성을 통제하고 강압하는 것이 괜찮다는 사고방식을 보였다. 또한 여성은 동등하고 독립적인 인간이라기보다 남성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한 도구적 존재이며 따라서 남성이 저지르는 성폭력은 성폭력이 아니라거나 또는 남성이 성폭력 정도는 저지를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보이기도 했다. 이들은 법정에서 피해자보다 가해자가 느낄 고통과 수치심을 더 크게 걱정하기도 했다.

참고로 뉴질랜드 웰링턴 대학의 심리학자 데본 폴라스켁(Devon Polaschek)에 의하면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하며 남성의 성욕 충족을 위한 존재, 여성은 알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존재라거나 여성의 No는 Yes라는 등의 생각은 실제 성폭력범죄자들에게서 강하게 나타나는 사고방식이다(Polaschek & Gannon, 2004). 성폭력범들은 다른 범죄자들에 비해 남성의 피해 사실에는 슬퍼하면서도 유독 ‘여성’, 특히 성폭력 피해 여성의 피해 사실에는 공감하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Marshall & Moulden, 2001). 이들은 성폭력 외에도 여성에 대한 정서적/물리적 폭력 전반에 관대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뿌리 깊은 성차별 의식과 왜곡된 여성관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유독 여성을 신뢰하지 못하고, 여성은 당해도 싸다거나 ‘여성을 향한 폭력이 뭐 어때서?’ 같은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여성의 피해 사실을 인정할 수 없는 사람들의 또 다른 흔한 특징으로 올바른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을 구분하는 것이 있다. 소위 조신하지 않은 여성(자기주장이 강하거나 자존심을 살려주지 않거나 술 담배를 잘 한다거나 등)에게는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며 이러한 여성들은 폭행이나 강간을 당해도 싸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Grubb & Turner, 2012). “폭력은 나쁘지만 이건 좀 다르죠. 이 경우는 여성분도 잘못이….” 흔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이 역시 심한 성 고정관념과 성차별 의식이 낳은 문제다. 한편 어떤 범죄 사실에 있어 피해자보다 가해자의 입장에 크게 공감하며, 피해의 심각성보다 가해자가 억울할 가능성에 크게 주목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본인이 피해자보단 가해자가 될 가능성을 크게 지각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었다(Kahn et al., 2011).

여성의 분노를 개인의 예민함으로 평가절하하고 여성의 피해 사실을 지우는 사회는 곧 성차별 의식이 가득한 사회일 것이다. 여성 인권 수준이 낮은 국가일수록 이러한 성차별 의식은 남녀를 불문하고 널리 나타난다. 작은 성차별도 예민하게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CREDIT 글 | 박진영(‘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