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인의 ‘연민정 3부작’, 서성덕의 ‘비트 위의 승부사들’, 윤이랑의 ‘당신이 잠든 사이에’

2018.11.23 페이스북 트위터


연민정 3부작 (VOD)

오늘도 참는 데 하루의 대부분을 썼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사, 더 마음에 들지 않는 회사, 더욱더 마음에 들지 않는 세상…. 그렇게 주 5일을 참고 나서 맞이한 주말이면 더 이상 참지 않는 그녀를 몰아보고 싶다. 상대가 누구든 부셔버릴 것만 같은 그녀, 연민정.

연민정은 2014년 방영된 MBC 주말드라마 ‘왔다! 장보리’에서 이유리가 맡은 악역의 이름이다. 부, 명예, 사랑, 출세… 그 모든 것이 합쳐진 그 무엇을 위해 연민정은 가리는 게 없다. 똑 떨어진 원피스, 어깨에 걸친 캐시미어 코트, 클러치 기능을 더한 숄더백을 맨 연민정은 더할 수 없이 매력적이지만 뭔가 수틀리는 상황에서는 쌍심지를 끌어올리고 입술을 뒤틀고 동공을 키운다. 그리고 매우 정확한 딕션과 안정적인 목소리로 비현실적 대사를 뱉는다. 용서하지 않을 거야. 가만두지 않을 거야.

‘학교’ 시리즈로 데뷔해 예쁘장한 어느 배우로 활동하던 이유리에게 ‘왔다! 장보리’는 그해 연기대상까지 안겨준 출세작이다. 하지만 연민정 캐릭터의 탄생은 앞서 2012년 tvN에서 방영된 일일드라마 ‘노란 복수초’에서 시작된 듯하다. 이유리는 주인공 설연화로 분하는데, 섬뜩한 분노가 당시 지금과 같은 인지도가 없던 케이블 채널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이렇듯 악역이든 주인공이든 상관없이 이유리는 참는 법이 없다. 지체 없이 소리 지른다. 치밀하게 음모를 꾸민다. 복수하기 위해 노력한다.

최근 이유리는 ‘숨바꼭질’에서 또다시 연민정 같은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다. ‘아버지가 이상해’ 같은 드라마에서조차 긴 대사를 또박또박 발음할 때도 어쩐지 연민정의 얼굴이 있었는데, ‘숨바꼭질’에서는 보다 노골적이다. 천하의 악역이지만 이상하게 예쁜 이유리. 몹쓸 인물이지만 어쩐지 마음이 가는 연민정. 이유리라는 배우와 연민정이라는 캐릭터가 구축한 괴랄한 세계에 빠져든 채, 다가올 월요일을 상대로 중얼거려보는 것이다. 가만두지 않을 거야. 다 부셔버릴 거야.
글. 서효인(‘릿터’ 편집장)


비트의 승부사들 (넷플릭스)

애플은 2014년 비츠를 32억 달러에 샀다. 닥터 드레가 헤드폰 사업을 한다던 그 회사다. 물론 애플 역사상 가장 큰 M&A로 헤드폰 회사를 샀다고 생각하면 좀 곤란하다. 이 거래를 통하여, 애플은 아이튠즈의 시대를 넘어 스트리밍 시대에도 음악 산업에 중대한 영향을 발휘할 기회를 얻었다. 애플은 스트리밍 서비스와 그 뒤의 사람을 샀다. 스트리밍은 비츠 뮤직이고, 사람은 지미 아이오빈과 닥터 드레다.

비츠 뮤직의 목적은 단순히 많은 음악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인 인치 네일스의 트렌트 레즈너를 임원으로 선임하고, 음악가와 음악 애호가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서비스를 고민했다. 신곡, 인기곡 차트만이 아니라 각 아티스트에 대한 입문, 심화, 영향을 준 음악, 영향을 받은 음악에 대한 전문적인 플레이리스트를 제공했다. 애플이 스트리밍 사업을 한다면 고민할 법한 모습이다.

한편 아이오빈과 드레가 가진 영향력, 통찰력, 마케팅 능력은 적어도 음악 시장에 한정하여 스티브 잡스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3조 원 가치의 회사를 하루아침에 만든 것이 아니다. 4년에 걸친 자료 수집과 그 모든 것을 4시간에 몰아넣는 정교한 편집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애플이 더 이상 특별히 우리는 놀라게 않는 시대에도, 음악에 관한 사업만큼은 흥미로운 이유가 있다.
글. 서성덕(대중음악 평론가)


당신이 잠든 사이에 (VOD)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지금 이게 모두 꿈이었다면…’ 하고 바라는 때가 온다. 시간을 꿈꾸기 전으로 되돌려 꿈에서 미리 본 세상을 조금 더 내 편으로 바꾸고 싶은 건, 모든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흰 눈이 가득 쌓인 도로 한복판, 꿈에서 당신을 봤다고, 그래서 당신을 찾아왔다고, 그리고 그런 당신을 믿을 수 있다며 서로에게 다가가는 재찬(이종석)과 홍주(수지)처럼. 그들이 걷는 눈 위로 흐르던 OST를 들으며 벌써 세 번이나 정주행했던 나의 ‘최애 드라마’, ‘당신이 잠든 사이에’를 소개한다.

꿈에서 미래를 보는 홍주는 일어나자마자 꿈에서 본 내용을 포스트잇에 적어 창문에 붙여 놓는다. 메모들은 곧 사건이 되어 나타나고, 홍주는 그 사건 속에서 만난 정의로운 검사 재찬(이종석), 경찰 우탁(정해인)과 함께 미래를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혼자서 미래를 바꿀 수 없다고 매일 밤마다 자책하던 홍주에게 나타난 재찬은 그녀의 가장 멋진 꿈속에 나타난 남자였다. 그들은 후회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미래를 바꾸려 노력하지만, 모든 미래를 바꿀 수는 없었다. 막을 수 없는 현실에 슬퍼하기도, 또 막으려 해도 다른 식으로 다가오는 운명들에 좌절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조금이라도 나아진 세상을 위해 계속 꿈을 꾼다.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매력적인 구성과 매회 긴장감을 주던 각 사건들, 주연 배우들의 연기와 명품 조연들의 활약상도 기억에 남지만, 주인공들이 때로는 슬픈, 때로는 사랑스런 꿈을 만나 꿈에서 현실로, 다시 꿈으로 이어지는 스토리가 아주 인상적이다. 심지어 꿈과 현실에서의 2분할 더블 키스신은 방송 직후 엄청난 화제를 몰고 왔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게다가 꿈속에서 소위 ‘우윳빛깔’ 조명을 쏘고 있는 듯 보이는 이종석과 정해인의 모습, 이 두 남자와 러브스토리를 그리는 멋진 수지까지. 눈도 즐겁고 감성도 동시에 채울 수 있는 드라마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드라마가 남긴 유명한 명대사가 있다. ‘자책은 짧게, 대신 오래오래 잊지는 말고.’ 꿈은 한순간에 지나가고, 후회가 되는 현실은 언제나 찾아온다. 오늘 하루 종일 이불 속에서 드라마 몰아보기나 한다며 후회해도 괜찮다. 오늘밤 꿈속에서 만난 내 세상은 분명 오랫동안 만족을 안겨줄 것이다.
글. 윤이랑(방송작가)
CREDIT 글 | 서효인, 서성덕, 윤이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