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대첩-고수외전’, 지금 한식의 변화를 말하다

2018.11.16 페이스북 트위터


지난 9월부터 방영중인 Olive ‘한식대첩-고수외전’이 한식을 다루는 방식은 조금 색다르다. ‘한식대첩’에 출연했던 전국의 한식 고수들이 스승이 되어 다양한 국적의 젊은 셰프들에게 한식을 가르친다. 제자들은 모두 해외 유명 레스토랑의 셰프지만 고수들에게 “한수 가르쳐 주세요”라고 말하고 기꺼이 가르침을 받는다. 4화까지는 제자들이 스승과 함께 한식을 만들거나 스승이 가르쳐준 한식을 혼자서 완성하는 데 그쳤다면, 5화부터 제자들은 스승이 만든 한식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하기 시작한다. 이후 ‘한식대첩-고수외전’은 스승의 가르침을 응용하여 제자들이 만드는 새로운 한식에 보다 초점을 맞춘다. ‘한식대첩’을 시즌 1부터 연출하고 있는 현돈 PD는 “외국인은 물론 한국인에게도 한식의 다양한 맛을 알려주고 싶었다. 한식 세계화만을 위해서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한국인 고수들과 외국인 셰프들의 만남은 자연스럽게 한식의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게 만든다.

현 PD는 한국인 고수들과 외국인 셰프들의 차이에 대해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셰프들이라고 해도 전통 한식을 완벽히 따라 하기란 어려운 것 같다. 하지만 전통을 바탕으로 그들만의 해석이 들어가는 순간 본인들의 진짜 실력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현 PD의 말처럼 셰프들이 자신만의 한식을 처음으로 선보인 일품대전은 이들의 진짜 실력이 드러나는 순간이자, 한식의 다양한 가능성을 발견했던 장면이었다. 기러기 찜 잡채 위에 즉석으로 호두를 갈아 뿌리는 파브리치오 셰프의 모습에 백종원은 “서빙하는 방식이나 플레이팅이 한식 같지 않고 새롭다”라고 평가했다. 마셀로 셰프는 황장 돈찜을 재해석하며 애호박과 꽃 김치, 쌀가루를 더해 아예 다른 모양과 식감을 냈고 세르히오 셰프는 멕시코 원주민들의 소스인 몰레로 맛을 낸 버섯 등갈비 찜을 내며 평가단에게 수저 대신 비닐장갑을 이용해 원초적인 방식으로 시식할 것을 권했다. 중장년층 한국인 고수들의 한식에 오랜 세월 쌓아온 노련함과 전통성이 있다면, 젊은 외국인 셰프들의 한식에는 이를 완전히 재탄생시킬 만한 창의성과 아름다움이 있었다. 특히 플레이팅은 백종원조차 “고수의 요리는 진하고 탁했는데 이건 너무 예쁘다”고 말할 정도로 상반된 모습이었다. 프로그램 자체는 한식에 대한 존경에서 출발했지만, 역설적이게도 현재 한식이 가지는 한계 또한 보여주는 셈이다.

2013년 첫 방송을 시작한 이후 ‘한식대첩’은 지역색이 강한 요리부터 고조리서에 나오는 요리까지 다양한 한식을 선보여 왔다. 방송에서 보여준 것처럼 한식의 범위는 광활하고 이를 제대로 배우는 것은 한국인에게조차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러한 한식을 배워야 하는 ‘한식대첩-고수외전’에서 외국인 셰프들은 전국 각지에 살고 있는 고수들을 찾아 나섰고, 그들의 뒤를 바짝 따라다니며 양동이 속 게를 잡는 방법부터 산에서 직접 나물을 캐는 방법까지 체득할 수 있었다. 심지어 경상도의 최정민 고수는 마셀로 셰프에게 앞서 ‘한식대첩’에서도 공개하지 않았던 비기, 녹두 황장 만드는 법을 전수하기도 했다. “일주일에 이틀, 제자들이 직접 스승의 집으로 찾아간다. 통역사가 쉬는 시간이 없을 정도로 한국 문화와 음식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고 현 PD가 설명했듯이, 이는 많은 시간과 특별한 노력이 필요한 전승 방식이다. ‘한식대첩-고수외전’에 출연 중인 대부분의 고수들도 이렇게 한식을 배웠다. 한식이 세계화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당연하게도 전통적인 한식의 전승만으로 한식 세계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난해부터 농림축산식품부와 한식진흥원은 (주)글로벌리서치와 함께 ‘글로벌 한식 소비자 조사’를 시행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짐작할 수 있는 것은 한식에 대한 세계인의 취향이다.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Korean BBQ(48.0%), 비빔밥(33.2%), 치킨(25.4%), 냉면(19.6%) 순으로 취식 경험 비율이 높으며 국가별로도 미국은 갈비찜(20.4%), 중국은 전골(25.6%) 및 떡볶이(20.9%), 일본은 전(30.5%) 및 찌개(27.9%), 유럽과 오세아니아는 잡채(20.9%), 동남아시아는 닭갈비(23.6%) 등으로 가장 많이 먹어본 한식 메뉴가 각각 다르게 나타났다. 한식진흥원에서는 이러한 조사를 통해 ‘국가별 한식 시장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그 결과를 ‘한식 산업 종사자들이 참고하고 활용’할 것을 권하고 있다. 수요와 공급이라는 산업의 기본적인 원리를 한식 세계화에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간편식으로 한식 세계화에 나선 경우도 있다. CJ 제일제당의 ‘비비고’ 냉동만두는 미국 전역의 코스트코에서 1000억 원이 넘는 연매출을 기록했다(‘News1’). 이에 따라 CJ 제일제당은 미국 냉동식품 전문 업체를 인수하고 비빔밥을 비롯해 간편식 제품군을 늘려나갈 계획을 밝혔다. 전승을 벗어나 보급을 통해서도 한식은 세계화되고 있다.

자신의 레스토랑 키친에 직접 만든 메주를 걸어놓은 아말 셰프(사진제공 현돈 PD)

‘떡볶이 연구소’를 세우고 떡볶이 수출에 열을 올리거나 뉴욕 타임스퀘어에 비빔밥 광고를 하던 시절과는 달리, 한식은 보다 산업화된 방식으로 넓은 범위의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식대첩-고수외전’처럼 전승에 중심을 두고, 세계화되기에는 장벽이 높은 전통적인 한식을 다루는 것은 시대를 거스르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현 PD는 ‘한식대첩-고수외전’의 기획 의도에 대해 “한 명의 스승 밑에서 한 명의 수제자가 배우는 것처럼 한국인의 관점에서 한식의 맛뿐 아니라 역사와 문화를 하나하나 차근차근 소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외국인 셰프들이 첫 번째로 재해석한 한식은 전통 장을 이용한 것이었고, 백종원은 장에 대해 ‘한식의 뿌리이자 기본’이라고 설명했다. 셰프들은 일품대전에 앞서 정관스님을 만나 오래된 장들을 비교해 맛보고 감동했다. 만드는 사람이나 날씨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그래서 시판이 어려운 장들은 한식 세계화를 어렵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한식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장 하나를 만들기 위해 몇 년씩 기다리는 것을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인내심이 없어서 주로 빨리할 수 있는 요리들을 한다”는 세르히오 셰프의 말이나, “살면서 37년 동안 발효된 간장을 먹어본 적이 없다. 이걸 대전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일이다”는 아말 셰프의 말처럼 이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한식만의 특성이자 지켜나가야 할 전통이다. 한식진흥원에서 현재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사업 역시 ‘장 문화 유네스코 등재’다. ‘한식대첩-고수외전’은 한국인과 외국인의 관점을 통해 한식 세계화에서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들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한식대첩-고수외전’에서 보여주는 한식의 재해석이 한식 세계화의 완벽한 정답은 아니다. 외국인 셰프들이 재해석한 한식은 대부분 컨템퍼러리의 형태에 가깝고, 이는 ‘미쉐린 가이드 서울’에서 한식을 기반으로 한 컨템퍼러리와 이노베이티브 퀴진이 강세를 보이는 현상과도 비슷하다. 다시 말해, 젊은 셰프들이 한식을 풀어내는 방식 역시 한정적일 수 있다는 뜻이다. 제작진이나 평가단의 한식에 대한 생각 자체가 전형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7화 세르히오와 파브리치오가 김치를 주제로 끝장 전을 벌였을 때, 백종원은 김치잼이 포함된 브런치 세트를 만든 세르히오 대신 김치말이를 만든 파브리치오의 손을 들어줬다. 어디까지가 한식이고, 어디서부터 한식이 아닌가. 이것은 ‘한식대첩-고수외전’뿐 아니라 한식 세계화를 고민하는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야 하는 문제기도 하다. 현업에 종사하는 셰프들의 생각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얼마 전 벨기에 미식축제에서 한식 팝업 레스토랑을 열었던 김민지 셰프는 “아직까지 한식을 잘 모르는 외국인이 더 많아서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는 어렵지만, 일부러 더 이런 한식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김치도 그냥 김치가 아니라 파김치나 무생채를 내고, 불고기나 비빔밥보다는 연저육찜, 막국수 같은 것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현 PD 역시 “외국에서 한식을 맵고 짠 음식 혹은 불고기나 치킨 같은 것만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방송에 출연한 셰프들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한식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꿔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한식대첩-고수외전’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렇게 ‘한식대첩-고수외전’은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고민해온, 어쩌면 만날 일이 없었던 고수들을 한자리에 모아놓았다. 전통을 소중히 지켜온 사람들과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사람들의 만남. 그리고 이 자리에서 빛나는 것은 한식뿐 아니라 음식 자체를 대하는 이들의 태도다. 처음 접하는 한식 조리법에 순수하게 감탄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자신의 요리에 활용하는 젊은 셰프들과 ‘이렇게 오래 요리를 했어도 새로운 것을 배운다’, ‘제자가 요리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프로페셔널하고 존경스러웠다’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나이 든 고수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다. 결국 변화와 발전은 그런 사람들의 상호작용에서 비롯된다. 현재 제자들은 본국으로 돌아갔지만, 그들의 레스토랑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아말 셰프는 본인의 레스토랑에 직접 만든 메주 덩어리와 한국 양념을 비치했으며, 마셀로 셰프는 매운 두부조림을 이용한 신메뉴를 개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현 PD는 “‘한식대첩’과 ‘한식대첩-고수외전’을 통해 안으로는 한식을 지켜내고 밖으로는 해외의 셰프들이 한식을 알리고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장독 속에서 몇 년이고 익어가는 장처럼, 느리지만 가치 있는 변화가 시작됐다.


CREDIT 글 | 서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