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희의 ‘Worried About The Boy’, 정은지의 ‘소금, 지방, 산, 불’, 황윤지의 신세경 ‘sjkuksee’

2018.11.16 페이스북 트위터


Worried About The Boy (왓챠)

나는 주로 ‘패션’보다 ‘패션 이야기’를 소비한다(어쩌다 보니 매주 생산도 한다). 그래서 번쩍이는 부티크에서 신상 옷의 향기에 취하기보다 책이나 웹을 뒤지며 오래 묵은 패션사의 발효된 냄새 맡기를 즐긴다. 요즘은 유튜브만 검색해도 궁금했던 지점의 패션과 그것을 둘러싼 정치, 사회, 문화적 맥락을 살필 수 있으니 좋은 세상이 아닐 수 없다. 웰메이드 패션 다큐멘터리야 워낙 많지만, 1980년대 런던 언더그라운드 패션 신과 뉴 로맨티시즘 장르의 태동에 대해 궁금하다면 영국 드라마 ‘Worried About The Boy’(2010)를 찾아봐야 한다. 80년대 초중반의 팝컬처 연대기를 공유하는 친구로부터 정보를 얻고 뒤늦게 파기 시작한 이 영국 드라마는 타이틀에서도 알 수 있듯 ‘걱정되는 그 소년’, 바로 컬처클럽(Culture Club)의 보컬리스트 보이 조지(Boy George)의 이야기를 드라마화한 것이다.

지금은 수염도 기르고 평수도 늘어난 아재지만(아이 메이크업은 여전함), 당시 보이 조지의 모습은 멀고 먼 이 땅의 10대들에겐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가부키 배우 같은 짙은 메이크업에 부풀린 헤어스타일, 동서양의 모드가 조화를 이룬 레이어드 룩…. 그럼에도 상사병에 가까운 팬심까지 품은 한국 소녀 팬들이 수두룩했으니, 어찌 보면 묘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 화려하고 파격적이었던 스타일이 봇물처럼 넘쳤던 시절, 젠더의 경계를 넘어서려는 이른바 유니섹스 모드가 메이저로 넘어와 월드와이드로 퍼진 것도 딱 그때 아닌가.

‘Worried About The Boy’는 그 흥미로운 패션의 진원지인 전설의 클럽 ‘블리츠(Blitz)’를 재현한다. 빅토리안 고딕부터 과격한 펑크, 할리우드 여배우 스타일(보이 조지의 절친 마릴린 같은), 자포니즘 모드까지 온갖 패션 실험이 이뤄졌던 이곳은 뉴 로맨티시즘이라 불리는 새로운 팝 장르와 맥을 함께한다. 블리츠 클럽에 처음 들어선 조지 오다우드(보이 조지의 본명)의 시선에 잡힌 스펜다우 발레(Spandau Ballet), 빌리 아이돌(Billy Idol), 마틴 데그빌(Martin Degville), 스티브 스트레인지(Steve Strange) 등 80년대 초중반에 활약했던 스타들의 초기 모습도 반갑다. 하지만 ‘블리츠 키즈’ 가운데 전 세계적인 명성과 오랜 인기를 얻은 이는 역시 ‘걱정되는 그 소년’이었을 것이다. 참, 이 드라마는 그해 영국 아카데미 텔레비전 크래프트상 베스트 의상 디자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글. 정유희(네이버 디자인 ‘트라의 패션디자인 만담’ 작가)


소금, 지방, 산, 불 (넷플릭스)

‘소금, 지방, 산, 불’은 요리사이자 푸드 라이터인 사민 노스랏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다큐 시리즈다. 푸드 콘텐츠의 대유행으로 TV쇼가 그야말로 쏟아지고 있지만 다들 고만고만하다. 이 쇼의 포맷도 새로울 게 없다. 소금, 지방, 산, 불을 요리의 핵심으로 정의한 후 일본, 이탈리아, 멕시코, 미국을 여행하며 각 요소를 탐구하는데, 물론 중요한 것은 그 여정에서 다루는 다양한 음식을 먹음직스럽게 선보이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쇼는 어딘가 낯설게 느껴진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 쇼가 여느 푸드쇼와도 다르다고 극찬하며,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호스트인 노스랏 본인을 꼽았다. 그는 이란 출신 이민자 부모를 둔 미국인이다. 다른 푸드쇼라면 백인 호스트에게 ‘이국적인’ 음식을 소개하는 역할에 그쳤을 페르시아계가 호스트라는 사실만으로 많은 것이 달라진다. 더불어 노스랏은 여성이다. 다른 출연자들의 다수도 여성이며,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가정 요리사로서의 엄마 혹은 할머니보다는 업계 여성이라는 것이다. 하다못해 이런저런 조력자들도 주로 여성인데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노스랏은 프로듀서들이 남성들만 즐비한 명단을 가져올 때마다 돌려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쇼가 깬 가장 큰 금기는 여성의 식욕이다. 많이 먹는 여자가 조롱받지 않으려면 날씬해야 한다. 그리고 깔끔하지 않고 게걸스러우면 비난받는다. 이 쇼에서는 여성의 식욕이 거리낌 없이 묘사된다. 천장부터 바닥까지 치즈로 가득한 숙성고를 방문한 노스랏은 여기서 살고 싶다고 말한다. 치즈와 버터만 먹으면서 남은 평생 살고 싶다는 그 표정은 진짜다. 아침 댓바람부터 기름진 포르케타 샌드위치를, 약간 태우듯 구운 주먹밥을, 버터밀크를 발라 통째로 구운 닭을 맛본다기보다는 배를 채울 기세로 먹는 표정도 마찬가지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 얼굴 전체에 펴져 나가는 기쁨의 표정, 우리 모두 알고 있는 그 표정이다.

그가 죄책감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여성으로 살아가는 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동양인 입장에서 일본 편에서는 여전히 오리엔탈리즘이 느껴진다. 그래도 백인 남자가 제3세계 나라들을 돌며 주접떠는 쇼에 질렸다면 당장은 더 나은 대안이 드물다. 그리고 노스랏 본인이 말했듯, 어쨌거나 백인 남성이 아닌 존재가 미디어에 등장하는 것은 일단 중요한 것이다.
글. 정은지(번역가)


신세경 sjkuksee (유튜브)

단조로운 이미지들을 이어 붙이고 허술한 자막을 단 꽤나 긴 시간의 브이로그 몇 편이 신세경의 유튜브 채널에 올라왔다. 반려견들과 시간을 보내며 장도 보고 베이킹도 하는 등 소소한 20대의 일상을 담담하게 보여주는 그 비디오는 내 친구가 찍었다 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평범하지만, 단숨에 화제에 올라 유튜브 인기 급상승 동영상에 오를 만큼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한다.

나도 만들 수 있겠다, 길고 지루하다는 반응들도 있지만, ‘연예인빨’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놀라운 인기를 설명하기 어렵다. 오히려 이 채널의 인기는 조금 엉뚱하게도 최근 방송을 시작한 이슈메이커 설리의 첫 리얼리티 ‘진리상점’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설리의 취향이 담긴 팝업스토어를 오픈한다는 내용의 ‘진리상점’은 전문가들의 빈틈없는 설계를 바탕으로 콘셉트와 콘텐츠를 포함한 많은 것들이 처음부터 기획되어 화려하게 편집된 영상이다. 하지만 그것은 설리가 멋대로 꾸민 인스타그램보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훨씬 재미가 없는데, 궁금한 게 많았던 설리의 일상을 누군가의 관점에서 짜깁기해 놓은 것에서 그치기 때문이다. 그것은 실상 다소 미숙하지만 주인공의 시선이 느껴지는 신세경의 비디오가 더욱 재미있게 느껴지는 이유를 어느정도 설명해준다.

결국 신세경 채널은 젊은 구독자들이 원하는 것은 컨텐츠의 완결성이 아닌 제작자이자 주인공인 그 사람의 태도라는 것, 진솔하고 성실하게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려는 주체적인 시선임을 보여준다. 나도 만들 수 있겠다는 그 생각은 ‘그래, 그럼 너도 무엇이든 만들어봐’라는 가볍지만 신선한 제안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설리의 화려한 생활을 멀리서 지켜보는 것 보다는, 신세경의 평면적인 일상이 은근히 말을 걸며 한 걸음 더 다가오는 것이다.
글. 황윤지(아트 칼럼니스트)
CREDIT 글 | 정유희, 정은지, 황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