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로윈(2018)’, 40년만의 속편

2018.11.15 페이스북 트위터


‘할로윈(1978)’의 주인공은 로리 스트로드다. 학교에서는 성실한 학생이며 동급생 사이에서는 연애에 익숙하지 않아 챙겨줘야 할 친구이고 이웃집 꼬마 아이에게는 친근한 누나이자 똑 부러진 베이비시터다. 공포 영화의 모범적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인물은 신화 속 영웅과도 같았다. 그는 작품의 초반 문학시간에 운명론에 대한 질문을 받는데, 이 질문은 로리 스트로드가 이후 ‘할로윈’ 시리즈를 대표하는 연쇄살인마 부기맨-마이클 마이어스라는 의인화된 운명과 맞서리라는 복선이자 영웅에게 내려진 신탁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수많은 ‘할로윈’ 시리즈의 후속작들은 이 훌륭한 주인공에게 정당한 비중을 할애하지 않고는 했다. 주인공 로리 스트로드보다는 목적을 알 수 없었던 연쇄살인마 마이클 마이어스에만 주목한 나머지 주인공에게 가야 할 비중을 악역에게 쏟아 붓고만 것이다. 결국 마이클 마이어스라는 인물에게는 “로리 스트로드의 숨겨진 오빠다”, “정신감응능력이 있다”, “컬트 종교단체와 연관이 있다” 등의 구질구질한 설정들이 더해졌고 그의 불투명함에서 오는 캐릭터성은 완전히 망쳐졌다. 그리고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은 점점 잊혀만 갔다.

매력적인 악역 자체를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공포 영화만이 아니라 어느 장르에서든 악역은 악역이기에 의미를 가진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악역은 미지의 존재로만 남아있어야 한다. 불가해하다는 한계야말로 그들이 가진 공포와 매력의 본질이다. 그렇기에 악역에게 구구절절한 설정을 더하면 이야기는 구차해지고 또 따분해진다. 악역이 저지르는 부당한 폭력은 자세히 살펴보면 대부분 그들이 사회적으로 합의된 규칙을 따르지 못한다는 무능의 증명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이들의 사정을 밝히면서도 그 모자람을 폭로하지 않고 여전히 초월적이고 빼어난 누군가로 남기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차라리 ‘도박묵시록 카이지’의 스핀오프 ‘중간관리록 토네가와’나 ‘소년탐정 김전일’의 스핀오프 ‘범인들의 사건부’처럼 카리스마 넘치던 악역들을 우스꽝스러운 인물로 바꾸는 편이 더 논리적으로 설득력을 갖는 것 역시 마찬가지의 이유에서다.

다행히 시리즈 4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할로윈(2018)’은 다른 속편들이 피해자를 지우고 가해자만을 남겨놓는 실착을 반복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성취를 보였다. 이 작품은 마이클 마이어스와 관련된 구태의연한 설정들은 그저 악의적인 헛소문이었다며 일괄 폐기처분해버린다. 그리고는 이런 가십에 환장하는 인물들-그러니까 연쇄살인사건을 재미로만 여기는 팟캐스트 진행자나 살인마를 숭배하는 정신과 의사 같은 사람들을 마이클 마이어스의 사냥감이자 놀림감으로 만든다. ‘할로윈(2018)’에서 의미 있게 다뤄지는 것은 오로지 40년 전에 있었던 연쇄살인사건의 생존자인 로리 스트로드가 겪은 고통과 그에 대한 극복 뿐이다. 세월이 지나 고등학생이었던 로리 스트로드는 딸과 손녀를 둔 노인이 되었다. 그는 연쇄살인사건의 생존자로서 깊은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로 인해 집을 요새처럼 꾸미고 사격과 격투기를 편집증적으로 반복한다. 로리 스트로드의 딸은 그런 어머니에게 질려 거리를 두려고 하며 손녀 역시 그를 사랑하지만 그가 겪은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할로윈이 다시 찾아오고 마이클 마이어스가 정신병원을 탈주하며 이 모든 관계는 다시 한 번 정립될 수밖에 없게 된다. 1편에서 로리 스트로드가 대답해야 했던 운명론은 이제 한 개인이 아닌 세대를 잇는 숙명으로 그 범주를 넓힌 것이다.

악역이 미지의 존재로서 고정되어야만 그 캐릭터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과 달리 주인공은 성장과 변화의 주체로서 끊임없이 자신의 위치를 옮기기에 의미를 가진다. 로리 스트로드는 ‘할로윈(2018)’에서 그 어떤 공포 영화의 주인공들보다도 더 화끈하게 이 역할을 수행한다. 이 작품이 시리즈의 온당한 후속작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이 작품의 클라이막스는 1편의 클라이막스와 거의 동일하게 진행된다. 1편의 팬이라면 박수치면서 즐거워할 정도로 노골적인 오마주이지만, 여기에서 행위의 주체와 대상은 원작과 180도 뒤집혀 있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또 그 안에서 나타나 누군가를 쫓는 자는 이제 부기맨이 아니다. 40년이 지나 로리 스트로드는 사냥감이 아닌 사냥꾼이 되었고 새장이 아닌 덫을 만들었으며 두려움으로 가득 찬 비명이 아닌 분노로 터질듯한 고함을 외친다. 피해자이자 생존자였던 그는 이제 가해자를 징벌하는 집행자가 되었다. 신화 속 주인공의 귀환인 셈이다. 모범적인 속편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CREDIT 글 | dcdc(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