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스캇 “게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이 틀렸다고 얘기한다면, 나는 옳은 사람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2018.11.12 페이스북 트위터
2015년, ‘Britain's Got Talent’에 출연한 싱어송라이터 칼럼 스캇은 소위 ‘독설가’라 불리는 사이먼 코웰에게 골든 부저(준결승 직행 티켓)를 받은 것으로 영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최종 6위에 올라 아쉬울 법도 했지만, 2017년에는 영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음악 시상식인 ‘BRIT Awards(브릿 어워즈)’에서 올해의 노래 상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아시아 프로모션 투어 도중에 잠깐 시간을 내서 인터뷰에 응한 그와 만났다. 과거에 공무원이었던 그는 자신의 음악에 담긴 이야기들에 관해 서슴없이 털어놓는 명랑한 아티스트였다.



아시아 프로모션 차 한국에 왔는데, 덕분에 재미있는 작업을 했다고 들었다.
칼럼 스
: 한국 프로모션은 좀 특별했다. 며칠 전에 한옥에서 소수의 관객들을 앞에 놓고 노래 세 곡을 불렀다. 한옥은 영화나 잡지를 통해서만 보던 거라, 내가 그 장소에서 공연을 한다는 게 초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즐거운 경험이었다. 신발을 벗고 집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도 흥미로웠고. 공간 자체가 독특하다 보니 특유의 느낌에 맞게 옷차림에도 신경을 썼다.

짧은 시간에 해외 뮤지션으로서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다 한 것 같은데. (웃음)
칼럼 스캇
: 필리핀, 싱가포르, 홍콩에 들렀다가 한국에 온 거라 다른 곳보다 시간이 여유로워서 좋다. 낙준(버나드 박)과 함께 한국 음식을 맛보고 노래방에 가는 스케줄이 잡혀 있어서 벌써 기대하고 있다.

간접적으로라도 한국 팬들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칼럼 스캇
: 한국 팬들은 SNS 콘텐츠에 굉장히 빠르게 반응한다. 항상 정기적으로 내가 뭘 하는지 체크하고, 궁금해한다. 다만 나는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선입견이나 기대를 갖고 들어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이번 쇼케이스도 한국 팬들의 성향이 어떤지 미리 찾아보고 반응을 예상한 다음에 임한 건 아니다. 어쨌든 내 팬들은 세계에서 가장 멋진 사람들이니까. (웃음)

처음 ‘Britain's Got Talent’에 등장했을 때, 스웨덴 뮤지션인 로빈(Robyn)의 곡을 불러 무려 골든 부저를 받았다.
칼럼 스캇
: 내 목소리를 찾는 과정에서 발견한 노래였다. 2000년대 중반에 크게 히트했을 때부터 이미 알고 있는 곡이었지만, 그로부터 몇 년 후에 우연히 듣게 된 피아노 버전이 마음을 크게 울렸다. 곡에서 비트를 없애니까 그 가사에 담겨 있던 감정들이 더 두드러진다는 걸 알게 됐다. 직접 불러서 어머니께 들려드렸더니 눈물을 흘리시기에 ‘아,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노래를 가지고 감동을 줄 수 있겠구나’ 싶었다.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하지 않나. ‘Dancing On My Own’을 만난 일은 우연에, 우연에, 우연이 겹친, 굉장한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보컬은 감정을 아끼기보다는 확실하게 표출하는 쪽이다. 제임스 블런트나 아델 같은 아티스트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칼럼 스캇
: 그들은 타인의 감정을 빌려서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자기의 마음 어딘가에서 끄집어낸 이야기로 곡을 쓴다. 그 부분에서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다고 본다. 특히 제임스 블런트(James Blunt) 같은 경우에는 심장에서 바로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가수다. 기회가 되면 함께 노래를 해보고 싶을 정도로 좋아한다. 그의 ‘Goodbye My Lover’나, 아델(Adele)의 ‘Someone Like You’ 같은 노래는 고통 속에도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을 절절하게 담고 있어서 굉장히 좋아한다.

당신의 보컬은 큰 성량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가성과 진성의 경계가 모호하게 넘어가는 기술적인 요소라든가 비밀스럽게 속삭이듯이 부르는 창법 등 요즘 팝 시장에서 각광받는 요소들을 함께 갖추고 있다. 큰 장점이다.
칼럼 스캇
: 그런 장점 덕분에 너티 보이(Naughty Boy), 조나스 블루(Jonas Blue) 등과 컬래버레이션을 하기도 했지만, 피아노 한 대에 맞춰서 부를 때의 나의 목소리가 가장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정식 트레이닝을 받아서 만들어진 목소리는 아니고, 그냥 정직한 목소리다. ‘여기서는 이렇게 불러야겠다’라고 느껴지는 대로 부른다. 그러나 내 노래들 자체가 소리를 내지르는 파트가 많다 보니 좀 힘들어졌다. 최근에 목에 무리가 가지 않게 해주는 레슨을 잠깐 받았다. 물론 처음 방송에 나왔을 때와 지금 내 목소리를 비교해보면 많이 변하긴 했다. 초반에는 비음이 더 많이 섞여 있었다.

앨범 타이틀이 ‘Only Human’이었다. 보통 오디션 출신의 한국 뮤지션들은 아무래도 자기 존재를 대중에 각인시켜야 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나 팀을 드러내는 타이틀을 많이 선택하는데, 그 점에서 다소 의외의 제목이었다.
칼럼 스캇
: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서 레이블 매니저가 “넌 네가 곡을 쓰는 사람이니, 아니면 받아서 줘야 하는 사람이니?”라고 물었다. 그때부터 내 이야기는 내가 직접 써서 나만의 것으로 만들어야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작곡 경험이 별로 없었는데도, 막상 마음을 먹고 나니 술술 곡이 써지면서 70곡 정도가 나왔다. 물론 이 곡들이 다 좋은 건 아니다. 하지만 하나하나 나에게는 나만의 이야기와 감정을 담은 소중한 결과물이다. 그러고 나서 이 많은 곡 중에 어떤 곡들이 나를 가장 잘 대표할 수 있는지 꼽아보니 공통점이 있었다. 우리는 인간이니까 어쩔 수 없다. 우리는 ‘only human’, 즉 인간일 뿐이기에 나약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거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내가 왜 힘든지, 누구와 사랑에 빠지는지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다. 그래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게 나약한 인간의 본모습이니까.


어머니와 여동생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는 게 느껴진다.

칼럼 스캇
: 내 가족은 나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다. 인생의 대부분을 평범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가족과 친구들이 나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What I Miss Most’라는 곡에도 나의 가족, 고향 등에 대한 그리움을 담았다. 지금 이렇게 앉아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순간도 좋지만, 이러고 나서 돌아갈 수 있는 집과 가족이 있다는 것이 정말 행복하다. 요즘은 여동생이 아이를 낳아서 조카를 굉장히 아끼고 있다. ‘칼럼’이라고 가르쳐줘도 “카멈!”이라고 부르는데 그 모습이 굉장히 귀엽다. (웃음)

그 애정이 자신의 음악에 어떤 식으로 드러난다고 생각하나.
칼럼 스캇
: 나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좋아하신 뮤지션들의 영향을 받았다.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이나 셀린 디온(Celine Dion)처럼 감정을 폭발시키는 아티스트들의 음악에서 영감을 많이 받아서, 작곡이나 가창 스타일에도 그런 부분이 묻어나는 것 같다. 또 여동생이 애인 때문에 굉장히 힘들어할 때 위로하려고 쓴 곡으로 ‘Won’t Let You Down’이 있다. 너무 힘들어 하는데 같이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을 담았던 노래다. 여동생은 나에게 영웅 같은 존재다. 음악을 할 수 있게 용기를 준 것도, 항상 힘을 주는 존재이기도 한 사람이다.

원래 당신은 사람을 좋아하는 편인 것 같다. 사실 요즘 한국에서는 일종의 회의주의 같은 게 번지고 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이번 생을 글렀다.” 이런 말이 유행할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음악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긴 있는 걸까.
칼럼 스캇
: 당연히 있다. 음악은 음악 그 자체로 약이 되고, 고유의 치유 능력을 갖고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또한 음악은 인간이 살아가는 순간순간을 표현하는 사운드트랙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결혼식에서 클럽 음악을 튼다. 두 사람이 클럽에서 만났던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그 곡을 택하고 즐거워한다. 요즘에 내 노래인 ‘You Are The Reason’을 자신들의 결혼식 때 댄스곡으로 선택하겠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굉장히 기쁘다.

지금까지 발표한 노래의 가사 중에서 스스로의 마음을 가장 잘 드러낸다고 생각하는 가사가 있을 것 같다.
칼럼 스캇
: 우선 첫 번째는 ‘If Our Love Is Wrong’의 “I don't ever wanna be right(내 사랑이 틀렸다면 나는 옳고 싶지 않다).” 처음 대중 앞에 커밍아웃 하기로 결정했을 때,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하면서 쓴 가사다. 내가 게이라서 사람들이 나에게 “넌 틀렸다”고 얘기한다면, 나는 옳은 사람이 아니어도 상관없다는 마음을 담은 특별한 가사다. 남들이 나를 거부한다고 할지라도 나는 행복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Hotel Room’에서 “Just give me a moment, it's all I ask of you(나에게 잠깐만 시간을 줘, 내가 원하는 건 그것뿐이야).”는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이성애자였던 경험에서 비롯된 가사였다. 우리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지만, 당신에게 내 마음을 보여줄 수 있는 잠깐의 시간을, 아주 잠깐이라도 달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지금 한국에서 가장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아티스트들 중에 TV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좋은 성과를 거둔 사람이 꽤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한때 유행이라고 할 정도로 한국에서 큰 음악 산업의 한 경향이었다. TV 프로그램을 통해 갑자기 인기를 얻었을 때의 득과 실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칼럼 스캇
: 장점은 당연히 꿈꾸던 것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어제까지 평범했던 사람이 갑자기 TV에 나오고,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면 감당할 수 없는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내가 실수한 것은 아닌지, 괜히 출연한 것은 아닌지 싶었을 정도로 혼란스러울 때도 있었다. 나처럼 평범하고 소박한 사람에게 이 산업이 맞지 않는 것은 아닌지 고민도 많이 했다.

경험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다.
칼럼 스캇
: 처음 페이스북에 내가 이 프로그램에 나간다는 사실을 올렸을 때는 ‘Like’가 세 개였다. 한 개는 심지어 어머니가 누르신 거였다. (웃음) 그러나 TV 출연 이후에 갑자기 수천 개로 늘어서 깜짝 놀랐다.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는 성공은 아주 멋지다고 볼 수도 있지만, 아주 무섭다고 볼 수도 있다. 특히 아직 인생을 제대로 살아보지 않은 어린 친구들 같은 경우에는 더 조심스럽다. ‘이런 데 나가기만 하면 인생이 뒤바뀔 수 있어!’라고 생각했다가 상상조차 하지 못할, 스스로 감당도 안 될 변화를 맞게 될 수 있으니까. 홀로 오디션장에 갔다가 탈락하면 마치 세상이 끝난 것처럼 느낄 수도 있고.

“Every performer and artist is watching you now.” 알레샤 딕슨이 파이널 무대에서 당신에게 한 말이다. 이런 강렬한 문장처럼, 이번에 만나고 있는 아시아의 팬들에게 당신을 생각할 때 떠올릴 수 있는 키워드가 있다면 좋지 않을까.
칼럼 스캇
: 솔직한, 진정성 있는, 목소리가 큰. 사실 지금은 내가 꿈꾸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에게서 무언가 가져갈 게 있으면 감사할 뿐이다. 사람들 앞에서 공연할 수 있는 것도 그들 덕분이기 때문에 무대에서는 110%를 보여주려고 한다. 만약 4년 전에 누군가가 나에게 “너 4년 뒤에 한국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을 거야.”라고 말했다면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그 정도로 지금의 현실은 감사하다.

그런데, 여태까지 ‘Britain's Got Talent’ 이야기를 몇 번이나 한 것 같나. (웃음)
칼럼 스캇
: 많이, 아주 많이. 아주, 아주 많이. 매번 사람을 만날 때마다! (웃음) 심지어 나의 인생을 바꾼 곡인 ‘Dancing On My Own’은 수천 번도 더 불렀다. 하지만 이 모든 게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나만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스스로는 이 얘기를 반복하는 게 전혀 지겹지 않다. 다음에는 단독 공연으로 한국에 찾아오고 싶긴 하지만.

매사에 긍정적인 사람인 것 같다.
칼럼 스캇
: 어머니께서 잠깐이라도 침울해 있거나 하면 슬리퍼로 장난을 거셨다. 가정교육을 잘 받은 것 아닐까 싶다. (웃음)
CREDIT 글 | 박희아
사진 | 김도훈(Koiwor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