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돌’은 유효한가

2018.11.12 페이스북 트위터


‘밥 잘 사주는 누나’와 ‘내 ID는 강남미인’의 지극히 의도적인 캐스팅은 스트라이크였다. 올해 봄은 정해인이었고 여름은 차은우였다. 친구들과의 카톡에서 가장 많이 오가는 사진의 주인공이자 만나기만 하면 장면 단위로 이야기를 들어야 했던 이름. 정해인과 차은우는 선이 얇고 유약한 이미지가 비슷해서 어떤 경향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 리스트는 특별한 기준이 있거나 보편성을 의식하는 게 아니라서 거의 모든 타입의 남성 연예인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기간을 쪼개고 시간을 거스른다면 더 많은 이름들을 댈 수 있을 텐데 어쨌든 지금은 셔누다.

춤이나 노래같이 무대를 구성하는 기술의 단위보단 인물 자체에 먼저 집중하는 것이 적합한 아티스트들이 있고, 반대로 특정 퍼포먼스를 통해서 인물에 접근해나가는 게 더 쉬운 아티스트들이 있다. 후자는 한정된 자기 분량 안에서 킬링파트를 만들고 그것을 유행시켜야 하는 케이팝 뮤지션이 대중적 인지도를 확보하기 위해 사용하는 핵심 전략 중 하나가 됐다. 약 10년간 성공한 사례들이 꽤 많았고, 케이팝의 한 시대를 장악했던 후크송은 이 기술을 가장 효과적으로 응용할 수 있는 쉬운 답안이었다. 리스너들도 이제는 그런 문법에 익숙해서 어떤 부분이 히트가 될지 파악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뿐더러, 발매로부터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그 파트를 소화해내는 인물의 역량에 대해 평가까지 해낸다. 후크송은 아주 고전적인 장르가 되었고, 케이팝이 어떤 음악이라고 정의 내리기도 복잡해진 시대에 몬스타엑스의 ‘슛 아웃’은 후렴이 아닌 도입에 그 파트를 배치했고, 그 공격의 몫은 셔누에게 주어졌다.

꽤 경력이 쌓인 아이돌 그룹에겐 그만큼 견고한 팬덤이 있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팬들은 인물이 가진 매력에 대한 찬사를 다양한 측면에서 하루 종일 쏟아낼 수 있기에, 막상 팬덤 밖에서 어떤 부분이 화제가 된다고 하면 의아함을 보일 때가 많다는데 때로는 내부와 외부의 시선이 일치하는 경우도 있다. ‘슛 아웃’의 도입에서 엔진 소리와 함께 시동을 걸듯 상체를 터는 셔누의 ‘매너모드 댄스’가 그 케이스에 속하는 것 같다. 그는 예능에 자주 등장하는 보이그룹 멤버 중 하나지만, 정작 방송에선 대체로 말이 없고 수줍음이 많다는 인상이다. 연출된 상황들에 반 박자 늦게 반응하고, 예능에서는 필수에 가까운 자극적인 리액션도 잘 하지 않는다. 케이팝 퍼포먼스는 대부분 컨셉추얼해서 무대 안팎의 간극이 인물의 매력이 되곤 하는데, 그의 이런 특질들은 말보다 움직임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내야 하는 무대에서 그대로 연장되는 것처럼 보인다. ‘슛 아웃’의 도입부는 셔누가 어둡고 거친 느낌의 세트 중심에 서서 점프수트를 입고 렌즈의 초점이 잡힐 때쯤 공격적인 진동 퍼포먼스로 이어지는 격정적인 군무의 시작을 알린다. 일종의 사이렌과 같은 이 순간은 전에 본 적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이미지임과 동시에, 늘 수요가 있어왔던 남성성에 가깝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해 깊이 파고들지 않아도 열광할 수 있는 캐치한 지점으로 작용한다.

한국에서 ‘섹시’라는 콘셉트는 어떤 성별이 소화하건 주로 남성의 시각과 취향에서 만들어지기 쉽기에, 여성들은 수동적인 대상이 되고 남성들은 대상이 되기보단 피상적인 욕망에 부응하는 주체로서 움직인다. 그것이 반복되어온 결과 여성 뮤지션들은 무대 위에선 섹시함을 표방하더라도 무대 아래에선 애교 있고 친절하며 귀여운 것으로 본인의 무해함을 증명해야 하고, 남성 뮤지션들은 적극적인 유혹의 제스처보다는 단면화된 ‘도발적 태도’만 슬쩍 발산하다가 본인의 가부장제적 남성성과 위신을 지키는 멋지고 거룩한 방향으로 마무리되곤 했다. 이에 대한 적합한 반례는 아니겠지만, 어쨌든 박진영은 본인의 성적 매력을 스스로 만끽하고 도취하는 형태로 관철시킨 최초의 한국 남성 가수였다. 주로 시스루로 된 딱 붙는 상의와 가죽 혹은 비닐 소재의 바지로 완성되는 그의 룩은 본인이 한결같이 표방하는 ‘성에 대해 개방적이며, 스스로 대상화될 수 있는 남자’로 보이기에 충분했고, 그는 무대 위에서나 밑에서나 한결같이 ‘성인 남성’으로 행동했다. 하지만 그런 적극적인 액션이 당시의 여성들이 소비하기 쉬운 이미지가 될 수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이런 점을 보완해서 등장한 가수가 비일 것이다. 그는 박진영이 마련한 섹시함을 과시하는 남성 모델에서 좀 더 능동성이 사라진 쪽에 속한다. 큰 체격과 긴 팔다리, 전신을 최대한 활용해 그루비한 춤을 추는 것 자체만으로도 인기 있을 법했지만 비가 과거에 결정적으로 인기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가쁜 숨소리를 내며 본인이 적극적으로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가도, 그 제스처가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도록 보여주는 귀여운 눈웃음 때문이었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박진영은 성공한 제작자, 비는 ‘월드스타’가 되었고 그것을 기점으로 남성 뮤지션 기반의 산업이 점점 소비자를 상대로 무언가를 강력하게 어필하기보단 대중들의 반응을 통해 획득한 명예와 권력을 지키는 방향으로 변하면서 과거 그들이 구축했던 육체를 과시하던 범주의 퍼포먼스 역시도 점차 희소한 것이 되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비의 상업적인 성공과 명예를 동경하며 이 세계에 입문했을 지금의 많은 보이그룹 중에서 본인의 육체를 대상화하고 그 매력을 깨끗하게 어필하는 인물을 찾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짐승돌’이란 타이틀을 앞세워 웃옷을 찢었지만 백지영의 옆자리를 보디가드처럼 사수하고, 여성 게스트의 말 한마디에 묵묵하게 밭을 가는 이미지만으로 옥택연이 10년 동안이나 혼자서 해당 장르의 계보를 잇고 있다고 믿는 것이 그 증명이다.

한국에서 남자 연예인, 특히 아이돌에 대한 대상화는 쉽게 우상화로 이어진다. 한국 사회에서 남성 대상화에 대한 페미니스트 소비자들의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특히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여성 아티스트와 남성 아티스트에 보이는 태도의 격차와 여성 소비자와 남성 소비자 각각에게 요구하는 소비 패턴을 비교한다면 그런 논의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해야 맞겠다. 남성 대상화의 가장 단순한 결과만 봐도 알 수 있다. ‘연하남’, ‘짐승남’, ‘조신남’같이 쉽게 소비하기 편한 이미지 언어는 광고를 통해 곧장 여성들에게 소구하기 위해 사용된다. 여성들의 섹시함이 천편일률적인 모습으로 남성 소비자들의 대상이 되는 것 역시 소비 당사자인 남성들이 시장의 주체이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봐야 한다. 그러나 여성 소비자는 소비의 주체일 뿐, 시장의 주체는 아니다. 남성에 대한 이미지를 여성이 주체적으로 유통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섹슈얼한 함의를 담은 대중문화 속 남성상을 해석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많은 여성들은 늘 섹슈얼한 이미지를 욕망하고 있고, 그 매력에 대해 역설하고 싶어 한다. 앞의 다양한 이유들로 열거한 나의 말 역시도 그중 하나다. 욕망하는 것과 소비하는 것 사이의 나를 지우지 않는 일. 복잡하고 어렵지만 익숙한 것들에 함몰되거나, 어떤 감상에 치우치지 않고 늘 새로운 가치를 통해 내가 가진 이미지를 경계하는 것. 완전히 재미를 놓을 수 없다면, 나와 같은 여성 소비자가 취해야 할 최선의 방어다.
CREDIT 글 | 복길(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