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작가 3인의 몰아보기

2018.11.09 페이스북 트위터


힐 하우스의 유령’ (넷플릭스)

나처럼 ‘귀신 들린 집’의 호러 서브 장르에 매료된 사람이라면 마이크 플래너건의 ‘힐 하우스의 유령’을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된다. 이 장르의 고전인 셜리 잭슨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미 원작에 훨씬 충실하면서도 1940년대 발 루튼 시절 분위기를 근사하게 풍기는 로버트 와이즈의 영화가 있으니까. (나중에 얀 드 봉이 그 영화를 리메이크하긴 했는데, 그 영화까지 굳이 챙겨 볼 이유는 없다.) 하지만 플래너건은 단순히 영화를 각색하는 것 이상의 작업을 했다. 셜리 잭슨의 원작을 꼼꼼하게 해체해서 이후에 나온 영미권 ‘귀신 들린 집’ 장르의 역사를 담아 새로운 이야기로 재조립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온 10부작 시리즈는 셜리 잭슨의 원작과 가장 많이 다르면서도 원작에 대한 존경심이 가장 두드러지는 작품이 되어 나왔다. 물론 플래너건의 재해석 방향에 모두가 동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완벽한 여성 서사였던 원작의 이야기가 가족 이야기로 변형되면서 결말의 무게중심이 은근슬쩍 아버지와 장남 쪽으로 흘러가는 것이 마음에 차지 않을 수도 있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부작을 빼곡하게 채운 플래너건의 도전 정신을 무시하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특히 긴 롱테이크들로 구성된 6편의 장례식장 에피소드는 그 자체만으로도 빼어난 호러 영화로 인정받을 자격이 있다.
글. 듀


빽 투 더 퓨처 시리즈
 (네이버 다운로드, 3편은 넷플릭스 시청 가능)
‘빽 투 더 퓨처 2’의 마지막 대목은 속편이 있는 모든 영화들의 마지막 중에서 가장 멋지다고 생각한다. 1950년대의 과거에서 1980년대로 돌아가기 위해 타임머신을 준비하고 있던 주인공은 같이 준비하던 박사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번개에 맞는 것을 본다. 번개를 맞자 박사는 사라지고 주인공은 황당해한다. 그런데, 그때 길 저편에서 1950년대에 딱 유행하던 누아르 하드보일드 분위기의 탐정 같은 사나이가 자동차를 타고 홀연 나타난다. 방금 전까지 번개가 치더니 거기에 이어 비가 내려서, 누아르 분위기는 더욱 무르익는다. 정체불명의 사나이는 주인공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오더니, 주인공의 이름을 부른다. 주인공을 어떻게 아는 것일까? 도대체 이 사나이는 누구인가? 이 장면은 ‘빽 투 더 퓨처’ 1편에서 이어지는 흘러간 50년대 돌아보기라는 재미를 살리면서, 3편을 기대하게 하는 다리가 되며, 동시에 2편의 특징인 시간여행 이야기의 다양한 기교와 역설을 한 번에 섞어 터뜨린다. 그 모든 것이 너무나 부드럽게 이어지고, 너무나 다음 장면을 궁금하게 하는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 속에서, 기막히게 딱 맞게 어울리는 화면 연출로 펼쳐지는 것이다.

나는 ‘빽 투 더 퓨처’가 세상의 모든 시리즈 영화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시리즈라고 생각한다. 처음 ‘빽 투 더 퓨처 3’를 보았을 때에는 1편과 2편은 뛰어나지만 3편은 부실하다고 느끼기는 했다. 하지만 시리즈를 몇 차례 반복해서 보자 그 감상조차 바뀌었다. 1편이 너무나 재미있고 2편은 1편보다 더 재미있다 보니, 3편이 그와 비교되어서 좀 약해 보이는 것뿐이다. 세상의 수많은 영화들이 ‘빽 투 더 퓨처 3’ 정도의 재미와 멋에도 미치지 못한다. 주말 저녁에 ‘빽 투 더 퓨처’ 1, 2, 3편을 모두 구해놓고, 구할 수 있는 가장 큰 그릇에 수북이 팝콘을 쌓아 둔 후, 세 영화를 연달아 보는 것은 오랫동안 내가 축제처럼 즐거워하는 일이었다. 바쁘게 지내다 보니 그걸 못 해본 지 몇 년은 지난 것 같은데, 이 글을 쓰다 보니 얼마나 좋은 일이었는지 새삼 기억하게 되었다. 당장 나부터 이번 주말 오래간만에 한번 해보고 싶다.
글. 곽재식


틴 타이탄 GO!
 (넷플릭스)
틴 타이탄은 배트맨의 사이드킥 로빈을 주축으로 하는 청소년 슈퍼 히어로 팀이다. DC 코믹스에서 나름 인기를 모았던 이 시리즈는 몇 번의 애니메이션화가 이루어졌다. 그중 하나인 이 ‘틴 타이탄 GO!’는 원작의 분위기를 180도 뒤바꾸어 제작한 아동용 애니메이션으로, 과연 이런 내용을 어린 아이들에게 보여줘도 될지 고민되는 광기와 강박 그리고 과도한 집착으로 가득하다.

‘틴 타이탄 GO!’의 등장인물들이 하는 일은 철부지 장난뿐이다. 수많은 차원을 정복한 악마 트라이곤은 딸이 어버이날에 카드를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구를 파괴하고 틴 타이탄은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받지 못했다며 산타클로스의 장난감 공장에 테러를 가한다. 만약 진중하고 무게감 있는 슈퍼 히어로를 좋아한다면 ‘틴 타이탄 GO!’는 혐오스럽기 그지없는 작품일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천박한 유머들은 장르의 공식을 온전히 이해했기에 가능한 변주들이기도 하다. DC 코믹스의 다른 애니메이션 시리즈 영 저스티스의 멤버들이 틴 타이탄 멤버들은 유치하다고 지적하자 기괴한 극화로 그림체를 바꾸어 억지스러운 진지함을 과시하고 아동용 애니메이션에 흔히 나오는 우정이나 신뢰의 소중함 같은 교훈은 뻔하다며 장기 투자용 임대 부동산 매입에 관한 교훈을 가르치는 식으로, 직구가 아닌 변화구만 반복해 던진다. 이런 실험적인 에피소드 속에서 기존 슈퍼 히어로 장르에서 신화화된 남성성은 해체되고 조롱받기 급급하다. 제작진들은 어찌나 이 조롱을 즐기는지 게임 그래픽이나 동화 등 다양한 화풍을 오가고 뮤직 비디오까지 만드는 식으로 온갖 공을 들일 정도다.

그런 만큼 이 작품이 교과서적인 작품으로 기능하지는 않는다. 가끔은 누군가를 놀리는 데 너무 열중한 나머지 선을 넘기도 하고 비록 응분의 대가는 치를지라도 남성 캐릭터들이 여성 캐릭터에게 무례하게 구는 장면이 반복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시간이고 뇌를 사용하지 않은 채 볼 수 있는 세련된 작화의 애니메이션을 찾는다면 ‘틴 타이탄 GO!’만 한 선택지도 없을 것이다. 현재 ‘틴 타이탄 GO!’는 넷플릭스에서 시즌 3까지 볼 수 있으며 얼마 전 극장판 에피소드인 ‘틴 타이탄 GO! 투 더 무비’의 블루레이가 발매되기도 하였다.
글. dcdc
CREDIT 글 | 듀나, 곽재식, dcd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