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하는엄마들

2018.11.05 페이스북 트위터


“너만 아이 키우는 거 아니잖아, 먹고는 살아야 하지 않아? 그동안 일한 경력 아깝잖아. 사람 노릇을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해.”

아기가 태어난 지 백일이 지나고 복직을 고민하던 나에게 엄마는 말했다. 이제 막 젖을 먹고 흠뻑 배를 채우고 작은 숨 고르며 겨우 잠든 아기 위로 날아와 박힌 말. 사람 노릇이라니. 나는 지금 사람을 키우고 있는데 이게 사람 노릇 아니고 무엇인가?

안다. 딸에 대한 악의 없는 걱정이란 것을. 누구 못지않게 기르고 가르친, 본인 배 아파 낳은 딸자식이 작은 것 어르느라 분투하는 모습에서 자신의 젊고도 힘겨웠던 시절을 보았음을. 각자 알아서 살아남아야 하는 각박한 사회에서 경제적 자본만큼 유혹적이며 무시하기 어려운 위력도 없다는 것을 나도 잘 안다. 하지만 사람 노릇에 대한 정의는 물론, 문제 해결에는 돈이 전부라는 그 말은 아기를 품은 나에게는 더없이 무용하게 들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이가 자라는 데 경제적 요건은 정말 중요하지만 결코 그것만으로는 제대로 된 어른 노릇을 할 수 없다는 걸 우리는 불과 몇 년 전 세월호 침몰 사고를 겪으며 알고 있지 않은가.

뱃속 아기를 품고 있던 4월, 허망하게 아이들이 물속으로 스러지는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나는 너무나 슬프고 무서웠다. 내가 이 아이를 세상 밖으로 내보낼 수 있을까, 이 사회는 너무나 잔인한 곳이 아닌가, 당장 달려가 저 아이들을 구할 방법을 찾지 못하는 나는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인가. 온 나라가 미디어를 통해 애도의 말을 쏟아낼 때도 고작 그런 말들로는 위로할 수 없는, 아이들 얼굴 하나하나 어른거려 도저히 마음을 가눌 수 없었다.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흘리면서도 일손을 놓지 못하는 내가 보잘것없이 느껴졌다. 그날 저녁, 사촌 언니가 전화를 하며 안부를 물었고, 나는 끝없는 무력감과 공포, 슬픔을 목소리에 담았다.

“힘들지, 그래, 얼마나 힘드니. 그래도 너는 뉴스 보지 마.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먹어.
네 아기 생각만 해.”

안다. 동생에 대한 악의 없는 걱정이었음을. 그러나 내 뱃속 아기, 내 몸 살피자고 속절없이 쓸려간 사람들에 대해 눈과 귀를 닫으라는 그 잔인한 말은 차마 목구멍으로 받아넘기지 못하고 꺽꺽 울음이 되었다. 아기에게 귀가 있다면 그저 내 울음소리만 듣기를 기도했다. 생명을 품고 잃는 일이 세상이 버린 일처럼 느껴졌다. 죽어간 아이들과 태어날 아이에게 면목 없었다.

사람들에게 돈이 없었던가? 아꼈다는 돈으로 배부른 사람들은 누구였던가? 사람 노릇이 어른에게 기대는 것이라면, 이 나라에서 휩쓸려간 생명에게 진 빚으로부터 그 누가 자유로울까. 세월호 침몰 사건은 무사안일주의, 안전불감증, 생명에 대한 경시로 인해 결국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재난이었고, 희생자는 우리 누구라도 될 수 있었다. 그동안 사회에 무관심한 어른이었던 나 역시 부채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금방 지나가. 애들은 곧 클 거니까 어떻게든 이 악물고 버텨.”①

이웃과 동료를 살펴볼 여유가 없었던 사람들에게 타인의 문제는 부메랑처럼 자기에게 돌아온다. 한국에서 여성 양육자는 자신의 사회적 자아를 보호하면서 아이를 키우기 어려운 구조에 갇혀 있다. 아이를 낳은 뒤 만난 세상은 여성을 재사회화하며 ‘버티는 자’를 우상화시킨다. 여성 유급노동자 역시 돌봄과 살림 노동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도 하면서 아이를 키우다니 대단하다’라는 찬사는 돌봄과 살림 노동을 그림자 취급한다. 그림자 노동은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며 ‘전업맘’과 ‘워킹맘’으로 갈라치기 하는 기준마저 되고 있다. 소위 ‘사람 노릇’을 하기 위하여 유급 노동시장으로 돌아간 유자녀 여성 두 명 중 한 명이 버티고 버티다 돌봄을 이유로 떨어져나가고 있는 현실이다. 사람 하나 돌보기 힘든 구조에서 고군분투하는 동안 아이들은 자란다. 학령기 양육자들의 관심은 아이가 졸업하는 순간 끝난다고 여겨진다. 양육자들이 보육, 교육 문제로 골머리 앓을 때마다 이해관계자들은 관심이 수그러들길 바라며 방관을 조장한다. 교육과 관련된 이익집단들은 끊임없이 여론을 만들어내며 정부 기관에 권리를 행사한다. 분자화된 양육자들이 꾸준히 당사자성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현실을 이용한 것이다. 사회가 여성과 아동 문제의 결을 세심하게 보지 못하고 뭉뚱그려 취급하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모두가 엄마다.”②

답답한 현실에 무력감이 더할 때, 그동안 사회로부터 외면당했던 여성과 아동 관련 사회문제에 대하여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움직이는 사람들을 만났다. 바로 비영리단체 ‘정치하는엄마들③ 이다. 이들은 사회적 돌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문제의 당사자가 직접 나서서 정치적 의제로 끌어내고 해결해야 한다는 의식 아래 작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근래 연일 보도되고 있는 사립유치원의 비리 관련 소식은 단체가 이끌어낸 가시화된 의제 중 하나이다. 비리 기관의 이름을 알고자 시작한 일이 한유총이라는 이익집단의 적폐를 온 세상에 드러내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비리가 발생한 유치원명을 국무조정실이 이름 없이 공시한 것이 학부모의 알 권리와 교육기관의 공공성을 침해한 것으로 보고 정보 공개 청구를 한 것에서부터 비롯되었다. 그동안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교육 주체 당사자들이 사유재산을 주장하며 비리를 저지른 교육기관은 물론, 아이들이 피해를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감은 정부 당국에 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며 움직이고 있다.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일렁이는 마음을 돌보고 나눌 수 있도록 살피는 일,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일이 돌봄이다. 아이뿐만 아니다. 사람은 삶의 어느 기간 혹은 모든 기간 동안 자신의 생명 유지를 위해 반드시 타인에게 의존하게 된다. 돌봄과 살림은 인간 사회를 유지하는 데 있어 가장 근본적이고 가치 있는 일이다.④ 이를 위해 가정에서, 학교에서, 나라에서 사회 구성원 모두 함께 애쓰는 일이 사회적 돌봄이다. 내 아이만 잘 키운다고 해서 아이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 당신의 아이가 나의 아이다. 우리는 떳떳하게 사람 노릇을 한 어른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오늘의 우리가 바로 아이들의 내일이니까.

각주 
①, ② 책 ‘정치하는 엄마가 이긴다’ 중
③ 정치하는엄마들은 정치를 통해 ▲엄마들의 직접적인 정치 참여로 모든 엄마가 차별받지 않는 성평등 사회 ▲모든 아이가 사람답게 사는 복지 사회 ▲모든 생명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비폭력 사회 ▲미래 세대의 환경권을 옹호하는 생태사회를 정치를 통해 만들고자 하는 비영리단체이다.
④ 정치하는엄마들 정관 중

CREDIT 글 | 김정덕(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