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해야 할 아시아 배우 다섯

2018.11.05 페이스북 트위터
올해 할리우드는 어느 때보다 ‘비 백인’ 배우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상반기에는 ‘블랙 팬서’가 북미에서 역대 슈퍼히어로 영화 수익 1위 기록을 갈아치우더니, 하반기에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으로 대표되는 아시아계 배우의 선전이 화제가 됐다. 특히 아시아 배우들이 이 정도로 화제가 된 것은 할리우드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 ‘아시안 어거스트(Asian August,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서치’,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등으로 아시아계 배우들이 활약한 2018년 8월을 상징적으로 일컫는다)’라는 말까지 생겼다. 이 흐름을 타고 스타로 떠오른, 혹은 한 단계 더 도약해 할리우드 안팎에서 화제가 된 이들이 있다. 얼마 전 한국을 찾은 존 조부터 아시아계 미국 여성으로서는 18년 만에 ‘SNL’ 호스트가 된 아콰피나까지, 지금 꼭 기억해야 할 5명의 이름을 정리해보았다.



샌드라 오

2018년 아시아 배우 열풍은 올 초에 이미 샌드라 오를 통해 예견됐다. ‘그레이 아나토미’로 에미상 여우조연상 후보에 5번이나 올랐지만 수상은 하지 못했던 그가, 아시아계 배우로서는 사상 최초로 에미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며 화제가 됐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 BBC 아메리카 ‘킬링 이브’의 대본을 읽었을 때 “설마 내가 주인공일 리는 없는데, 그렇다고 어리고 핫한 소녀 캐릭터일 리도 없고, 도대체 어느 부분이 내 거지?”라고 고민했다고 한다. 드라마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레이 아나토미’ 이후 약 4년간 샌드라 오에게 주어진 기회는 연극 무대 혹은 드라마의 작은 역할에 그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주인공을 연기할 기회가 왔을 때 자신이 타이틀 롤로서 드라마를 이끌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보란 듯이 증명했다. 샌드라 오가 연기하는 MI5 요원 이브는 정신병에 걸린 암살범 빌라네를 추적하다가 그에게 강하게 이끌리는데, 그는 이 복잡한 심리를 흡인력 있게 연기해 대중과 평단 모두의 호평을 얻어냈다. 또한 두 여성 캐릭터의 심리전이 중심인 ‘킬링 이브’는 “여성의 가장 깊고 창조적인 장소로부터,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데드라인’)를 고민해온 샌드라 오에게 새로운 여성 서사라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었다.


존 조

“왜 존 조는 제임스 본드가 될 수 없지? #StarringJohnCho.” “다음 캡틴 아메리카는 존 조에게 맡기자. #StarringJohnCho.” 최근 몇 년간 해외 SNS에서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포스터에 존 조의 얼굴을 합성한 후 그를 캐스팅할 것을 요구하는 글을 쓰는 일종의 밈(meme)이 유행한 바 있다. 물론 여기엔 백인 중심의 할리우드 영화판을 비판하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해롤드와 쿠마’, ‘스타트렉: 더 비기닝’ 등에 출연한 존 조는 충분히 매력적이고 연기도 잘하는데 주연을 맡지 못해 의아한 대표적인 배우였고, 그는 올해 스릴러 영화 ‘서치’에서 실종된 딸을 찾는 아버지 데이빗을 연기하며 오랜 한을 풀었다. 또한 ‘서치’는 존 조의 말대로 “아시아계 미국인 가족 설정이 매우 노멀한 것처럼 진행되며, 줄거리가 문화나 인종에 의존하지 않는다”(‘덴 오브 긱’)는 세련된 태도까지 갖춘 웰메이드 장르 영화였다. 인터넷상의 #StarringJohnCho 운동을 흥미롭게 지켜봤다는 존 조는 “제임스 본드도, 서부극도, 강탈 영화도, 셰익스피어 연극도 연기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정말 그가 블록버스터 영화의 주인공으로 우뚝 서는 날이 온다면, #StarringJohnCho 해시태그 운동은 근사한 예언이 되어 또 다른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콘스탄스 우

브라운관에서는 영화계보다 먼저 아시아계 배우들의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었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주역 콘스타스 우는 이곳에서 먼저 변화를 일으키고 있었다. 아시아계 미국인 가정을 다룬 시트콤 ‘프레쉬 오브 더 보트’의 제시카는 미국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분투하는 용맹한 가장이다. 스테레오타입의 동양인 여성 캐릭터에서 벗어나 당찬 모습을 보여준 그의 모습에 감탄한 네티즌들은, 존 조의 사례처럼 ‘루시’나 ‘이지 에이’ 같은 영화 포스터에 콘스탄스 우의 얼굴을 합성해 #starringConstanceWu 해시태그를 달기 시작했다. 이런 움직임에 힘입어 기획된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레이첼은 굳이 재벌 2세 남자친구와 사랑을 이루지 못해도 혼자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여성이다. 그리고, 두 기념비적인 캐릭터를 연달아 연기한 콘스탄스 우는 자신이 연기한 인물들만큼이나 할 말은 할 줄 아는 야무진 배우다. 화이트워싱으로 논란이 된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이나 ‘그레이트 월’의 인종 문제를 직접 비판했고, 성추행 사건으로 논란이 된 케이시 애플렉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을 때 “업계의 총체적이고 종종 숨겨진 여성 학대”라는 글을 SNS에 게재하기도 했다.


로스 버틀러

잭은 넷플릭스 드라마 ‘루머의 루머의 루머’에서 가장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었다. 키 크고 잘생기고 운동도 잘하고 집도 잘살며 부족할 것 없어 보였던 그는, 한나를 자살에 이르게 한 원인을 제공한 브라이스 워커 무리 중 일원이다. 그런데 시즌 2에서 새로운 반전이 밝혀지면서 이 캐릭터는 뜨거운 감자가 됐다. 로스 버틀러의 훈훈한 외모와 신경 쓰일 수밖에 없는 복잡한 캐릭터의 사정은 로스 버틀러를 ‘루머의 루머의 루머’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남자 배우로 만들었다. 무엇보다 하이틴 드라마에 하나 이상 등장하던 ‘교내 인기남’ 캐릭터를 동양인 배우가 연기해도 괜찮고, 오히려 훨씬 신선하다는 것을 증명해낸 일은 중요한 사건이 됐다. 참고로 로스 버틀러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에서 헨리 골딩이 맡았던 남자 주인공 역할에 관심이 있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지만, 나이대 등이 맞지 않아 최종 캐스팅에 이르지는 못했다고 한다.


아콰피나

시작은 유튜브였다. 6년 전 평범한 출판사 직원이었던 아콰피나는 ‘나의 질(My Vag)’이라는 제목의 랩 비디오를 호기롭게 유튜브에 업로드했는데, 회사에서 잘린 대신 인터넷 스타가 됐다. 13살부터 카세트 플레이어에 자신의 랩을 녹음하고 17살에는 ‘개러지밴드’ 앱에 직접 만든 트랙을 올리던 그는 언제나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기록하던 아티스트였고, 유튜브 스타가 된 후에는 스스로 “자신만만한 페미니스트 랩”이라 일컫는 두 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그리고 요즘 아콰피나는 아시아계 미국 여성을 대표하는 가장 대중적인 스타가 됐다. ‘오션스 8’의 소매치기 콘스탠스와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주인공 레이첼 추의 친구 페익린 고 역을 통해 배우로 데뷔하고 루시 리우 이후 아시아 배우로서는 18년 만에 ‘SNL’ 호스트가 된 것이 불과 1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이에 아콰피나는 “확실히 더 신중해졌다. 어느 때보다 내가 속한 집단을 대변하게 됐다”(‘엘르’)며 최근 느끼는 부담감을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오직 한 가지 이유로 태어났다. 모든 사람에게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개봉 당시 남긴 트위터 글)라고 말하는 그는 여전히 자신만의 랩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아티스트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CREDIT 글 | 임수연(‘씨네21’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