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예지의 ‘사브리나의 오싹한 모험’, 장혜영의 ‘로버트, 우리가 사랑한 케네디’, 정혜윤의 ‘보잭 홀스맨’

2018.11.02 페이스북 트위터


‘사브리나의 오싹한 모험’ (넷플릭스)

왜 헤르미온느가 ‘해리포터’의 주인공이 아닐까? 마법세계의 팬으로서 종종 궁금했다. 현명하고 바르고 야무져서 위기의 국면마다 두 남자아이를 챙겨 이끄는 이 여자아이에겐 왜 ‘선택 받은 아이’가 아닌 조력자 역할이 주어졌을까? 다행히 의문은 시대의 흐름을 따라 조금씩 풀려간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또 다른 마법세계 ‘사브리나의 오싹한 모험’의 사브리나는 강하고 용감할 뿐 아니라, 선택 받았다. 서사를 추동하는 모든 인물은 여자고, 남자는 부수어야 할 안티테제 혹은 지켜져야 할 히로인이다. 반은 인간, 반은 마녀인 소녀 사브리나가 두 세계를 오가는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은 같은 원작으로 2000년대 초반 방영된 발랄한 코미디 ‘미녀 마법사 사브리나’와는 달리 호러에 가깝다. 이 장르적 서스펜스는 사브리나를 억누르는 기제와 자유로워지려는 그의 의지 사이 팽팽한 긴장을 구현한다.

흥미로운 건, 이 대결이 인간과 마녀 사이의 긴장이 아닌 가부장제와 여성의 자유의지 사이의 충돌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어둠의 신은 왜 힘과 자유를 다 가질 수 없게 하나요?” 사브리나의 물음에 마녀 워드웰 선생은 답한다. “그도 결국 남자니까.” 인간 세계에 여성과 소수자를 억압하는 가부장제가 있듯, 마법 세계에도 복종을 강요하는 어둠의 질서가 있다. 어느 쪽도 참지 못하는 사브리나는 연대하고 반항하며 싸운다. 인간 학교에서 금서를 읽는 여성 클럽을 만든 사브리나가 마법 학교에서 전근대적인 악습에 희생될 뻔한 마녀를 구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그렇다면 이 세계에서 안타고니스트가 아닌 남성의 자리는 로맨스를 위한 역할일 뿐이다. 히어로 사브리나는 인간 남자친구, 히로인 하비를 구해내고는 애틋하게 고백한다. “널 위험에 처하게 하기엔 내가 널 너무 사랑해.” 히어로물에서 지겹게 들은 이 대사가 이렇게 짜릿한 적은 없었다.
글. 이예지(‘GQ’ 에디터)


‘로버트, 우리가 사랑한 케네디’ (넷플릭스)

정치의 시대인 동시에 정치가 실종된 시대를 살고있는 지금, 세상이 바뀌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도대체 이 망할 세상을 어떻게 바꾸어야 좋을지 고민하고 있다면 돈 포터 감독의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로버트, 우리가 사랑한 케네디’를 추천한다. 다큐멘터리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으로서 형의 당선을 진두지휘했고, 형의 암살 후에는 스스로 정치인이 되어 새로운 미국을 꿈꾸었던 로버트 케네디의 삶을 다룬다. 풍부한 기록 필름이 뒷받침하는 탄탄한 스토리에 생생한 인터뷰가 속도감을 더한다.

1960년대 미국 엘리트 정치인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2018년의 ‘헬조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얼마나 큰 울림을 줄지 의구심을 품을 수 있지만, 이 시리즈는 두 가지 지점에서 시공간을 뛰어넘는 공감을 불러온다. 리더십의 성장과 불평등과의 싸움. 형의 안타까운 죽음 이후 그가 처음으로 뉴욕 주 상원의원에 출마할 때만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은 그를 언젠가 미국의 대통령 후보가 될지 모르는 재목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서서히 변화했다. 그에게는 슬픔의 힘, 솔직함의 힘이 있었다. 그는 이렇게 연설한다.

“저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습니다. 정계를 은퇴할 수도 있었죠. 제 아버지가 부자라서 아버지한테 얹혀 살 수도 있었거든요. 하지만 저는 돈도 필요없고 사무실도 필요 없습니다. 저는 그저 미국의 상원의원으로서 나라에 봉사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바라는대로 미국에 봉사할 기회를 얻은 로버트 케네디는 미국을 종횡무진하며 베트남 전쟁의 시대에 차별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민권을 위해 투쟁하기 시작한다. 결말에 대한 아쉬움과는 별개로 사람들의 구체적인 고통으로 성큼 다가가 가장 절실한 언어로 인간다운 삶을 호소하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나는 어쩐지 내일을 열심히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글. 장혜영(유튜브 채널 ‘생각많은 둘째언니’ 운영자, 다큐멘터리 감독)


보잭 홀스맨 (넷플릭스)
‘보잭 홀스맨’은 과거의 영광을 과거의 것으로 보내지 못하고 붙잡고 집착하며, 제대로 애도되지 못한 상실감인 멜랑콜리를 견디지 못해 알콜과 마약에 의존하는, 관계맺고 사랑하는 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중년 말(馬) 보잭 홀스맨의 이야기다. 그는 80년대에 ‘홀싱 어라운드’라는 유명한 시트콤으로 ‘할리우’의 유명인이 되었지만 그뒤로는 변변히 성공한 작품이 하나도 없다. 주인공과 그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로 매 에피소드가 전개되는데, 미국 안팎의 젠더, 인종, 계급을 아우르는 다양한 사회 이슈를 다루며 시니컬하고 풍자적인 톤을 유지한다. 예를 들어 총기소지 불법화의 윤리적 정당성과 동시에 여성이 총을 가지는 것이 임파워링일 수 있다는 상황을 병치한다. 섹시 아이콘 아이돌이 다른 이슈를 감추기 위해 낙태를 했던 척하면서 낙태를 ‘너무 쿨하게’ 말하는 음반을 냈다가 갑자기 임신해서 아이를 낳겠다고 선언해버린다.

가족도 ‘보잭 홀스맨’의 주요 소재다. 폭력적인 아버지와 억압 속에서 미쳐버린 어머니 밑에서 학대당하며 자란 과거가 나오는데, 이것이 미국의 시대상에서 일정정도 보편적인 것이었음을 인지하고 본다면 단지 개인과 한 가족의 이야기로만 읽히지 않게 된다. 보잭의 할머니는 우울증 때문에 전두엽 제거수술을 당하고, 보잭의 어머니가 ‘인형의 집’을 보고온 뒤 내내 우울해져 있다며 아버지가 투덜거린다. 아이러니가 이 시리즈의 내러티브를 가장 정확히 표현하는 단어임에도 ‘보잭 홀스맨’은 인간과 존재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아,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애매한, 느낌이 묘한 위로를 준다. 그러나 어쨌거나 보잭은 성공했고 폭력적인 중년의 남자다. ‘보잭 홀스맨’은 보잭의 시점과 입장을 끊임없이 보여주지만 그의 한계나 폭력을 옹호하지 않게끔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는다. 팝아트적 색감과 온갖 동물 캐릭터를 구경할 수 있는 것과 더불어 프린세스캐럴린, 다이앤, 새라 린, 할리하크, 지나 등 다양한 여성인물들의 서사를 볼 수 있는 것도 즐거운 점이다.
글. 정혜윤(봄알람 마케터)
CREDIT 글 | 이예지, 장혜영, 정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