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두나, 어른도 자란다

2018.10.24 페이스북 트위터


배두나는 전 세계를 돌며 워쇼스키 자매의 넷플릭스 시리즈 ‘센스 8’을 찍었다. MBC ‘라디오스타’에서 밝힌 것처럼 명품 브랜드와의 전속 계약으로 특급 대우를 받기도 한다. 20년 전 데뷔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일하면서 단 한 번도 스타가 아닌 적 없었던 배우이자 모델. 심지어 전 세계를 무대 삼아 활동하는 사람. 그러나 요즘 배두나는 이혼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다룬 KBS ‘최고의 이혼’에서 강휘루로 살고 있다. 매사에 덜렁대고, 뭘 하든 느긋하며, 때로는 눈치 없어 보이지만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대책 없이 다정다감한 휘루는 도통 어른 같지 않은 어른이다. 어딘가 나사 하나 빠진 것 같은 이해 불가한 인물로 보일 때쯤, 배두나는 휘루가 그 누구보다 속 깊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설득해낸다. 남편 조석무(차태현)에게 어떻게 그와의 결혼 생활을 버텨냈는지 이야기하는 동안 울음을 겨우 참고 있는 표정, 울먹이는 목소리, 선반에 놓인 책을 한 권씩 떨어뜨리는 손가락 끝은 그동안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내온 휘루의 상처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미성숙하지만 성장하는 여자.” 배두나는 자신이 맡은 인물들의 특징을 이렇게 요약한 바 있다. 그는 처음부터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을 것만 같은 청춘이었다. 커다란 눈과 동그란 코끝은 마냥 귀엽다기보다 조금 고집스럽고 불퉁해 보였고, 세상을 호기심으로 바라보면서도 거기에 온전히 적응할 생각이라고는 없는 얼굴처럼 보이기도 했다. ‘고양이를 부탁해’나 ‘플란다스의 개’, ‘복수는 나의 것’ 같은 영화는 물론 KBS ‘학교’, 일본 영화 ‘린다 린다 린다’ 등에 꾸준히 캐스팅될 수 있었던 것 또한 어느 정도는 그런 이미지 덕분이었다. 덜 자랐기에 매력적으로 비치던 부분은 시간이 흐르면 빛바래기 마련이고, 청춘의 시기를 지난 배두나가 어떤 나이로 나이 들어갈지는 좀처럼 예상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조금 다른 어른들을 연기한다. JTBC ‘비밀의 숲’ 속 한여진은 똑똑하고 능력 있으면서 정의롭고 마음까지 따뜻한 경찰이었으며, ‘도희야’의 영남 역시 복잡한 문제를 품고 살아가지만 학대받는 아이를 구해내고 잘못된 일에서 눈 돌리지 않으려는 인간이었다. 배두나가 그리는 어른들은 남들이 보지 않거나 보지 못하는 것을 똑바로 보고,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믿으며,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

‘최고의 이혼’에서 동화 작가를 꿈꾸는 휘루는 책을 사는 어른들을 위해 이야기를 써야 한다고, 아이들이 뭘 알겠냐고 비웃는 출판사 관계자를 향해 묻는다. “어른들은 뭘 아나요? 안다고 생각하는 것뿐이지.” 그러고는 어린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이 방향이 맞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기 위해 동화를 쓰고 싶다고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미성숙하며,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결국 어떤 방향으로 가고자 노력하는지에서 드러난다. 캐릭터 바깥의 배두나는 ‘비밀의 숲’을 거치며 서포트하는 역할의 중요성에 대해 배웠다고, 다른 것을 틀렸다고 말하지 않아야 한다고 이야기할 줄 아는 사람이다. 끊임없이 자신을 낯선 환경과 상황에 던져보며 살아가기도 한다. 그러니 현실에 발붙인 작품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우리는 배두나가 언제 어디서든 뻔하지 않은 어른으로 나타날 거라는 걸 알고 있다.

CREDIT 글 | 황효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