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 현상

2018.10.22 페이스북 트위터


쇼팽콩쿠르 우승 이후 피아니스트 조성진에 대한 관심과 열기는 예상대로 급격히 커졌고, 지금도 커지고 있다. 조성진이라는 아티스트의 성장이 꾸준한 만큼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 클래식 시장 전반에 그 영향력은 갈수록 견고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늘 그렇듯 남의 취미생활에 들어가는 돈을 아까워하는 시선도 생기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클래식 연주자에게 중요한 건 연주력인데 단지 그 연주자의 사진이나 포스터 한 장이 더 들어 있는 시디에 왜 혹하냐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하고, 연주를 젊고 잘생긴 얼굴로 하냐는 식의 이야기도 있다. 길어야 두 시간 남짓한 연주를 듣겠다고 해외 원정까지 가는 것에 의아해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클래식 시장에 젊고 유망한 연주자의 등장은 매우 중요하다. 미래의 관객을 확보해야 시장의 명맥을 이어가고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클래식은 살아남은 옛날 대중음악의 별칭이다. 그 말인즉, 베토벤은 당대의 슈퍼스타이자 아이돌이었고 전해져 오는 그림만으로도 절세 미남인 리스트 역시 무대에 등장하기만 하면 괴성을 지르고 흥분하다 못해 졸도하는 관객이 속출할 만큼 인기를 누렸다. 이런 스타의 음반을 사주는 팬들에게 어필할 만한 기획은 매우 중요하다. 조금이라도 판매량을 높이기 위한 음반 패키지의 디자인, 부가적으로 끼워주는 관련 상품들의 목록은 아이돌 스타의 마케팅과는 비교가 안 되겠지만 모양새는 비슷하다. 조성진만큼은 아니지만 실내악 단체로 많은 팬들을 몰고 다니는 노부스 콰르텟의 최근 발매 음반은 예술의전당 30주년을 기념한 라이브 녹음에 메이킹 영상을 수록한 디브이디를 포함한 스페셜에디션이었다.

팬덤이 커지면 그 속의 구성원도 다양하기 마련이고, 단지 조성진 한 명에게만 열광하며 다른 연주자나 음악에는 아무 관심 없는 팬들도 당연히 존재하고 제법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팬들은 클래식 시장에서 퇴출되어야 할 대상일까? 오히려 손꼽히는 유명 오케스트라들은 자체적으로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꾸준히 마련해서 미래의 관객을 유치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여기엔 평소 클래식에 관심 없는 일반 관객들도 당연히 대상에 들어간다. 단지 한 명의 슈퍼스타가 클래식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조성진이 아니라도 열성적인 팬덤이 꾸준히 표를 사주고 인기를 뒷받침해주는 사례는 제법 있다. 차이점이라면 어떤 연주자는 단지 팬들과 함께 고인물처럼 머물러 있는데 어떤 연주자는 팬덤으로 유입됐다가 클래식 전반의 소비력을 키우는 요인이 된다. 조성진의 연주에 흥미를 느껴 음악을 듣기 시작했어도 거기서 그치지 않고 조성진이 연주한 드뷔시를 다른 연주로도 들어보고 싶고 협연한 오케스트라의 다른 음악도 궁금해서 들어보게 되고, 그런 식으로 차츰 음악 감상의 스펙트럼을 넓혀가는 것이 보통이다. 시작이 어디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계기로 발을 들여놓았다가 거기서 정착하는 인구가 늘어난다면 그 요인이 무엇이든 전체 시장으로 볼 땐 환영할 일이다. 1970년대 한국에서 붐을 일으킨 피아노와 바이올린 교습 열풍은 정경화와 정명훈의 선풍적인 인기로 촉발되었고, 서울시향의 약진이 다른 오케스트라의 공연 티켓 판매량까지 끌어올린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급격히 늘어난 관객들이 시장에 안착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정명훈의 서울시향은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의 타임스케줄에 가장 근접한 레퍼토리를 꾸준히 늘려서 역량을 높여왔다. 예술감독이 부당한 논란에 휘말려 떠난 뒤로도 아직까지 무너지지 않고 현상 유지를 할 수 있는 동력도 정명훈의 십 년 세월이 헛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성진은 한국보다 해외 연주 일정이 더 많고 레퍼토리도 계속 늘려가며 정진 중이다. 그것은 팬들의 취향 범위도 같이 넓혀준다는 의미다. 아무리 열성적인 팬심이라도 대상인 스타가 자리에서 안주하고 새로운 뭔가를 내놓지 못하면 열정은 금세 식는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아닌 그저 귀엽고 앳된 얼굴의 스무 살 청년 조성진에게 반했더라도 그 자체를 깎아내려서는 안 된다. 겉보기엔 단순히 외모에만 빠진 것 같지만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얘기다. 리스트가 미남이어서 슈퍼스타가 되었다는 말도 맞지만 음악의 역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명연주자이며 훌륭한 작곡가였다는 것도 분명하다.

조성진에 대한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게시판이 두 군데가 있다. 조성진마이너갤러리솔레아아티스트갤러리다. 가보면 조성진의 국내외 모든 연주 일정과 다양한 행사 스케줄이 총망라돼 있고 공연을 직접 본 후기들도 빼곡하게 넘쳐난다. 조성진만이 아니라 다른 연주자와 오케스트라의 공연 후기도 상당히 많다. 조성진의 팬덤 안에서는 연주회 티켓을 가능한 한 프리미엄 없이 구할 수 있게 서로 도와주고 해외 연주를 직접 찾아가고 싶어 하는 팬들에게 자세한 정보까지 아낌없이 제공한다. 팬심이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남들도 같이 좋아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훨씬 크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십시일반하게 된다. 클래식에 문외한이었다가 조성진에게 반해서 생소한 음악을 찾아 듣고 공연장까지 직접 찾는 정성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어떤 음악이든 즐기려고 듣는 것이고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무한정 듣는 것도 불가능하다. 사실 그러면 또 어떤가. 겉멋으로든 장식으로든 안 듣던 새로운 음악을 듣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늘어나면 그 영향은 언젠가는 또 다른 시장에 기여하게 된다. 그러니까 이 글의 결론은, 슈퍼스타 조성진 만세다.
CREDIT 글 | 오경아(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