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은별의 ‘테라스 하우스’, 미식의 별의 ‘여자 구애의 밥’, 구명주의 ‘세일즈맨 칸타로의 달콤한 비밀’

2018.10.19 페이스북 트위터


테라스하우스 (넷플릭스)

“‘테라스하우스’는 처음 만나는 남녀 여섯 명이 함께 생활하는 모습을 담은 것입니다. 대본은 일절 없습니다.” 2012년 후지TV에서 시작해 이제는 넷플릭스가 제작하는 ‘테라스하우스’는 일본의 젊은이들이 공동 생활이라는 상황 속에서 자기 캐릭터를 어떻게 연기해 나가는지를 통해, 그들 사이에서 어떤 행동이 인정을 받고 어떤 행동이 배제되는지를 통해 일본 사회의 일면을 잘 관찰할 수 있게 해주는 리얼리티 쇼다. 물론 패널들의 수위 높은 입심에 한 번, 널리 방영된다는 전제 하에 또 한 번 무대가 이중화 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하지만,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쇼와 쇼 바깥이 이어져 있다는 최근의 미디어 환경을 생각한다면 ‘자기를 어떻게 연출하는지를 어떻게 연출할 것인가’라는 문제 하에 행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야말로 현재적인 리얼리티가 아닌가 싶다.

하여간 이 세계에서 출연자들이 자기 이야기를 구성하는 두 가지 축은 꿈(가운데서도 ‘테라스하우스 생활을 통해 얻고 싶은 것’)과 연애다. 전자는 한국의 연애 리얼리티엔 없는 요소인데다 꿈에 대한 태도나 행동에 일관성이 없으면 혼이 나는 거의 집착 수준이라 비교사회학적인 관심마저 유발한다. 후자에 대해서는 일본 애들의 연애는 실제로 저렇게 모든 것을 ‘스테이지화’(단계와 무대라는 두 가지 의미 모두에서) 하는 건지 아니면 모든 걸 화면으로 전달해야 하는 영상 매체의 한계일 뿐인지 약간 오락가락 하면서 보고 있다. 그런데 최근 후자와 관련하여 2018년 현재 방영 중인 ‘카루이자와 편’에 눈길을 끄는 출연자가 등장했다. 자신의 성적 지향을 고민하고 있다는 바이 남성으로, 무대가 되는 도시를 바꾸어가며 6년간 네 시즌이 진행되는 동안 처음 등장한 오픈리 LGBT 출연자다. 그동안 쇼에서 연애는 곧 이성애였고, 패널의 구성은 ‘가족’을 모델로 하고 있다. 쇼의 안전한 세계관을 흔들지 않는 않는 선과 전 세계적인 추세에 따른 화제성에 대한 갈구 사이에서, 이 출연자와 제작사는 각각 어떤 선택을 해 나갈지 자세를 고쳐 앉고 보는 중이다.
글. 안은별 (‘IMF 키즈의 생애’ 저자. 도쿄 거주 대학원생)


여자 구애의 밥(女くどき飯) (네이버 VOD)

주인공 간바야시 메구미는 맛있는 음식 먹기를 좋아하는 프리랜서 작가로, 어느날 친분있는 편집자를 만나러 나간 자리에서 새로운 칼럼의 연재를 맡게 된다. 연재의 내용은 데이트하고 싶은 식당을 독자 응모로 받아서, 독자와 주인공이 식사 데이트를 하면서 거기서 생긴 일들을 가지고 연애 칼럼을 쓰는 것. 말하자면 초건전한(?) 캐리 브래드쇼라고나 할까. 공짜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돈도 벌 수 있는 기회를 덥석 물어버린 주인공에게 담당 편집자는 데이트 자리에서 진짜로 반해버리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하지만, 그게 그렇게 된다면 드라마가 아니겠지요.

일본에는 많은 음식 드라마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길이가 짧은 드라마들은 주로 서민적인 음식을 소재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심야식당, 고독한 미식가, 와카코와 술이 그렇다. 하지만 ‘여자 구애의 밥’은 어른의 데이트를 소재로 다루는 드라마다 보니 서민 음식과는 거리가 먼 (가격대가 있는) 본격 미식을 추구하는 요리들이 등장한다. 거기에다 ‘지금까지 술과 밥에 쓴 돈이면 집을 지었을 것 같다’는 주인공의 뛰어난 표현력으로 음식 맛을 설명하는 걸 보고 있으면, 그 맛이 너무나 그대로 전해지면서 목구멍에서 침이 절로 꼴딱꼴딱 넘어간다. 한화에 25분이라는 짧은 분량을 8화까지 몰아서 보고 있으면 프렌치, 네팔, 야키니쿠, 복어에 이르기까지 온갖 산해진미를 구경하는 것도 순식간인데, 여기서 모자라다면 시즌2도 준비되어 있다.

여자 구애의 밥은 러브 코메디로서도 재미있지만, 주인공이 데이트하는 식당을 보고 있으면 ‘나도 저런 맛있는 밥을 먹으면서 데이트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생겨난다. 좋아하는 사람과 먹는다면 무엇이든 더 맛있게 느껴지겠지만, 정말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데이트를 한다면 그 시간이 더욱 즐거워 질테니까.
글. 미식의 별(음식 블로거)


세일즈맨 칸타로의 달콤한 비밀(넷플릭스)

자신의 ‘덕질’을 위해 직업을 바꾼 남자가 있다. 시스템 프로그래머였던 이 남자는 평일에도 디저트 맛집을 다니고 싶다는 욕구 하나로 출판사 영업사원이 된다. 서점 영업을 다니는 시간을 쪼개어, 디저트를 탐미하겠다는 꿈을 품고서 말이다. 37℃가 넘는 뜨거운 날씨에 발열내복과 정장을 차려입고 빙수 맛집에 달려가는 에피소드만 봐도 주인공 칸타로가 얼마나 대단한 디저트 ‘덕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총 12부작인 시즌 1은 그가 탐미하는 빙수, 핫케이크, 푸딩, 에클레르, 몽블랑 등 다채로운 디저트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회당 하나의 디저트에 집중하기 때문에 넷플릭스에서 한 시즌을 정주행하고 나면 총 12개의 디저트를 간접적으로 맛본 것이나 다름없다. 실제로 칸타로가 찾아가는 가게들은 모두 실제로 존재하는 곳들이니 도쿄 여행을 계획한다면 칸타로 따라 디저트 순례를 해도 좋을 것이다.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칸타로 맛집 리스트는 어렵지 않게 손에 쥘 수 있다.

이 드라마의 바탕에 흐르는 일본 특유의 B급 코드는 칸타로가 디저트를 맛본 기쁨을 표현하는 장면에서 폭발한다. 디저트에 감동받은 칸타로는 갑자기 흰자위를 희번덕거리고, 귀에 거슬릴 정도로 괴상망측한 소리를 내기도 한다. 디저트의 달콤함이 절정에 달한 순간에는 아예 상상의 공간으로 날아가 뜬금없이 춤을 추거나 결투를 벌인다. 드라마의 원작은 만화 ‘사보리만 아메타니 칸타로’. 칸타로가 만화에서 튀어나온 것만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사실 내가 생각하는 핵심 관전 포인트는 칸타로가 노동을 대하는 태도다. 의도하지 않게 칸타로는 영업 매출 1위를 달리는 유능한 직원이 되는데, 정작 당사자는 성취감 따위를 느낄 줄 모른다. 사무실에 앉아서도 ‘오늘은 어떤 디저트를 먹지’하는 딴 생각뿐이고, 서점 영업을 열심히 하는 것도 ‘디저트를 더 맛있게 먹기 위한’ 준비 운동에 불과하다. 직장에서의 딴짓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꼰대에겐 불편한 설정일지 모르나, 밥벌이의 지겨움에 지친 자라면 칸타로의 이중생활을 응원하게 될 것이다.
글. 구명주(푸드 에디터)
CREDIT 글 | 안은별, 미식의 별, 구명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