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의 ‘덱스터’, 윤지만의 ‘모던패밀리’, 고현경의 ‘코우노도리’

2018.09.14 페이스북 트위터


덱스터 (넷플릭스)

덱스터는 ‘연쇄살인범을 처단하는 연쇄살인범’이다. 어릴 적 끔찍한 사건을 겪고나서 살인 충동에 휩싸이게 된 덱스터에게, 경찰인 양아버지 해리는 ‘살인 충동을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면 차라리 살인마들을 대상으로 하라’는 명을 내리고, 들키지 않게 살인하고 처리하는 법을 가르친다. 덱스터는 그의 가르침에 따라 낮에는 마이애미 경찰서에서 혈흔 분석가로 일하면서, 밤에는 살인마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을 처단한다. 살인을 저지르고도 들키지 않았거나, 법의 허점을 이용해 빠져나가 잘 먹고 잘살고 있는 이들이 그 대상이다.

연쇄살인과 토막살인이 난무하는 드라마지만 덱스터를 혐오할 수만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덱스터는 사전에 철저히 조사해서 반드시 살인마만 죽인다. 그들을 살려둔다면 더 많은 피해자가 생길 것이 자명하니 어쩐지 덱스터를 응원하게 된다. ‘살인범만 골라 죽이는 살인범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시민들이 오히려 그를 영웅 취급하며 응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적 복수, 그것도 살인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덱스터 자신조차 드라마 내내 자신의 행동에 번민을 느끼며 끊임없이 괴로워한다. 그가 괴로워할 때마다 시청자도 자신이 연쇄살인범을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흠칫 놀라며 ‘정의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

한편 이 드라마를 보다 보면 엉뚱한 지점에서 당황하게 되곤 한다. 출근 전에 애인의 집에 들러 함께 팬케이크를 구워 먹는다거나(출근 전에 그럴 여유가 있다니!), 누군가의 불 꺼진 집에 들어가 침대를 습격했는데 아직 밤 9시가 안 됐다거나(그 시각에 자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니!), 퇴근 후에 살인을 저지르고 토막 내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시체를 버리고 귀가했는데 자정밖에 되지 않았다거나(대체 언제 퇴근한 건데!) 하는 장면들이 그렇다. 여러모로 등장인물들이 칼퇴근을 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장면들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으나,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야근으로 찌든 한국에서 덱스터가 나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글. 도대체(작가)


모던패밀리 (넷플릭스)

‘모던 패밀리’는 2009년부터 ABC에서 방송되고 있는 편당 20분 정도의 짧은 미국 시트콤이다. 2018년인 지금 열 번째 시즌의 방영을 앞두고 있으니, 미국인들이 이 시트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법하다.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현대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가족의 일상을 그렸다. 때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시청자를 웃기기도 하고, 때론 가족적인 훈훈함을 앞세워 사람을 웃게 만들기도 한다. 시즌 1부터 몰아서 본다면, 어린 배우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는 재미도 있다.

2009년, 처음 이 작품이 시작했을 때는 작중의 가족들이 분명 ‘모던’이라는 단어에 어울렸을 것이다. 돈 많은 가장으로 트로피 와이프 글로리아와 함께 사는 제이, 부모 몰래 결혼식을 올린 클레어와 필, 게이 커플로 파트너와 함께 살다가 동성결혼 합법화로 결혼하게 된 미첼과 카메론의 이야기는 분명 2009년에 ‘요즘의 가족’이라는 이야기의 소재로 삼을 수 있었던 모습이었을지 모른다. 2018년인 지금 와서 보면 전형적인 백인 중산층의 이야기에 코미디 코드 자체도 다소 예상 가능해졌지만 말이다. 시즌 1부터 보면 스테레오 타입을 이용한 다소 불편한 코미디도 있다. 하지만 잘 짜인 각본과 개성 있는 캐릭터는 왜 이 작품이 5회 연속 에미상을 받았는지 이해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글. 윤지만(칼럼니스트)


코우노도리 (コウノドリ) (왓챠플레이)

“도와준다고 하면 안 되지, 당신 아이야” 막 출산을 마친 아내가 아이와 둘만 남을 육아를 불안 해하자 웃으며 도와주겠다는 남편에게, 까칠한 표정의 의사가 일침을 놓는다. 산부인과와 신생아 집중치료실 NICU를 배경으로 한 일본 드라마 ‘코우노도리’ 시즌 2의 첫 번째 에피소드에 등장한 장면이다. 2015년 시즌 1, 2017년 시즌 2를 방연한 TBS 드라마 ‘코우노도리’, ‘코우노도리’는 일본어로 ‘황새’, 아기를 물어준다는 그 황새를 뜻하며 다정하고 유능한 산부인과 의사인 주인공(아야노 고)의 이름이기도 하다. ‘모든 출산은 기적이다’를 주제로 난임과 장애아 출산, 필요 이상의 자연 분만 선호와 제왕 절개, 미성년자의 임신, 싱글 대디의 육아 등 산부인과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을 매회 옴니버스 식으로 다룬다. 시즌 1은 산모와 출산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 초반에는 전통적인 모성애 신화를 강조하는 듯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출산과 육아를 둘러싼 문제는 옳다, 그르다를 쉽게 판단할 수 없고, 사회 구성원이 함께 고민해야 함을 산부인과 의사, 조산사, 산모, 사회 복지사, 가족 구성원 등의 여러 입장을 통해 일깨운다. 개인의 노력만으로 절대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때로는 우회적으로 전달하는 것.

시즌 1은 산부인과를 찾아오는 환자들 각각의 사연을 중심으로 전개한다면 시즌 2는 같은 형식 아래 이야기의 중심이 환자에서 의사로 옮겨온다. 여전히 특수하고 위급한 상황을 다루지만, 그 안에서 의사들은 성장하고 각자 변화의 갈림길을 맞이한다. 흔한 러브라인 없이도 등장인물들이 직장 동료, 선, 후배로서 결속력이 단단한 관계를 맺는다. 산부인과 의사 동기인 다정한 코우노도리(아야노 고)와 냉정한(하지만 속은 따뜻한) 시노미야(호시노 겐)는 같은 환자를 두고도 항상 정반대의 의견을 내놓는데, 어느 한쪽이 완전히 옳은 경우는 없다. 성급히 판단하지 않고 시청자로 하여금 문제의식을 갖고 생각할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이 드라마의 미덕이다. 시종일관 예리하게 현실의 문제를 짚고 따뜻한 시선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는데, 마음이 여리다면 시즌 1 첫 화부터 눈물을 흘릴 수도 있다. 특히 의료진이 막 태어난 아이를 쓰다듬으며 ‘힘을 내!(がんばれ)’라고 응원하는 장면은 거의 매회 등장하는데 볼 때마다 마음이 뭉클하다. 본인은 모르더라도 부모, 가족이 아닌 누군가 한 아이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응원했다고 생각하면, 지치고 힘든 순간에도 힘이 될 테니까 말이다. 정말이지 모두, 애를 쓰고 이 세상에 태어남을 알려주는 작품이다.

PS
코우노도리는 베일에 가려진 천재 피아니스트 ‘BABY’(산부인과 의사다운 예명이지 않은가!)로 활동 중인데, 이 점은 시즌2에서는 거의 부각되지 않는다. 수준급의 실력을 보여주는 아야노 고의 연주를 감상하는 즐거움은 이 드라마의 덤. ‘츤데레’ 시노미야 선생을 맡은 배우 호시노 겐은 2016년 출연작인 ‘도망치는 것은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의 엄청난 성공으로 시즌 1에 비해 분량이 확 늘어나 시즌 2 투 톱 주연으로 등장한다.
글. 고현경 (‘에스콰이어’ 에디터)
CREDIT 글 | 도대체, 윤지만, 고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