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형님’들이 무서워

2018.09.12 페이스북 트위터


지난 2일 JTBC ‘아는 형님’은 신정환의 예능 프로그램 적응을 위한 레드카펫이었다. 신정환은 과거 활동하던 그룹 룰라의 멤버 김지현, 채리나와 함께 등장했고, 그들이 내는 문제를 맞추기 위해 고정 출연자들의 무리에 섞인 뒤, 마지막 문제 출제자로 나서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친한 연예인과 함께 출연해 어색함을 털어내고, 고정 출연자들과 한 덩어리가 되며 자신의 역할을 부여받았으며, 그 뒤에 혼자 자신의 이야기를 할 기회도 받았다. 그사이 그의 도박과 그에 이은 거짓말 논란은 웃음거리 정도로 넘어갔고, 공백기 사이의 이야기와 프로포즈 과정 등을 말하며 인간적인 모습도 부각됐다. 신정환의 복귀작 Mnet ‘프로젝트 S: 악마의 재능 기부’에서 그는 마지막 회까지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어색해했다. 반면 ‘아는 형님’에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이나마 웃을 수 있었다.

불법을 저지른 연예인의 방송 출연을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지는 늘 논란의 대상이다. 도박처럼 타인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성질의 죄는 특히 그렇다. 하지만 ‘아는 형님’은 신정환을 통해 아예 논란이 된 연예인을, 바로 그 문제를 통해 주인공으로 삼았다. 논란이 된 과거사는 오히려 웃음의 중요한 재료가 되고, 그 과정에서 다른 출연자들을 통해 신정환의 좋은 점도 함께 부각된다. 반면 신정환이 출연한 날 ‘무결점 연예인’으로 불린 김영철은 ‘아는 형님’에서 못 웃긴다며 구박받는다. 김영철은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은 적도 없고, 문제가 되는 연예인을 나서서 비웃는 스타일도 아니다. 예능인으로서 그의 능력 이전에, ‘아는 형님’의 웃기는 방식과 떨어져 있다. 여기서 웃기려면 죄가 많거나, 신정환의 걸음걸이마저 ‘도박 도박’이라며 놀린 김희철처럼 타인의 약점을 후벼 팔 수 있어야 한다. ‘아는 형님’의 윤리적인 문제는 단지 신정환, 또는 이수근이나 이상민처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들이 나와서가 아니다. ‘아는 형님’은 문제가 있고, 논란이 있는 사람일수록 웃기기 편하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아는 형님’의 신정환 출연은 일종의 선언이 됐다. ‘아는 형님’은 신정환을 통해 그들이 신정환에게도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줄 능력과 권력이 있음을 증명했다. 대신 그들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문제들을 웃음거리로 내놓아야 한다. 이날 ‘아는 형님’은 이수근이 아들이 준비해준 오트밀 시리얼을 먹는 것으로 시작해, 1990년대 음악 프로그램 방송 대기실을 배경으로 한 상황극과 게임으로 마무리했다. 음식과 건강에 신경 쓰는 남자가 1990년대의 추억에 대해 이야기하는 풍경. 신정환이 다른 출연자들과 과거의 KBS ‘가족 오락관’에서 할 법한 게임을 하다 벌칙으로 물벼락을 맞는 모습은 ‘아는 형님’의 모든 것을 압축한 장면이다. 1990년대에 날렸던 남자가 죄를 짓고 방황하다 정말로 ‘아는 형님’이 있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웃음거리가 되는 대신 게임에 같이 어울린다. 죄지은 자, 인맥과 드립으로 죄 사함 받을 것이니. ‘아는 형님’은 이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전혀 숨기지 않는다.

‘아는 형님’의 시청률은 평소 4% 중반~5%대(닐슨 코리아 기준)로, JTBC는 물론 종편 예능 프로그램 중에서도 손에 꼽힌다. 신정환이 출연한 ‘아는 형님’의 시청률은 2.1%(닐슨 코리아 기준)였다. 하지만신정환이 출연한 날은 같은 시간대에 시청자에게 큰 관심을 모았던 아시안 게임 축구 결승전이 있었다. 게다가 ‘아는 형님’은 특정 소비자층에 시청률로만 표현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갖는다. 네이버TV에서 ‘아는 형님’의 동영상을 높은 조회수 순위로 검색하면 상위 20위 중 13개가 여성 출연자, 특히 걸그룹 멤버 관련이다. 그중 걸그룹 멤버가 춤추는 동영상이 다수고, 출연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던 강다니엘 관련 동영상을 빼면 그 비중은 더욱 올라간다. 걸그룹 트와이스는 멤버 사나가 ‘아는 형님’에서 귀여운 모습을 보여준 것이 화제가 된 뒤, 당시 활동 중이던 곡 ‘시그널’이 다시 음원 차트 정상에 올랐다. 이른바 ‘아재’들이 주도하는 시청률 5%대 예능 프로그램은 30~40대 남성 시청자에게 영향력을 갖고, 활동 중인 걸그룹이나 이미지 전환이 필요한 연예인에게 ‘아는 형님’의 출연은 중요하다. 걸그룹 헬로비너스의 멤버 나라는 그가 혼자 ‘아는 형님’에 출연하는 것을 멤버들이 부러워한 것에 눈물이 고이기도 했다. 이날 ‘아는 형님’의 출연자들은 과거 이 프로그램을 어떤 식으로든 도와준 여자 연예인이었다. 신정환처럼 아는 사이거나 그들을 도와줬거나. 아니면 인기 걸그룹 멤버거나. ‘아는 형님’은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실제로 권력을 가졌고, 그것을 원하는 대로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아는 형님’은 갈수록 퇴행 중이다. 40대 남자가 출연자의 대다수이면서도 교복을 입고 학교에서 노는 것을 설정으로 삼은 이 프로그램은, 신정환을 통해 프로그램 대부분을 1990년대 가요계와 룰라 이야기로 꾸몄다. 그다음 주에는 그들이 젊은 시절 오락실에서 자주 했을 법한 펀치 게임을 했다. 게임을 같이 한 출연자들은 대부분 강호동보다 20살 이상 어린 여자 연예인들이었다. KBS ‘해피투게더’에서도 유재석이 데뷔 시절부터 친했던 개그맨 동료들의 친목 모임 ‘조동아리 클럽’과 함께 출연 중이다. ‘아는 형님’들끼리 모여서 서로를 놀리고, 옛날 이야기를 한다. 그래도 영향력이 있고, 영향력은 권력을 만들어 젊은 연예인을 불러놓고 1990년대 이야기를 실컷 할 수도 있다. ‘아는 형님’이 신정환을 출연시키고 그를 활용하는 방식은 하나의 분기점이다. 예능 프로그램의 이 ‘형님’들은 이제 최소한의 눈치도 놓아버렸다. 시청률이 주는 힘을 바탕으로 영향력을 가진 그들은 사적인 관계와 욕망을 방송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이제 그들은 방송에서 서로의 흠을 놀리되 감싸주고, 질리도록 옛날 이야기를 반복한다. 그들이 하고 싶고 익숙한 것만 하는 이 폐쇄적인 세계에 다른 세대, 특히 여자가 들어가려면 그들의 장단에 맞춰줘야 한다. 이쯤 되면 정말 궁금해진다. ‘X세대’ 시절, 이 ‘형님’들은 정말 이런 미래를 원했을까. 20년 뒤에도 아는 형 동생끼리 낄낄거리며 ‘룰라 시절’을 이야기하는 미래를.
CREDIT 글 | 강명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