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워서 남줄랩’, 좋은 어른 되기

2018.08.01 페이스북 트위터


지난 5월에 첫 방송을 시작한 EBS ‘배워서 남줄랩’의 제목과 홍보 문구는 다소 유치해 보인다. ‘힙합과 지식의 컬래버레이션.’ 실제로 방송에는 10대들에게 한창 인기를 끌었던 Mnet ‘고등래퍼 2’ 출연자들이 나온다. 하지만 그들은 ‘고등래퍼 2’ 때처럼 랩 실력을 겨루지 않는다. EBS는 교육방송이라는 특성을 살려, 각종 교과과목 심화과정을 10대들의 관심을 끌 수 있게 랩이라는 요소와 결합시켰다. 래퍼들은 사회 문제와 관련된 강연을 듣고 토론을 한 뒤에, 자신이 배우고 느낀 내용을 토대로 랩 가사를 써야 한다. 김숙과 유재환이 각각 ‘배남기획(배워서 남줄랩 기획)’의 대표와 실장을 맡은 것도 청소년들의 흥미를 끌기 위한 요소다.

‘배워서 남줄랩’에 등장한 ‘십말이초(10대 후반 20대 초반)’ 래퍼들은 적나라할 정도로 자신들의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명사들과 MC조차 종종 당혹감을 감추지 못할 정도다. 통일 회차에 등장한 독일 공영방송 기자인 안톤 숄츠에게 “왜 통일이 되어야 하냐”고 묻고, 그가 독일의 사례를 언급하며 “먼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고 설득하자 마지못해 “통일이 다다다음 세대쯤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또 고전평론가 고미숙 박사가 “10억을 준다고 하면 감옥에서 1년 살 수 있냐”는 질문을 던지자, 이수린은 손과 발을 모두 드는 제스추어를 취하며 “당연하다”고 대답한다. 나아가 “(감옥에 가서) 자기가 망가져도 괜찮냐”는 질문에는 “망가져도 1억 정도 망가질 것 같고, 9억은 이득이니까”라고 말해 어른들을 당황시킨다. 하선호는 “어른들의 시대를 알 필요 없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꼭 나이가 저희보다 많다고 해서 좋은 어른인 것 같지는 않다”고 자신이 바라보는 어른들의 모습에 대해 설명하기도 한다. 이처럼 ‘배워서 남줄랩’은 1020세대에게 기성세대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는 돈과 명예, 사람됨에 대한 저마다의 기준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아무도 래퍼들에게 “잘못됐다”고 지적하지 않는다. 당연히 이들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고, 말을 하는 태도가 건방져 보일 수도 있다. 고전평론가에게 “고전이 뭐냐”고 묻는다거나, 래퍼들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주먹으로 인사를 건네는 명사에게 “그건 때리는 거”라고 장난치며 웃는 모습은 어른들 입장에서 혀를 차게 만들 수도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들을 보며 핀잔을 주거나, 그것도 모르냐는 식으로 교조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고미숙 박사는 고전이 무엇인지 똑같은 개념을 세 차례에 걸쳐 차근차근 설명해준다. 사회학자 노명우는 한 10대 래퍼가 “(부모가 살았던 시대에 관해) 딱히 알고 싶지 않다. 이해하라고 하면 할 수는 있지만 하기 싫은 것뿐”이라고 얘기하자 “굉장히 중요한 말이다. 사람을 깨어 있게 만드는 건 이런 감각이다”라고 칭찬한다. 남북한 정상의 회담 장면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냐고 묻자 “문재인 대통령님이 웃으실 때 앞니가 많이 보이시는구나”라고 대답한 한 래퍼의 말을 듣고도 유재환은 “활짝 웃으시는구나(라고 말해야 한다)”라며 표현을 다듬어줄 뿐이다. 덕분에 항상 어른들에게 “요즘 것들 왜 이러냐”며 질타를 받는 존재로 묘사됐던 1020 세대는 도리어 자신들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의 관점에서 비판을 하는 세대로 다시 비춰진다.

자신의 의견과 시각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된 1020세대 래퍼들에게 일어나는 변화가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방송 초반에는 마치 ‘고등래퍼 2’에서 친구들과 장난치는 것처럼 굴던 이들은, 탈북민 출신 교수 주승현의 에피소드를 듣고 한국 사회에 내재돼 있던 북한이나 난민에 대한 편견과 정치적인 입장 차이가 어떤 비극적인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지 알게 된다. 래퍼들은 연평도 포격 사건이 발생한 날에 “너네 북한은 왜 그러냐”고 묻는 국내 기업 면접관에게 “죄송하다”고 말했다는 그의 사례를 듣고 함께 안타까워하기에 이른다. 또 “여자들은 생리도 하고 임신도 하니까 내가 안 겪어본 거라 무서울 것 같다”며 여성이 되기 싫다고 이야기하던 남성 래퍼들은, 성폭행과 관련된 판례를 직접 보고 난 뒤에 한국에서 여성으로 사는 일이 실질적으로 왜 어려운지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미투 운동을 다룬 회차에서 강사인 손경이가 자신이 성폭행 피해자라는 사실을 이야기하며 여성 래퍼인 하선호를 끌어안고 울자, 남성 래퍼들은 하나둘 일어나 그 주변을 에워싼다. 그중에는 “(우리에게 말하는) 용기를 내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소년도 있다.

“래퍼는 다른 사람들이 무서워서 못하는 말이라든가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내용의 가사를 쓰고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도 다룰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10대 래퍼의 말을 들은 사회학자 노명우는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래퍼가 하는 일과 사회학자로서 하는 일이 굉장히 같다”고 말했다. 1020 세대를 가르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자기만의 가치관과 직업관을 지닌 동등한 인격체로서 대하는 어른의 말이다. 청소년들의 생각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는 어른들만이 그들과 제대로 소통할 수 있다. 뻔한 교훈 같지만 그동안 어떤 프로그램에서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던 사실이다.
CREDIT 글 | 박희아
교정 | 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