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라, 인형이라 불렸던 여자

2018.06.20 페이스북 트위터


“인형처럼 살라 그랬어. 어딜 가나 인형처럼 말도 하지 말라 그랬어.” 최근 방송된 JTBC ‘아는 형님’에서 고아라가 SM 엔터테인먼트 시절을 회상하며 한 말이다. 하지만 그는 같은 소속사였던 김희철을 향해 쾌활하게 물었다. “나 좀 인형 같지 않았니?” 서장훈은 “아이돌들 참 어렵게 산다”며 안타까워했지만, 정작 고아라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인형 같았던 자신의 과거를 대화의 소재로 삼았다.

KBS ‘반올림’ 속 옥림으로 데뷔한 이후, 고아라는 SBS ‘너희들은 포위됐다’, OCN ‘블랙’ 등을 통해 거칠게 몸을 쓰거나 강렬한 이미지가 필요한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언제나 관심을 받은 것은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와 반짝이는 처연한 눈이었다. tvN ‘응답하라 1994’에서 명랑만화 주인공처럼 뽀글거리는 펌으로 나타났을 때 도리어 가장 많은 관심이 쏟아졌던 이유일 것이다. JTBC ‘미스 함무라비’ 속 박차오름은 성나정의 왈가닥 같은 성미에 옳고 그름에 대한 분명한 생각까지 더해진 인물이다. 고등학교 때까지 피아노 선생의 성추행에도 저항하지 못했던 얌전하고 소심한 소녀는 어느새 판사가 되어 기쁜 일에는 누구보다 크게 웃고, 슬픈 일에는 온 세상이 무너진 듯이 눈물을 흘린다. 그는 남성들 위주의 법정 문화를 거부하며 그들이 만들어온 보수적인 질서에 돌을 던진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어려움을 겪는 직장 동료들을 위해 직접 서명을 받으러 다닐 정도로 매사에 적극적이기까지 하다. 현실의 고아라 역시 남성 출연자들이 짓궂은 농담으로 게스트를 곤란하게 하는 ‘아는 형님’에 출연해서도 결코 주눅 들지 않는다. 춤을 못 춘다고 구박하는 MC들에게 고아라는 “다음에 준비해서 나올 테니 또 초대해달라”고 응수한다. 지난 2015년에 방송된 JTBC ‘뉴스룸’에서 2010년과 2011년의 공백기에 관해 묻는 질문에 고아라는 “그 시기에 딱 대학생이 되면서 나름의 고뇌를 했다. 배우 생활, 자아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얼짱’과 ‘댄스짱’으로 선발돼 연예계에 데뷔한 뒤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과정이 있었고, 덕분에 법원 안에서 이리저리 부딪히며 자신의 모습을 다듬어가는 초임 판사 박차오름의 삶을 연기할 수 있게 됐다.

“경솔했다. 죄송하다.” 박차오름은 일을 더 잘해보겠다는 고집으로 함께 일하는 공무원들의 업무 형태를 바꾸려 들고, 사내 성차별 문제에 관해 판사 회의까지 소집할 정도로 꾸준히 문제제기를 한다. 하지만 자신의 욕심이 앞서 챙기지 못했던 싱글맘의 고충과 남성들 사이에서의 역풍으로 상처받는 동료들이 생겨났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 “죄송하다”는 말이 타인에게 상처를 입힌 데에 대한 변명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인형일 때에 몰랐던 것들을 판사가 된 박차오름은 알게 됐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쪽으로 움직이길 멈출 수 없다. 이런 사람을 연기하는 고아라도 역시 자신이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한다. 정말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소속사가 아니라 사람이 변했기 때문이다.

CREDIT 글 | 박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