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이 된다면│② 단편소설 ‘한 해 장사’

2018.05.08 페이스북 트위터
곽재식 작가가 쓴, 통일 이후에 관한 단편소설. 등장하는 인물 및 단체는 현실이 아니다.


ⓒShutterstock

남북통일이 된 다음 해의 일이었다. 나는 “오늘까지 ‘연구 계획서 작성 예상 초안’까지는 꼭 나와야 합니다.”라고 씌어 있는 연구소장님의 이메일을 몇 통이나 받았다.

그것을 보고 영란 선배가 말했다.

“우리 연구소 소장님도 많이 조바심 나시나 보네. 통일 됐다고 위에서는 난리니까 우리도 뭔가 통일에 걸맞은 걸 해야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정말로 우리도 그 정도로 급박하게 통일하고 뭔가 엮어서 연구 사업을 해야 돼요?”
“요즘 유행이잖아. 도로공사에서는 비무장지대에 도로 연결하고 북한에 길 닦으러 가야 된다고 아주 막 흥분 분위기라고 하지, 도시계획공사, 농어촌공사, 주택공사도 북한 개발하는 거 계획 세운다고 거의 폭풍 분위기라고 하고. 북한에 부족한 전력 보내줄 사업 해야 된다는 한국전력이나, 북한 핵시설 가봐야 된다는 한국수력원자력 사람들이나. 요즘 통일 이야기 안 하면 정부 부서 사람들이 눈길도 안 준다는데. 예산 따려면 다들 정신없지, 뭐.”
“그래도 우리는 그냥 우리 하던 연구만 꾸준히 하겠다고 하면 안 되나요?”
“가뜩이나 통일 돼서 나라에서 여기저기 돈 쓸 때 많은데, 우리처럼 무슨 우주의 시작을 밝히네, 자연의 아름다움을 연구하네, 이런 기초 연구하는 데 쓸 예산이 어딨겠어. 나는 소장님이 저러시는 것도 이해는 돼. 도저히 돈 없어 안 되겠다, 예산 부족하다고 연구소 문 닫자 그러면 우리도 다 잘리는 거 아니야. 정규직 공무원들이야 버티겠지만, 우리처럼 정부 투자 연구 기업은 정부에서 돈 끊는다 그러면 문 닫아야지 별 수 있냐? 안 잘리려면 우리도 어떻게든 통일하고 엮어서 뭐든 해보겠다고 같이 막 난리 쳐야지. 요즘 같은 때에 블랙홀 연구 조금 더 잘한다고 안 잘리는 게 아니야. 소장님께서 나라님께 줄을 잘 대시게 잘 도와야 다 같이 산다고.”

그렇게 해서 우리는 사흘을 내리 심야 야근을 하며 계획안을 붙들고 있었다. 그런데 그 첫 단계부터가 쉽지 않았다. 통일에 대한 소식을 이것저것 조사해보지만, 우리 연구소가 뭔가를 연구할 계획에 도움이 되는 내용을 찾기는 어려웠다.

일단 여건부터가 좋지 않았다. 인구 감소 대책을 마련한다고 해서 집 살 사람이 없어 집값이 떨어지고 집이 남아도는 시대에 활용할 수 있는 기술 연구를 다양하게 하고 있다고 작년까지 소장님이 떠들고 다녔는데, 상황이 완전히 뒤집어져 있었다. 일자리를 찾아 북한 사람들이 서울로 밀려들어 오면서, 서울 집값은 전혀 다른 차원으로 치솟았다. 우리는 유럽식 복지국가 모델을 도시건축 기술에 적용한다고 준비하고 있었지만, 오히려 정부 당국자들은 2000년대 중국에서 농민공 문제를 어떻게 대처했는지 조사하는 게 더 필요하다고 하는 판이었다.

뇌신경 연구를 해서 공감과 협동에 대한 사람의 심리를 밝힌다고 하던 우리 연구 과제도 완전히 망하고 있었다. 남북한 사람들이 뒤섞이면서 생기는 온갖 이상한 방향의 갈등은 우리 연구소에서 제시했던 인간 심리에 관한 어떤 기존 연구에도 들어맞지 않았다.

일부러 북한 지역에 가서 옛 독재자들을 격렬하게 비난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남한 지역에 와서 소위 사회주의 영웅들이라는 사람들을 칭송하려고 홍보 사업을 일으키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갈등을 두고 인터넷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충격적인 조롱 방법을 고안해내는 기발한 사람들이 계속 나왔고, 그것을 실천에 옮겨서 폭동을 일으키려고 하는 얼간이들도 얼마든지 있었다.

“진짜 제일 이상한 게 뭐냐면, 옛날에 가장 반공 운동 열렬히 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오히려 옛날 북한 독재자들을 칭찬해. 그러면서 뭐라는지 알아? 그런 독재자들이 북한의 영웅이니까, 그보다는 민주적이었던 남한 독재자들은 진짜 더 위대한 참영웅이라고 하는 거야. 그래서 우리는 남한 독재자들을 칭송하고 추앙해야 한다는 거야. 그 심리를 어떻게 뇌 연구로 설명을 하겠어.”

남북통일 후 상황에 대한 다른 자료들을 살펴봐도, 우리에게 도움이 될 만한 소식은 없었다. 남한 여자, 북한 여자, 남한 어린이, 북한 어린이, 남한의 가난한 사람, 북한의 가난한 사람 등등 갈등이 일어나는 계층에서 약한 사람을 비웃는 온갖 지저분한 은어와 속어들이 대단히 빠른 속도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봤는데, 그 속도가 너무 빨라서, 이런 속어가 어느 수준이면 방송에서 금지해야 하는지 판단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우리는 남북 갈등에 대해 새로 생기는 속어 중에 방송 불가능한 것이 무엇인지 빠르게 자동으로 판단하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연구해보는 것은 어떤가 한참 토론하기도 했다.

밤을 꼬박 새우고 전등이 하나둘 꺼지고 있는 신새벽 도시 풍경을 보면서, 우리는 겨우 한 가지 아이디어에 도달했다.

“북한에는 아직까지도 전력난이 심해서, 도시지만 밤이 되면 캄캄한 곳이 많거든요. 그래서 거기에는 밤에도 별이 잘 보여요. 그러니까, 그런 데 천문대를 짓고 천문 연구를 하면 잘 될 거다. 도시에서 가까우면서도 별도 잘 보이는 천문대를 만들자. 남한에 잘 없으니까. 이런 거 어때요?”

잠결에 내가 한 말에, 의외로 영란 선배는 찬성했다.

“괜찮네. 일단 쉽게 이해되니까 높은 분들도 다들 끄덕끄덕은 할 거 같은데.”
“그런데 이상하지 않아요? 남북통일 했으니까 이제 잘 살아보자는 쪽으로 뭐가 나와야 하는데, 이 계획은 북한 도시들이 발전해서 전등 많이 켜게 되면 그냥 의미 없어지는 거잖아요? 계속 북한에서 전등도 못 켜야 의미가 있는 이런 게 좋은 계획 맞아요?”

영란 선배는 내 말에 대답하기 전에 우선 컴퓨터에 “북한 지역 거점 천문대 건립 종합 계획안”이라고 제목을 먼저 써 넣었다. 그리고 이어서 작업을 하면서 중얼거리듯이 대답했다.

“어차피, 한 해 계획 내고 한 해 끝날 때 결과 보고해야 하는 게 우리 연구 아니냐. 일단 잠시 때워보자고. 영감님들 생각하시는 그 변하지 않는 북한에 대한 고정관념에 잘 맞잖아. 승산 있어.”

지나고 보니 영란 선배의 말이 맞긴 맞았다. 우리는 북한 지역 11개 도시 중앙에 천문대 건설을 시작할 수 있었다. 천문대가 완공되었을 때, 그 도시들은 이미 모두 환히 밝혀져 있어 단 한 번도 별을 보는 데 쓸 수는 없었지만.
CREDIT 글 | 곽재식(화학자/작가)
교정 | 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