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즈의 최고의 앨범

2018.03.16 페이스북 트위터


헤이즈의 목소리에는 뭔가 특별함이 있다. 그런데 이는 흔히 훌륭한 보컬리스트들을 이야기할때 늘 거론되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특별함이다. 좋은 싱어라면 으레 갖게 마련인 어떤 경향성, 혹은 습관을 그의 목소리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다. 그렇다고 개성이나 특징이 없는 목소리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랩과 노래의 경계를 묘하게 오가며 툭툭 내뱉는 보컬에는 거칠지 않은 결과 또렷한 딕션, 무엇보다도 좋은 의미에서 투명한 톤이 담겨 있으며, 귀를 달뜨게 하는 나긋함과 목소리 끝에 얹혀진 비브라토는 그의 보컬에 특유의 서정성을 덧씌우곤 한다. 헤이즈의 보컬이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진한 호소력을 가진 것은 바로 이 ‘중립성’ 때문이다. 그리고 신작 ‘바람’은 R&B/어반 뮤지션으로서의 뚜렷한 존재감과 함께 매력적인 한 명의 보컬리스트이자 스토리텔러로서 또 한번의 도약을 이뤄내고 있는 헤이즈의 성장을 확인할 수 있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범상치 않은 건반의 오프닝에 블루노트 스케일과 재즈 하모니가 어울리며 다시 힙합 비트가 덧입혀지는 ‘Jenga’의 오프닝은 이 미니앨범이 그간 그에게 부여된 일종의 선입견을 보란듯 깨보리라는 의지처럼 느껴진다. 래퍼이자 싱어가 가지는 독특한 전달력, 과장되지 않고 한 단어 한 단어를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멜로디와 가사를 긴밀하게 밀착시켜 훑어내는 그의 능력은 이 곡에서 그 매력이 한껏 도드라진다. 음악을 물흐르듯 전개시키는 송라이터로서의 탁월한 선율감은 물론이요 한 음 한 음을 도약시키고 또 하강시키는 모습에서 한 단계 성숙한 뮤지션의 면모를 함께 확인한다.

‘괜찮냐고’에서 보컬리스트로서 그의 능력, 특히 서정적 매력의 깊이는 한 층위를 더 보여준다. 마치 헤어진 연인에게 편지를 읽듯 래핑과 노래를 오가며 담담하게 읊조리는 초반부에서 분위기의 전환 후 편안하고 섬세하게 터놓는 후렴의 청아한 매력, 후반부에 투명하고 호소력 짙게 올라가는 팔세토 보컬까지 그 감정과 이야기의 연결은 이음새 없이 매끄럽기만 하다. 보컬의 자잘한 테크닉과 어레인지먼트가 예의 섬세하게 조율되어 곡이 가진 이야기의 줄기를 탁월하게 전달하고 있다는 점 역시 만족스러운 부분이다. 음을 소화하는 가수이기 이전에 이야기를 전달하는 스토리텔러로서의 감각이 여지없이 발휘되는 부분이라 하겠다.

‘내가 더 나빠’에서 싱어송라이터로서 헤이즈가 가진 서정성은 그 매력의 정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다소 난해한 코드워크를 머금은 기타가 곡의 문을 열면 다소 뜻밖의 순간에 툭 들어오는 보컬과 이를 잇는 멜로디의 자연스러운 감정선을 타는 보컬의 조화는 퍽 매력적이다. 고조된 감정으로 ‘내가 더 나빠’라며 핵심을 말하고는 다시 ‘그런널 알면서’라고 떨어뜨리며 감정을 전이시킨다. “그리워 하면서 미워했던” 사람을 향한 모순된 마음을 감수성 짙은 선율과 조화시키며 곡이 가진 정서를 아름답게, 그리고 탁월하게 묘사한다.

한국 대중음악 신에서 R&B/팝 보컬은 종종 상투적이고 뻔한 음악들이 모여 있는 카테고리로 인식되곤 한다. 실험이나 도전보다는 타협이, 도드라진 개성보다는 무난함이 종종 미덕으로 간주되고, 그런 적당한 결과물은 큰 예외없이 좋은 성적을 받아들어 그 순환관계가 다시 성립한다. 헤이즈의 성공 역시 분명 이 같은 시장의 트렌드를 제대로 받아들인 결과였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바람'이 긍정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자신의 음악을 스스로 책임지는 아티스트로서 헤이즈가 보여준 태도 때문일 것이다. ‘비도 오고 그래서’로 상징되는, 그에게 이미 익숙한 대중적 성공의 공식을 반복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음악적인 변신을 꾀한 것은 대중가수를 넘어 아티스트로서 그를 재평가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어느때보다도 내면적이고 미묘하지만 깊은 감정의 층위를 건드리는 곡들은 보컬리스트로서의 성장과 송라이터로서의 경험치와 만나며 본인이 가진 음악성의 새로운 스펙트럼을 드러내고 있다. ‘바람’은 의심없이 헤이즈가 내놓은 최고의 작품이다.
CREDIT 글 | 김영대(음악평론가)